완결
박 형사는 김 주임과 헤어져 차에 올랐다. 그리고, 연우의 학교 앞에서 연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연우도 모습을 보였다. 아빠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게 처음인 상황이라 어색한지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차에 후다닥 올라탔다.
“왜? 학교 앞까지 와서 난리야. 애들 보는데.”
“잘 다녀왔어? 아빠가 모처럼 시간이 나서 연우랑 데이트 좀 하려고.”
“징그럽게. 나 학원 가야 해.”
“학원에 전화했어. 오늘은 아빠랑 놀자.”
“뭔 소리야. 아빠랑 뭐 하고 놀아. 그냥 학원 갈래. 학원까지만 태워 줘.”
“아빠가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연우는 박 형사를 흘끔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자세를 고쳐 앉더니 벨트를 맸다.
박 형사는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시영은 사무실로 돌아와 **동급생 살인 사건 담당인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충의 사건 개요를 다시 듣고 생각에 잠겼다. 며칠 사이 피해자의 아이패드가 열렸다고 했다. 후배에게 물었지만, 연우 이름이 언급된 내용은 없었다. 가해자와 친했던 아이들의 진술에서 ‘가해자의 전 남자 친구가 최동현이란 아이이고, 최근까지 가해자와 같이 있는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최동현이 옆 학교에 다니는 2학년 아이와 환승 연애 중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아마 그 아이도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라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했다. 그 남자애가 공범인 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영은 마지막으로 피해자 아파트 근처 CCTV 감식 상황을 물었고, 알아봐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만약 망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연우의 남친일지도?’ 그렇다면 그 아이는 전 여친의 살해 계획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연우는 시영에게 친조카와도 같은 아이다. ‘어쩌지, 정은 언니, 어떻게 해?’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밖은 이미 어스름이 깔리려고 준비 중이다. 박 형사는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연우 역시도 말이 없었다. 고요와 어둠이 내려앉은 차는 이윽고 어딘가에 멈춰 섰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깊은 바다 내음이 오랜만이라는 듯 다가와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박연우! 여기가 어딘지 아니?”
“바다잖아. 오면서 이정표 봤어. 경포대 아냐?”
“역시, 우리 딸.”
“경포대는 왜 온 거야? 뜬금없이?”
“여기 엄마랑 아빠가 자주 오던 데거든.”
연우는 말없이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쳇, 아무것도 안 보이네. 뭐.”
“내일 아침에 보자. 배고프다. 우리 뭐라도 먹자.”
“오늘 집에 안 가?”
“어, 안 가. 우리 여행 온 거야.”
“나 아무것도 안 가져왔는데?”
“아빠가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네 짐 따로 좀 챙겼어. 없는 건 사면 되고.”
연우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흘깃거리고는 박 형사 뒤를 졸졸 따랐다. 박 형사는 연우가 좋아하는 대게 가게로 들어갔다. 연우와 밖에서 식사한 지가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박 형사가 기억을 더듬는 동안 연우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말을 꺼냈다.
“엄마 하늘 가고 첨이네. 우리 둘이 밥 먹는 거.”
“에이, 설마.”
분명히 한두 번은 있었다고 생각하던 박 형사는 없는 기억을 쥐어짜고 있었다.
“한 번도 없었어. 아빠. 처음이야.”
박 형사는 제일 커 보이는 대게를 골랐다. 박달대게란다. 미안한 마음을 대게의 킬로그램에라도 실어야 할 것 같았다. 평일 저녁 교복을 입은 딸과 데면데면한 아빠의 조화가 수상했는지 대게를 잘라주는 아주머니는 유난스레 말이 많았다. 이렇게 잘라야 맛있다는 둥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는 둥, 그러다 보면 이 비밀스러운 부녀의 사연을 조금이라도 듣게 될까 기대한 건지 좀처럼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박 형사는 앱을 열어 근처의 숙박업소를 검색했다. 다행히 꽤 괜찮은 호텔에 객실이 있었다. 트윈베드로 예약하고 연우에게 대게를 집어서 살을 발라 주었다. 처음에 어색해하던 연우도 어느새 적응한 건지 아빠가 주는 대게 살을 야무지게 받아먹는다. 영락없는 열다섯 살짜리였다.
“근데, 아빠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일 빼고 놀러 다닐 사람도 아닌데.”
“솔직하게 말해도 돼?”
“엉.”
