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치맘이라 미안해요
"엄마, 엄마!! 나 출판사에서 전화 왔어요!!"
"뜬금없이 뭔 소리고?"
"아니, 내가 얼마 전에 소설 쓴 거 출판사 여기저기에 투고를 했는데 출판하자고 전화 왔다니까요!"
"야, 사기다. 누가 중학생이 쓴 소설을 출판하자 한단 말이고"
"아니라니까요.. 진짜라고~"
"웃기지 마라. 사기라니까"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어디 출판사에서 할 일이 없어서 중학생 나부랭이가 쓴 글을 심지어 출판하자고 제의를 하다니 미친 거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냥 해프닝이겠거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뒤 아이한테서 서너 장의 문서가 파일로 날아왔다.
"이건 뭔데?"
"얼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출판사에서 연락받았다고. 출판 계약서래요"
할 말이 없다. 뭐라고 출판 계약서?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여차저차 내용들이 출판에 관련된 얘기긴 하다. 이런 걸 본 적이 있어야 판단을 하지. 이거야 원.. 무식한 엄마라 답을 줄 수도 없다.
몇 번을 읽어봐도 명백한 출판 관련 계약서다. 일단 고등교육까진 받았으니 내용은 이해가 간다. 심지어 내용도 불리하지 않은 조건인 건 출판 일자무식인 내가 봐도 알 것 같았다.
"출판 계약서는 그렇다 치자. 근데 이건 또 뭐고? 펀딩?"
"엄마가 왜 재밌겠다고 한 소설 있잖아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 그 책도 텀블벅이라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처음에 제작된 책이에요"
"예스 이십사 베스트셀러 그거?"
"네, 그거요"
그렇단 말이지. 다시 한번 찬찬히 훑어보니 대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니가 쓴 소설을 텀블벅이란 플랫폼을 통해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책을 출판한다 이거네?"
"네, 그렇게 진행이 되는 거 같아요"
아,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달라졌구나. 부동산 자산관리사 공부할 때 크라우드펀딩에 대해서 배워서 그 내용은 조금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문학 그러니까 각종 창작물에도 활용이 되고 있다니 나로서는 문화충격에 가까운 일이다. 그랬든 어쨌든 부모 입장에서 선뜻 승낙을 하기도 애매하고 이게 잘하는 건지 선뜻 결론이 나질 않았다. 그때부터 아이의 끈질긴 설득이 시작되었다.
"엄마, 나는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꼭 제 책을 하나 내고 싶어요. 나는 이미 계획하고 있는 게 있다고요. 그리고 이 책 출판하고 나서 쓸 소설도 이미 구상해뒀다고요"
이 아이 뭐지? 우울증 약 부작용인가? 혼자 방에 처박히더니 그 시간들을 혼자 상상하고 또 상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다 못해 이미 무슨 중견 소설가라도 된냥 까부는 게 우습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아이의 낯선 당당함에 어느새 설득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이 자신만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그래,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자비출판도 아니고, 펀딩에 실패하면 그냥 전자책으로 출간한다 하니 나로선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출판사와의 무수한 의견 나눔을 통해 내 아이의 첫 책이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 중학생 작가의 몽글몽글한 SF소설이. 아직 펀딩이 진행 중이지만 말이다.
아이의 도전을 보면서 부모로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기보다는 너무 이른 결과에 대한 자만심과 자아도취에 빠져버리진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아이는 자아도취보단 차기작(?)에 고심 중이고
매일 저녁 밥상에서 작품에 대한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어쩜 저런 걸 상상할 수 있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절반 이상이지만 그게 소설로 완성이 되었을 땐 또 어떤 느낌일지 살짝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구요~!
엄마, 적어도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걸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적어도 우리 아이는 본인이 꿈꾸는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음에 분명하다. 나처럼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노력하고 행동하고 있다. 기특하면서도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세상이 내가 생각한 대로만 된다면야 지금 이 순간도 에헤라디야를 외치고 있겠지만, 반구십 인생을 살면서 내 뜻대로 되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무조건적인 희망을 노래하긴 힘들다.
아이가 기대하는 만큼 펀딩이 안될 수도 있고, 펀딩이 되었다 하더라도 1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지나친 긍정론이 아이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주진 않을까. 그로 인해 글쓰기가 두려워지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그런 생각을 언뜻 비추니 아이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요. 걱정인형이야 뭐야. 첫 술에 배부를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일단 목표는 펀딩 100프로 달성하고 종이책으로 내 책 맞이하는 거. 그걸로 만족할 거예요~ 그거조차도 안되면 할 수 없죠 뭐, 그리고, 다시 또 도전하면 되죠"
"아하,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미안하다. 딸아.."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생각보다 어려운 글쓰기에 살짝 멘붕이 온 적이 있다. 내가 뭐라고 이런 글을 쓰고 있나. 이 나이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마도 그날은 호르몬 때문에 좀 더 비관 모드로 들어선 날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내 얘기에 우리 딸이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에이, 엄마 아직 안 늦었어요~ 나는 엄마가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이 말이 뭐라고 뭉클하다. 엄마를 위로한답시고 어른인 척 구는 게 제법 듣기가 좋다. 언젠가 딸아이가 "엄마, 모녀 작가 어때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에이 뭐래... 가당키나 하나..."라고 얘기했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모녀 작가로 초대되는 날이 온다면 하고 나도 모르게 상상해버렸다. 상상이야 내 맘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