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완결
박 형사는 연우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찾았다. 전에 없던 CCTV가 그새 두 개나 생겼다. ‘조금만 더 빨리 설치되었더라면….’아쉬운 마음에 괜히 학교 앞을 어슬렁거렸다. 학교 앞이라 상가가 많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근린시설이 있긴 있었다. 세탁소와 피아노 학원 담당자를 탐문 했을 때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고 했다. 특이할 게 없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들의 CCTV는 학교 쪽을 비추고 있지 않았다. 그 외에 상점이라고는 문구점 하나가 있었는데 조사 시점에는 닫힌 상태였다고 적혀 있었다. 문구점 주인 할머니가 무릎 수술 때문에 닫았다고 세탁소 아줌마에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박 형사가 문구점에 직접 간 기억은 없다. 연우와 연우 엄마 둘이 등 하교 때 자주 들렀던 건 알고 있다. 떼쓰는 법이 없는 연우가 문구점만 가면 이것저것 사달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연우 엄마의 푸념만 기억할 뿐이다. 박 형사는 잠시 연우 엄마와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의 추억에 젖어 학교 앞을 천천히 걸으며 그녀들이 자주 들렀다던 문구점이 있나 둘러보았다. ‘세월이 얼마야.’ 그때도 무릎이 성치 않던 할머니면 폐업했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며 학교 모퉁이를 끼고 돌던 그때였다.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 갑자기 나타난 큰 문구점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꽤 큰 옛날식 가게가 버젓이 영업하고 있었다. ‘자녀가 이어서 하고 있겠지….’ 박 형사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려면 한 시간은 더 남았을 것이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박 형사가 다니던 학교 앞에도 문구점이 있었다. 물론, 여기보다 좁고, 물건 또한 많지 않았다. 사지도 못할 거면서 기웃댔던 기억에 괜스레 멋쩍었다. 대낮에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남자가 아무것도 안 사고 문구점 안을 돌아다니면 이상하게 보이겠다 싶어 삼색 볼펜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대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방문(가게 안에 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 )을 두드렸다. ‘드르륵’거리는 문 안으로 백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박 형사는 문득 그 할머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볼펜값을 치르고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연우와 연우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을 할머니 앞에 보이며 물었다.
“할머니!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나 같은 늙은이한테 뭘 물어볼 게 있을까?”
소녀 같은 말투에 박 형사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할머니, 이 두 사람 기억나세요?”
“누군데 그래? 잠시만, 돋보기가 어디 있더라. 뭐 하는 양반인데 사람을 찾아 댕겨?”
“그러게나 말입니다. 혹시 이 두 사람, 기억나십니까?”
한참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알지, 알지. 이 꼬맹이 이름이 뭐였더라. 애 엄마랑 매일 와서 하나씩은 사 갔거든. 내 단골손님이었지. 얼굴은 당연히 알지. 나이가 드니까 이름을 자꾸 까먹어. 그래, 연우. 엄마가 연우라고 불렀어. “연우야, 그만 사.” 이제 기억이 나네. 맞을 거야. 그런데 왜?”
할머니는 늙은 남자가 모녀의 사진을 들고 와 묻는 게 이상하다는 듯 재차 물었다.
“사진 속에 있는 연우 엄마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찾고 있습니다.”
박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이 근처에서 누군가와 함께 사라졌다는 말도 함께 꺼냈다.
“연우 엄마가 우리 가게 앞에 자주 주차를 해놓고 애를 학교에 들여보내곤 했어. 아마, 가게 앞에 주차하는 게 미안해서 가게에서 하나씩 물건을 사던 게 매일 아침 일상이 됐지. 연우 엄마가 참, 사람이 좋았거든. 예의도 바르고. 매번 차에서 내릴 때부터 둘이 실랑이를 어찌나 하는지.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 쪼그만 게 아주 영특해. 엄마가 쩔쩔맸거든. 아, 그러고 보니, 나 무릎 수술하러 가기 전날이니까, 대충 5년은 지났겠네. 차는 주차가 되어 있는데 연우랑 같이 가게에 안 오길래 ‘오늘은 안 오려나 보다.’ 그랬지. 그런데, 잠시 뒤에 보니까 차 옆에 젊은 남자랑 연우 엄마가 같이 있더라고. 연우 아빠인가 보다 싶어서 ‘아는 척이라도 할까?’ 슬 나가 보려는데 연우 엄마가 막 울면서 차에 타. 그 남자가 뭐라 그랬는지 “남편이 어딨다고요?” 그렇게 말했던 거 같아. 맞아. 연우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그 뒤로 나도 수술하고 이러느라 까먹었지. 연우도 그 뒤로는 안 오더라고. 오면 물어보려고 했더니.”