“농땡이 치고 싶어서.”
“뭐야. 거짓말하지 마. 나 아빠가 쉬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야. 나 새엄마라도 생겨? 괜찮으니까 말해봐.”
“뭔 소리야 이 녀석아. 아빠가 무슨. 연애도 못 하는데 새엄마가 어디서 생겨?”
“에이, 아니야? 재미없게.”
박 형사는 말과 달리 다행스러워하는 아이의 낯빛을 보았다. ‘아직 엄마를 보내지 못했구나. 너도, 나도.’
식당에서 꺼낼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야 한다는 연우의 말에 근처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각종 젤리며 사탕, 과자들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니 김 주임이 생각났다. 영락없는 여자들이구나 싶던 차에 연우가 맥주 한 캔을 집어 들면서 “아빠 필요해?” 한다. 손으로 두 개를 가리키자 같은 걸 하나 더 집어 바구니에 넣었다.
연우는 호텔은 처음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로비의 샹들리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거울만 나오면 자세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게 뭐라고. 박 형사는 쓴웃음이 났다.
조그만 거실이 딸린 괜찮은 방이었다. 비치 뷰로 예약을 해서인지 창밖은 암흑천지였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저 바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연우는 침대로 뛰어들며 이거 꼭 해보고 싶던 거라며 호텔 가운을 급하게 걸치고 또 사진을 찍는다. 박 형사는 가지고 온 짐들을 풀면서 생각했다. 3 박을 예약을 했지만,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박 형사는 서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부녀였다. 유난히 얼굴만 아빠를 닮았다. 궁금한 걸 못 참는 것과 똑 부러지는 성격은 정은이와 똑같다. 양파를 싫어하고 대게를 좋아하는 것도 똑같다. 잠자는 습관마저도. 조식을 먹고 아침 바다를 걸었다. 처음엔 걷기 싫다던 연우도 어느새 옆에 붙어서 모래를 발로 파내며 장난치고 있었다.
“연우야,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이 좋은 날 아침에 엄마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내.”
“이렇게 좋은 날이니까. 아빠가 시간 많이 못 내서 미안해.”
“어쩔 수 없는 거 알아. 신경 쓰지 마.”
“아빠 얼마 전에 연우 남자 친구랑 있는 거 봤어.”
박 형사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슬쩍 말을 꺼냈다. 모래를 파던 발이 갑자기 멈췄다.
“아빠, 어디까지 알고 있어?”
“어? 어디까지라니? 그냥 둘이 같이 있는 거만 봤는데. 그냥 친구야?”
모래를 파던 발이 앞으로 다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그 발은 박 형사 옆에서 멈췄다.
“아빠한테 할 말 있어.”
박 형사는 오히려 할말을 잃었다.
연우는 바닷가에 놓인 벤치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빠 여기 앉자.”
박 형사는 연우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연우의 말을 기다렸다.
“아빠, 최동현 알지?”
박 형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왜 말도 안 꺼내?”
“네가 상처받을까 봐 그랬지.”
“내가 무슨 상처를 받아. 아, 아빠 나 그 오빠 여친 아니야. 여친 대역이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여친 대역이라니?”
“아빠 형사니까 그 사건 알지? **중학교 살인 사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최동현, 그 오빠도 그 언니한테 죽을 뻔했어.”
박 형사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여친 대역은 뭐며, 공범이라고 생각한 녀석이 죽을 뻔했다니. 게다가 이 모든 걸 왜 내 딸이 알고 있는 거지?’
“학원에서 우연히 그 언니가 오빠를 협박하는 걸 봤어. 바로 대답 안 하면 죽여버린다고 얼마나 무섭게 말하는지 숨도 못 쉬겠더라고. 계단 위에 숨어 있었는데 그 언니는 날 못 보고 내려가고, 내가 그 오빠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부들부들 떨길래. 말할 때까지 기다렸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박 형사는 연우의 이야기에 어느새 빨려들고 있었다. 침까지 꼴깍 삼키며 그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같은 학교 친군데 노예처럼 다룬대. 완전 가스라이팅 당한 거 같았어.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봤지. 1초만 늦게 대답해도 쌍욕 퍼레이드였어. 얼마나 안타깝던지. 그래서, 나랑 사귀는 것처럼 해서 그 언니에게서 빠져나오라고 먼저 제안했지.”
“박연우, 인마. 그런 일에 왜 끼어들어. 네 일도 아니잖아.”
