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는 늘 그렇듯이 엄마 차를 타고 등교하고 있다. 엄마는 출근하면서 학교 앞에 연우를 내려주고 연우가 교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그날도 엄마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려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엄마가 없다. 연우는 엄마가 벌써 가버렸다는 생각에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늘 손 흔드는 곳까지 다시 되돌아 나온 연우는 교문 앞 엄마가 차를 정차해 둔 곳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었다. 엄마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엄마의 뒷모습을 넘어 보였다. 엄마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남자다. 머리는 짧고, 턱이 좁았다. 눈썹은 짙었고, 그 외에 특징적이라 할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차 뒤쪽으로 돌아 운전석으로 향하는 그의 왼쪽 얼굴에 검은 점이 하나 있다. 사마귀 같기도 하고, 점 같기도 하다. 멀리서도 확실하게 보이는 존재감이 있었다. 엄마는 당황한 것처럼 차에 올랐고, 그렇게 차는 교문 앞에서 유턴으로 돌아 사라졌다.
연우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그때는 연우의 학교 앞에 카메라가 없었다. 지금은 과속 단속 방지턱과 속도위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만, 5년 전 인근 어디에서도 그녀의 차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차 안에 부착되어 있던 블랙박스도 사라졌다.
연우가 보았다던 점. 최 수사관은 연우와 함께 몽타주를 수정했다. 박 형사는 긴 시간 지쳤을 연우를 집에 데려다주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여전히 낯설다. 젊은 남자, 당황했다는 정은.... 불륜남이 학교 앞까지 찾아 와 그녀를 상대로 협박이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박 형사가 다시 과학수사팀을 찾았을 때 김 주임은 최 수사관과 함께 몽타주를 보고 있었다.
“오늘 보는 얼굴들은 왜 이렇게 낯설지가 않지.”
김 주임은 혼자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최 수사관이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아니, 아까 옆 서에 마약 운반 총책이 잡혔는데, 그 새끼 머그샷 보는데도 어디서 본 거 같더라고. 근데 이 몽타주도 어디서 본 것 같아. 어디서 본 거지? 아, 죽은 사람들만 봐서 그런가. 영, 감이 죽었나 봐.”
박 형사가 그들에게 다가가 완성된 몽타주를 보았다. 다시 봐도, 낯설다.
“흔한 얼굴은 아닌데, 턱이 좁고, 저 점. 지금은 뽑았을까?”
“뽑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그 사람이 범인이라면 저런 점을 그냥 두진 않았을 거 같은데. 아무리 잡히지 않았다고 해도.”
“최 수사관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저 남자가 정은이 내연남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잖아.”
“그렇지는 않아 보여요. 연우 기억 속에 엄마는 그 남자를 처음 본 것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큰일이 난 것처럼 당황하고 서둘렀다고 기억하고 있었어요. 엄마한테 바로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고.”
“박 형사님, 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래서, 가족에게 발생한 사건은 담당하면 안 되는 거야. 감정이 실리잖아요. 그나저나, 어디서 봤을까? 어디서 봤는데 분명….”
“넌 오늘 당직이야?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냐?”
최 수사관이 물었다.
“아니, 퇴근. 궁금해서 말이야. 연우 기억이. 이제 가야지.”
“그래 가자, 가자. 나도 퇴근해야 해. 애 보러 가야지. 부럽다. 미혼! 박 형사님은 오늘 근무에요?”
“일주일 쉬었더니 할 게 많아서 좀 보다가 들어가려고. 가자고, 나도 우리 팀으로 가봐야지.”
셋은 함께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최 수사관은 바로 주차장으로 가고, 박 형사와 김 주임은 으레 가는 편의점 앞에 앉았다. 김 주임은 새록새록 하다는 듯 옛 기억을 떠올렸다.
“연우, 꼬맹이 때 진짜 귀여웠었는데. 저는 연우가 아나운서 한다고 할 줄 알았어요. 쪼그만 게 어찌나 말을 잘하던지. 우리 진짜 연우한테 추월당하는 거 아니에요? 잘 보여 놔야지, 히히.”
“인마, 세상일이 그렇게 쉽니? 잘 풀릴 거 같다가도 엉키고, 안 풀릴 거 같다가도 쉽게 풀리는 게 인생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마약 총책 못 잡을 거 같다고 그러더니, 일주일 새 잡아서는 조사까지 다 했잖아. 함부로 단정지으면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요. 아까 친구한테 연락받고 그 총책 얼굴 봤는데, 잠시만, 잠시만, 그 새끼! 그 새끼네! 박 형사님, 연우 기억 속 남자, 마약 총책! 아, 그걸 연관을 못 지었다니. 바보.”
두 사람은 황급히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머그샷 속 얼굴과 연우의 기억 속의 남자를 비교했다. 총책은 머리가 길고, 점이 없었다. 그런데, 턱…. 턱이 길었다.
박 형사는 김 주임을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신익수, 그 새끼 라인이었어? 아직 이렇게나 힘이 있다고? 감옥에 있는데?’ 마약반 팀장의 말이 다시 머리속에 각인되었다.
'신익수 아들이 위에 있는 거 같다. 불법 바카라와 마약. 현재까지 밝혀진 건 그 정도이지만, 수면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꼬리 자르기 수법을 쓴다.'
대가리들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 있었다. 머그샷 속 남자와 몽타주 속 남자가 동일인이라면 분명히 연우 엄마의 죽음은 신익수와 관련이 있다. 박 형사는 미제사건 파일을 열고 처음부터 다른 관점에서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