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을 위해~
몇 주 전부터 가슴에서 전에 없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2주 정도를 지냈다.
며칠 전 잠들려고 누웠는데 등골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이렇게 기분 나쁜 통증이라고?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찌릿찌릿함이다.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스쳐도 아프고 안 스쳐도 아프다. 콕콕 찌르는 기분 나쁜 통증이 수일 반복되었다. 에이 이러다 말겠지 한 게 2주가 넘어가니 이제 좀 진지해지기 시작한다.
'아 맞다. 민지 언니가 유방암이었지.. ' 그 언니도 아무 전조 증상 없다가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치료했는데 나는 심지어 아프네? 어쩌지?
그렇게 시작된 한 밤중의 걱정은 아침이 될 때까지 나의 숙면을 방해하고야 말았다. 밤새 현재 내 보험이 얼마이고 어디 어디에 가입이 되어 있는지 생각했다. 진단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으며 내가 만약 입원하게 되면 아이들은 어디에 부탁을 해야 할지 걱정하느라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쳐버렸다. 아침이 되어도 한 번 시작된 걱정 근심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이들 단속해놓고 병원을 가자. 오늘 검사가 안되면 일단 검사예약이라도 하고 오자.'
일단 마음을 다 잡고 보니 한시가 급해졌다.
아이들 방학과제와 공부를 봐주고 점심까지 챙겨주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대학병원까지 갈 마음의 여유도 없다. 진료의뢰서도 있어야 하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가까운 종합병원이지만 유방외과가 별도로 리뉴얼된 병원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혼자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건 마치 이미 암 진단이 내려진 사람처럼 비장하다.
점심시간에 일부러 맞춰 가서인지 대기 1번이다. 진료시간을 기다리면서 유방암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 병원에서 항암 치료하고 수술받은 젊은 여성분의 투병기가 블로그에 실려 있어서 정독했다.
'유방암이 머리가 다 빠지는구나. 그래 민지 언니도 머리 빠져서 모자 쓰고 다녔지'
이제 곧 닥칠 내 일인 것처럼 완전히 몰입해서 보고 말았다.
'나는 모자가 안 어울리는데 어쩌지? 가발을 써야 하나? 절제를 하면 다시 재건 수술을 할까 말까?'
혼자서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대기 시간이 지나갔다.
"***님, 3년 전에 건강 검진할 때 6개월 뒤 추적 검사하라고 되어 있는데 왜 이제 오셨어요?"
가슴이 덜컹했다. 그랬던가?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추적검사를 하라고 할 정도면 그때도 안 좋았던 건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초음파 검사가 가능하다고 검사받고 오라고 한다. 결과야 어쨌든 오늘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갈 수 있다고 하니 그 와중에 다행이다 싶었다.
새로 생긴 센터라 그런지 초음파실에서 콘크리트 냄새가 났다. 하지만 따뜻했고 초음파를 봐주시는 여선생님도 굉장히 친절했다. 통증이 느껴진 지점에서 초음파를 계속 반복해서 본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안 좋긴 안 좋은가 보다. 그러니 저렇게 반복해서 보는 거겠지. 온갖 신경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님~ 들어오세요~"
"네"
"***님, 여기 보이시죠? 3년 전에 무수히 많던 멍울들이 지금은 아주 깨끗해졌어요"
'저는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 암인가요?'
속으로 이렇게 얘기하면서 의사 선생님의 다음 말을 숙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깨끗하신 상태세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너무 아프다고!!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덧붙여 설명을 해주신다.
"유방 통증은 자주 있는 거고요. 유방암은 오히려 통증 없이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오늘 보니 아주 건강하시네요. 지금처럼 자가진단 자주 하시고 지금 상태가 가장 좋은 상태니까 앞으로 이 상태에서 뭔가 혹이 만져진다거나 하시면 내원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암환자 코스프레는 만 하루 만에 끝이 났다.
물론 지금 현재 힘들게 항암 중이신 환우분들이 보시면 기가 찰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딴에는 심각했고 하루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오히려 건강하단 말에 안심이 된다기보다 살짝 오진아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해프닝은 끝났다. 거짓말처럼 의사 선생님의 '정상입니다'를 들은 다음날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통증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내가 어릴 때 친정엄마는 조금만 아프면 병원을 갔다. 그럴 때마다 이상은 없었고, 어린 마음에 '무슨 병원을 저렇게 가나 건강해 보이시는데'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엄마의 지나친 건강염려증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확인해주시니 내가 할 일이 하나 주는 셈이란 걸,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여보! 당신도 좀 그래주면 안되겠니?)
이제는 엄마에게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병원 가라고 얘기한다. 뭐든 지나치면 좋을 게 없다지만 건강만큼은 조금 지나치게 염려해도 되지 않을까? 너무 내버려 두는 거 보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