“알고 어떻게 넘어가?”
“다른 방법도 있잖아. 어른들한테 말한다던가. 부모나 학교 말이야.”
“최동현 엄마 아빠 없어. 할머니랑 산단 말이야. 누구한테 말해?”
박 형사는 할 말이 없었다. 그 당시 자기한테 말했다 하더라도 엉뚱한데 신경 쓰지 말라고 타박만 했을 게 분명했다. 연우는 거기까지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같은 학교도 아니고, 뭐 어쩌겠어? 그 언니가 안다 해도 난 하나도 안 무서웠어. 그런데, 그 화살이 최동현이 아니라 나한테 오더라고.”
“하, 이 녀석이. 그때라도 말했어야지.”
“진짜로 누굴 죽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그 언니 친구들이 나한테 DM이 왔었어. 빨리 빠지라고. 너도 죽고 최동현도 죽는다고. 그냥 허풍인 줄 알았어. 그 사건 터지고 나서야 다리가 후들거렸어. 너무 무서웠어. 아빠.”
연우는 박 형사에게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혼을 내야 할지 힘든 사람을 모른 척 하지 않았음을 칭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인 건 연우는 아직 그의 옆에 있었다. 일단은 아무 말하지 않고 딸을 꼭 안아 주었다.
시영은 CCTV에 제3의 인물은 없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최동현이란 아이의 진술과 그의 핸드폰에 가해자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니 공범이라기보다는 피해자에 가까웠다. ‘그 여자애를 죽이고 최동현을 죽이고 그다음은 연우까지?’ 시영은 온몸이 오싹했다. 고작 중3이다. 이제 열여섯밖에 안 된 아이가 여러 사람을 가스라이팅하다 못해 목을 졸라 사람을 죽였다. 사안이 중대해서 구속은 되었지만, 문을 누가 열어 주었느냐에 따라 우발적이냐, 계획적이냐로 나뉠 수도 있다. 형을 받아봤자 장기 15년? 단기 7년? 항소까지 간다면 감량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최고형을 받는다 해도 사회에 나오면 고작 서른이다. 그 안에서 교화가 될 가능성은 있을까? 서른이 되어 연우에게 복수라도 한다면? 시영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조폭 그 새끼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는데…. 시영은 정은 언니의 사건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예약을 연장하고 이틀을 더 머물렀다. 박 형사는 일찍 철이 든 연우를 보며 대견하면서도 짠한 마음을 지워내기가 어려웠다. 경포대에서의 마지막 날, 연우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먼저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을 꺼낸 건 처음이었다. 엄마 얘기만 해도 방으로 들어가 버리던 아이가 먼저 엄마가 보고 싶다니…. 박 형사는 정은이 있는 납골당으로 차를 몰았다. 장례 후 연우와 함께 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기억에 닿자, 박 형사는 뭐가 바빠 하나밖에 없는 딸을 엄마와 함께 하지도 못하게 두었나 싶었다.
“나 너무 많이 커서 못 알아보면 어쩌지?”
“걱정하지 마. 아빠랑 똑같이 못생겨서 알아볼 거야.”
“흥, 아빠만큼은 아니거든.”
뚝심 있게 잘 자라준 딸이 고마웠다. 박 형사는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단단한 아이를 보며 정은이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는 오늘 엄마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최동현 같은 일에 직접 나서는 오지랖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위험한 손길이 닿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연우야, 엄마 말이야. 교통사고로 죽은 거 아니야.”
“교통사고가 아니다….”
연우는 박 형사의 말을 따라 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빠, 나 얼마 전에 문득 떠오른 건데 어쩌면 꿈인지도 모르겠어.”
“뭔데?”
“엄마 마지막 날 말이야. 엄마가 나를 학교에 내려주고 급하게 갔거든. 나 들어 가는 거 다 보고 나야 가는 엄마가 그날따라 허둥지둥이야. 그래서, 내가 들어가다가 교문 밖에 다시 나와서 엄마를 봤는데 엄마가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으로 타더라고.”
“꿈이야?”
“그걸 모르겠어. 꿈인지 기억인지. 꿈인 거 같기도 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으니까.”
박 형사는 연우와 함께 납골당에서 나와 나란히 차에 올랐다. 그리고, 벨트를 매고 있는 연우에게 목격자를 대하는 수사관처럼 물었다.
“너 운전석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