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고시와 스무 살의 독립
"엄마~~~~~~"
"왜?? 무슨 일이고? 뭔데? 왜?"
우리 엄마는 전화통을 붙잡고 한참을 울고 있는 나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줄 알고 계속 불안한 질문을 던졌다.
"아니, 우리 딸 보고 싶어서...."
"아, 놀래라. 문디 지랄 안 하나. 어디 외국 갔나? 아이고, 놀래래이."
그제야 엄마도 내가 왜 우는지 감이 오셨나 보다.
"글체? 마음이.. 혼자 떼 놓고 오면 잘할 거 알면서도 엄마 마음이 그렇다."
"응, 엄마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엄마, 미안. 꼴사납게 울고 지랄해서."
"문디 가시나, 걱정이 얼마나 많겠노. 잘할 끼다. 우리 손녀는 똑 부려져 가"
"덜렁거리니까. 내가 그게 걱정이지."
"지랄한다. 지는? 니 딸인데 당연한 거 아니가? 엄마가 덜렁덜렁인데 딸도 덜렁덜렁이지. 그래도 잘 살았잖아. 걱정하지 마라. 아이고, 문디,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미안, 엄마. 헤헤"
"내가 전화한 번 해볼게. 문단속 잘하고 자라고. 니도 피곤할낀데 빨리 누워라."
"알써요. 엄마. 고마워."
어른이 되어 첫 발을 떼는 당연한 순서 중 하나임을 모르지 않는다. 처음엔 당황하겠지만, 내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혼자서 닥치고 해결하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내질 거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이 조금은 수월했으면 하는 엄마 마음. 낡디 낡은 원룸을 아이는 공장 같은 원룸은 싫다며 굳이 선택하고는, 그 뒤로 걱정이 태산인 엄마는 보이지도 않는지,
"엄마, 베란다도 있고, 여기 다른 애들 집보다 배는 넓은 거 같아요. 여기는 이렇게 꾸미고, 엄마, 엄마 화장대 하나 사야겠죠? 러그도 하나 깔고, 커튼은 무슨 색으로 하지?"
'그래, 아름다운 것만 생각해라. 낡아빠진 싱크대 수전이랑, 오염 가득한 세탁기 배수호수, 그리고, 코팅이 다 벗겨진 화장실 세면대, 찌든 변기는 눈에 안 들어오지....'
짐을 완전히 옮기기 전날, 나는 쿠팡 배달 기사의 빌런이 되기로 했다. 거의 철물점 수준의 상품들을 주문하고, 아이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커튼레일과 봉을, 멀티탭과 아이가 당분간 먹어야 할 물과 식료품까지 주문을 마쳤다. 주문 목록이 오십 개에 이르렀다. 화장실 바닥이 잘 마르지 않는 것 같아서 미끄럼 방지 매트까지 추가로 주문하고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냉동실에 소분해 둔 고기들과 냉동 마늘, 파 등을 아이스팩에 담고 전날 실어둔 짐들 사이에 둘째를 끼여 태우고, 모처럼 모녀 셋이서 긴 여행길에 올랐다.
쿠팡 기사님께 미안한 마음을 담아 박카스와 물 한 병을 건네고, 죄송하다 몇 번을 말했나 모른다. 딸들이 우당탕탕 책장을 조립할 동안, 박스를 모두 뜯고,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 대로 순서를 정해 철물점 아줌마의 숙련된 솜씨를 펼치지 시작했다. 세탁조에 온수를 가득 담고 미리 주문해 둔 세탁조 청소제와 발포제를 넣고 두 시간을 불렸다. 싱크대에도 온수를 가득 담아 식초를 뿌려 두고, 그동안 화장실 세면대를 식초와 치약으로 거의 새것 수준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존의 오래되고 낡은 수전은 과감 없이 버리고, 싱크대 수전을 시작으로 필터를 장착한 새로운 샤워기와 호수까지 교체하고 변기 청소에 들어갔다. 기존의 변기 커버를 떼 낸 후, 구석구석 청소하고 그 위에 집에서 가져온 새 커버를 설치했다. 벽면 가득 곰팡이도 다 제거하고 세면대와 변기 아래는 곰팡이 방지용 테이프까지 덧붙여 놓았다. 미끄럼 방지패드는 신의 한 수였다.
하룻밤을 아이의 자취방에서 보냈다. 딸들은 좁은 1인용 침대에 붙어 종알종알 꺄르르 꺄르르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어대고, 나는 현관을 바라보며 '그래도 삼중 잠금 장치네.' 한 번 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래된 불면증은 힘든 노동 덕에 싹 달아났나보다. 눈 뜨니 아침이라니, 며칠 전부터 토하고 못 먹는 아들 생각에 일찍 둘째와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도 할 일은 태산이다. 오자마자, 비워진 아이의 방을 정리하다가 편지를 발견했다. 걱정 인형인 엄마를 위로하며 잘 하겠다며 되려 나를 다독이는 내용에 결국 눈물샘이 터져 버렸다.
"엄마, 이 가시나가 편지를 써놓고 갔더라."
"그래서 네가 이래 우는구나. 아이고, 그래도 기특하다. 잘하겠다."
얼마 전, '7세 고시'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유명한 학원에서 입학테스트로 7세 아이들에게 고등학생 모의고사 수준의 문제를 풀게 하고, 그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7세 고시를 준비하는 학원이 또 있다는 얘기에 경악했다. 아이에게 이건 정서적 학대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아이에게도 이런 애잔한 마음이 드는데, 아직 한글도, 심지어 연필 한 번 쥐어보지 않은 아이에게 수능대비공부를 시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아이가 정말 잘 살아나가길 바라는 마음일까? 나 또한 허덜스럽기로 유명한 엄마지만, 아이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과 첫 시작을 조금 편하게 해 주는 정도의 뒷바라지 정도면 되지 않을까? 부모의 역할...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리가 바닥에 닿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서 선생님이 알려 주는 대로 외우고, 반복하고, 대입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살아가는 그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아이의 친구 중에 혼자 이사를 한 친구가 있다. 부모가 마침 그날, 일이 있고,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 친구는 생애 첫 이사를 혼자 해야했고, 내 아이는 하룻밤 친구와 지내며 친구에게 엄마가 가르쳐 준 것들을 알려 주고 도와주었다. 더불어 사는 세상, 과연 7세 고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그걸 배울 수나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그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니 암울하다. 태어나자마자 입시 경쟁에만 치중하며 살아 온 의사? 나는 그들에게 진료 받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 조금 모자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수 많은 아이들이 더 가치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 고민은 부모들의 몫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