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소확행

소확행? 소비 요정!!!!!

by 열정아줌마

우리 남편은 취미 생활이 없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면 저녁 8시나 돼야 집에 돌아오는 직장 다람쥐란 구시대적 핑계로 집은 곧 휴식만 하는 곳이란 개념이 아주 강하다. 휴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눕방이 최고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 눕방의 최고봉 자리에 오른 사람이 바로 우리 집 남자다. 그나마 하던 골프도 사내정치가 필요 없는 회사로 옮기곤 일절 하지 않고 있고, 알코올 쓰레기라 술도 하지 않고 만나는 친구도 없어서 요즘 같은 코 시국에 안성맞춤인 라이프 패턴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그나마 취미생활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활동은 핸드폰 고스톱 정도?

침대 매트리스와 하나가 된 듯 늘 같은 자세로 뭔가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다 싶어서 곁눈질로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초록 배경에 빨강 네모가 바삐 움직인다. 혼자 웃었다가 화냈다가 웃기지도 않는다.


그랬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 고스톱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핸드폰에 레이저를 쏘고는 있지만 고스톱을 할 때보단 얼굴이 편안해 보이길래 또 옆에서 화투패 쪼듯이 쳐다봤더니 이번엔 유튜브다. 책 읽어주는 남자? 북 어쩌고 저쩌고 화면엔 삽화 같은 그림이 가득하고 독특한 목소리의 남자가 책을 요약해서 읽어주고 있다. 고스톱보단 책이 낫지. 누가 읽어주면 어때라고 생각하다가 어라 가만 보니 내가 유튜브 보는 거랑 다르다. 이런 세상에나 광고가 안 나오네. 나는 매번 광고 스킵하느라 막말로 똥줄이 빠지는데 너무 편하게 보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 유튜브는 왜 광고가 없노?"

"그럴 리가 있나"

"엥? 근데 광고 안나오구만. 나는 홈트 할 때마다 광고 지운다고 식겁하는데"

"나는 프리미엄이니까 안나온다"

"돈 내는 거가? 한 달에 얼만데?"

"만 얼마일 걸?"


그렇구나. 나는 유튜브 프리미엄이 있는지도 몰랐다. 광고는 나오는 족족 스킵해버려서 프리미엄 가입 권유 광고조차도 스킵해버린 모양이다. 그래, 그렇다 치자.



나는 쿠*와*회원으로 한 달에 삼천 원 정도의 수수료를 내고 편리하게 물건들을 배송받고 있다. 시국이 시국이고 사람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려다 보니 택배 주문의 비율도 높아지고 아무래도 빠른 배송이 가능한 곳을 자주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주문하지 않은 쿠*와* 물건들이 자꾸 도착했다. 과자부터 음료, 케이크, 젤리 등등 나라면 사지 않았을 물품들이 주로 배송되어 온다. 주문자는 남편. 알고 보니 남편이 따로 쿠*와*회원으로 가입해서 주문을 해대고 있다. 이런 이중 지출을 하다니 근 20년 차 가정주부 입장에서 용납할 수가 없다. 당장 탈퇴하라고 말을 했지만 아이들 간식거리 주문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단다. 아오!! 그래, 그렇다 치자.


둘째가 카**톡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졸라와서 가족회의 끝에 사용을 허락해주었다. 이제 초 5가 되기도 하고 언제까지 못 쓰게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올바른 SNS 사용법과 단톡방 입장 금지, 방 안에서 핸드폰 소지 금지 등등의 제한사항을 만들고 사용을 허락했다. 그랬더니 막내가 울고불고 난리다. 가족들 모두 사용하는데 자기만 없다며 이불 뒤집어쓰고 시위를 한다. 마음 약한 엄마는 이래서 문제다. 결국 넘어갔다. 누나와 같은 제한사항에 한 가지 더 추가했다. 친구들과도 카톡 금지. 막내의 카톡 사용은 가족들에 한해서만 사용을 허락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우리 다섯 명의 카톡방이 만들어졌고 그때부터 의미 없는 이모티콘이 남발하기 시작했다. 초딩들과 무슨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겠는가.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이 아빠의 이모티콘이 더 가관이다. 한두 종류의 이모티콘이 아니다. 도대체 이모티콘이 몇 개냐 했더니 이모티콘도 정액제라 쓰고 싶은 거 다 쓸 수 있단다. 아들뻘 직원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꼰대의 소통방식으로 이모티콘만 한 게 없다며 이모티콘 찬양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아이고 아부지요...




남편이 이런 콘텐츠 관련해서 고정적으로 내는 비용은 2만 원 꼴이다. 거기에 담배, 커피(계산해보면 한 달에 여기에 25만 원 정도 지출한다)값도 있으니 이 남자가 한 달에 자기만을 위해 쓰는 돈은 30만 원 정도. 용돈의 개념도 없고 자기를 위해 더 쓰는 돈도 없다. 옷은 늘 입는 정장에 평상복은 춘추, 하, 동 트레이닝복 각각 한벌씩. 명품도 좋아하지 않고, 술값도 안 든다. 직장 생활하는 남자의 한 달 용돈이 30만 원이라 하면 많은 편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데도 콘텐츠 비용으로 지출하는 2만 원과 소소하게 지르는 아이들 간식거리에 드는 돈이 너무 아깝다. 그 만원이 쌓이고 쌓이면 지불해야 하는 카드값으로 돌아오고 말이다. 그 카드값은 결국 생활비에서 지출되니 내 입장에선 절대 반갑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소비 요정으로 거듭난 꼴이라니. 존 리 대표가 보면 기가 차겠지. 프랜차이즈 커피값도 아껴서 투자하라고 하시는 양반이니 남편의 소비패턴을 보면 기암을 할지도 모르겠다.


"소비 요정님~~ 적당히 좀 사시죠. 돈 아까운데?"

"왜? 난 안아까운데?"

"그건 조금만 생각하면 없어도 되는 거잖아? 유튜브 프리미엄도 그렇고, 이모티콘도 그렇고, 애들 간식도 그렇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내 편의를 위해서 지급하는 사소한 비용이다. 아이들 간식거리 사는 건 내 즐거움이고"

"그래도 나는 아까운데"

"내 소확행이니까 내버려두세요~~"


더 말하면 잔소리~

그러다 보면 부부싸움이 될게 뻔하기에 속으로 욕만 하고 겉으로는 우쭈쭈 해주기로 했다. 매일 밖에 나가서 술 먹고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소확행쯤이야~(결국 이럴 땐 돈 버는 사람이 위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모티콘 정액제는 심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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