“할머니, 혹시 이 남자일까요?”
박 형사는 머그샷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뒷모습밖에 못 봤다고 했다. 옷차림도 기억하지 못했다.
“연우 엄마는 그 길로 사라져서 못 찾은 거야?”
“그렇다네요.”
“에그, 꼬맹이가 엄마 없이 힘들었겠네, 그려.”
“그러게요. 할머니, 말씀 감사했습니다.”
박 형사가 기운 없이 일어서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먼발치서 하는 말이 들렸다.
“연우 아빠도 힘내! 연우랑 아주 똑같이 생겼네. 찾을 껴. 걱정하지 말어.”
돌아서 나오는 박 형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연우 엄마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발견한 기쁨 때문인지, 적어도 아내가 치정사건에 연루된 건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박 형사는 차로 돌아와 할머니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남편이 어딨다고요? 남편이 어딨다고요?…….’
박 형사는 경찰서로 돌아왔다. 다시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의 사건과 연우의 기억과 몽타주, 그리고 마약 총책의 연결고리를 맞춰보기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 맞는 부분이 없었다. 그는 마약수사과 서 팀장을 찾았다.
신종 마약 범죄가 늘어서 마약부서 팀원들은 강력반보다 더 집에 못 간다는 풍문이 들릴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 팀장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박 형사는 들고 간 박카스 한 병을 따서 손에 들려주었다.
“장난 아닌가 보네, 얼굴이 갔다 갔어.”
“말도 마, 분명히 신고도 있고, 본인도 자백까지 했는데 마약 성분이 검출이 안 돼. 이게 말이 되냐?”
“그게 뭔 소리야? 다 민 거야? 온몸에 털을?”
“그런 게 아니야. 최근에 잡혀 오는 놈들이 하는 마약 자체가 검출이 안 되는 새로운 마약이야. 이걸 어떻게 찾냐? 국과수에서도 미치려고 그래. 새로운 마약류로 규정해서 등록해 놓으면 또 새로운 마약이 나오는 식이야. 이걸 어떻게 다 감식하냐고. 잡으면 뭐 해? 집어넣을 수가 없는데. 나 다른 부서 가야겠다. 이러다 내 명대로 못 살겠어.”
두 사람은 박카스를 마시면서 서로 신세 한탄했다. 사회를 좀먹고 있는 마약, 그리고 그로 인해 더 늘어날 강력범죄. 생각만 해도 남은 정년을 어떻게 버티나 두 사람은 답답해졌다. 한숨이 늘어지던 그때 박 형사는 잠시 대화를 끊고 그를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서 팀장, 그 얼마 전에 총책 잡혀 온 놈. 왜 신익수 아들이랑 그 새끼 면회 갔다 왔다는 그 놈 맞지?”
“응, 맞아.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면회 이후 두 사람과 연관된 게 하나도 없어. 이동 동선, 기지국, 입금·통화 내용 다 확인해 봤는데 신익수 아들과도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방법이 없어. 이 범죄도 이 새끼 단독범행이야. 혼자 고등학생들 꼬드겨서 펜타닐 처방 받고 판 거밖에 없더라고. 마약 반응도 음성이고. 전과도 없고.”
“걔 지금 어딨어?”
“아직 유치장에.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아서 구속영장 신청했는데 아직이야. 왜 만나보려고?”
“어, 영장 안 나오면 풀려날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하지.”
“지금 볼 수 있을까?”
“가자. 수사연장선이니까.”
박 형사는 서 팀장과 함께 조사실로 향했다. 곧이어 서 팀장이 총책을 데리고 조사실로 왔다. 그는 박 형사를 보고 흠칫 놀랐다. 박 형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 알아요?”
“아니요, 모릅니다.”
“그런데 왜 놀랐어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앉아 있어서….”
박 형사는 빈틈을 노려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다.
“이 여자 알아요?”
모르는 표정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분명히 알아, 이 새끼.’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그래요?”
“그럼, 이 사진은요?”
박 형사는 정은의 마지막 사고 현장이 담긴 사진도 보여주었다. 이내 평정심을 찾았는지 표정이 굳어지며 담담해지기 시작했다. 보통 놈은 아니었다.
“모릅니다.”
“모른다….”
“혹시 신익수와 신영우란 사람들은요?”
“처음 듣습니다.”
“처음 듣는다? 신영우랑 같이 신익수를 찾아간 적이 있던데, 그것도 교도소까지. 잊어버리기 쉽지 않은 기억일 텐데요.”
“기억 안 납니다.”
박 형사는 이 자의 입을 열게 할 방법을 다시 고민해 보았지만, 증거가 없는 마당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연우의 몽타주 속 남자. 실제로 보니 턱은 더 길어 보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박 형사는 일단 그의 성형외과 의료 기록을 조회했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그의 점을 빼 준 의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미제사건 수사는 심증만 남긴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편의점 의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박 형사는 김 주임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출동이 없었는지 잽싸게 편의점으로 뛰어온 김 주임은 그새 젤리 한 봉지를 사서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마침 변사 보고서 마치고 젤리 사러 갈까, 하던 중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대요?”
“우연의 일치야.”
“쳇, 재미없게.”
“왜요? 혼자 커피 드시려니 심심해서 부른 건 아닐 테고.”
“그 총책…. 신익수랑 아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쇠야. 직접 보니까 연우 몽타주 속 남자랑 아주 비슷해. 턱도 길고. 그런데 점은 전혀 모르겠어. 의료 기록에도 안 나오고. 그런데, 나를 아는 건 분명해. 그건 확신할 수 있어.”
“그래요?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뭘 어떻게 해볼 텐데. 접점이 전혀 없으니 답답하긴 하네요.”
“그러니까, 이대로 놔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아.”
“박 형사님, 지금 어설프게 다가갔다간 신익수를 놓쳐요. 그 새끼가 시킨 건 확실해요. 물론, 심증일 뿐이지만. 그 총책은 형을 받아봤자 2, 3년에 집행유예일 가능성이 높아요. 풀려난 뒤에 뒤를 캐죠. 어딘가는 있을 거예요. 연결고리가. 이제 한 걸음 뗐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실마리는 찾았으니까. 죽을 때까지 찾아서 잡아넣어야죠. 살인 교사와 청부 살인죄로.”
박 형사는 김 주임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잡혔다. ‘이러다 은퇴하기 전에 밝혀내지 못하면 어쩌지.’ 미제사건은 정은의 사건 말고도 많이 있다. 그 중엔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사건도 있다. 공소시효가 없어져서 찾기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벌을 받게 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증거가 없거나, 증거와 일치되는 범인을 아직 찾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운이 좋아서 뒤에 일으킨 범죄로 지나간 여죄가 드러나는 일이 있긴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그의 마음도 모른 채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했다. 김 주임이 출동 신호로 다시 경찰서로 들어가고서도 박 형사는 한동안 편의점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턱이 긴 남자. 어딘가에 숨어 있을 신영우. 그리고, 감옥 속 신익수. 그들의 연결고리. 박 형사는 다 마신 캔 커피를 악력으로 구기며 ‘신익수! 이제 시작이야.’라고 속으로 읊조렸다.
<에필로그>
그동안 '박 형사와 김 주임'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로 '박 형사와 김 주임'의 연재는 끝이 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늘 좋은 일들, 가슴 따뜻한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추하고 악하고 무섭습니다. 모두 알 필요는 없지만, 범죄에 대해서 단순히 뉴스에서나 만나는 안타까운 사건, 혹은 티브이에서 재구성되어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아닌, 그들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비추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위주의 서술이 많았던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그 아쉬움을 좀 더 제 능력을 신장시킨 이후에 2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퇴고를 거의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써서 올린 글들이 많아서 예리하신 분들은 아마 아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음 연재는 좀 더 나아져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고, 바쁜 와중에 고문을 맡아준, 현재 과학수사과에 재직 중인 제 동생 은우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