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아름다운 것~

아들의 재도전

by 열정아줌마

"엄마, 저 내일 반장 선거에 꼭 나갈 거예요"

"왜? 너 작년에 떨어져서 다시는 안 나간다며?"

"그래서 이번엔 부반장에 나가려고요"

"나가는 건 니 자유인데 또 떨어지면 어쩌려고?"

"이번엔 준비 좀 해서 갈게요. 작년엔 그냥 나가서 그래요"

"그래? 난 안 도와줘도 되지?"


혼자서 한단다.

이제 4학년이 된 막내가 부반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아주 각오가 대단하다.

사실 작년에 반장선거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다. 한 표, 지가 지를 찍은 거니 0표가 맞겠다.


엄청 속상해할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결과라며 쿨하게 넘겼다.

이제 다시는 반장선거 안 나갈 거라고 손가락에 장 지질 태세로 다짐을 하더니 그새 다 잊은 모양이다.

누나들이 엄청 놀려댔으니 자존심이 제법 상했을 텐데도 다시 도전하겠다니


'요 녀석 깡다구는 있는걸~' 기특하면서도

'이번에도 떨어지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자존감 떨어지면 어쩌지' 한편으로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작년에 그렇게 놀려대던 누나들도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막내에게 응원 폭탄을 날리기 시작한다. 메모지에 내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공약도 꼼꼼히 적어 내려간다. 도와줄까 했더니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선생님이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발표하랬다며 혼자 짐짓 심각하다. 그러곤 방에 들어가선 연습이라도 하는지 한참을 나오질 않았다.


5, 6학년 정도나 되면 모를까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반장 선거란 이미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투표인 경우가 많다 보니 우리 막내처럼 학원 안 다니고 놀이터 안 다니는 아이는 인지도가 낮아서 사실상 힘들다.(나의 편협한 사고일지도 모르겠다) 될 법이 없다 싶어서 나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번엔 한 표만 더 받았으면 좋겠다 정도? 아이가 상처만 받지 않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너무 낮은 기대 탓에 선거가 있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로 당일 오전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띠띠띠띠..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난다.

'아 맞다. 우리 아들 선거는 어찌 됐으려나.'그제야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기가 팍 죽어서 들어오는 아이를 보니 속은 상했지만 괜찮아 내년이 있잖아 의미 없는 희망의 메시지라도 전해보리라 아이의 책가방을 받아주며 보듬어줘야겠다 싶었다.


"괜찮아, 내년에 또 하면 되지. 실망할 거 없어~"

"히히히히, 엄마 나 부반장 됐어요!!"

"뭐야, 근데 왜 다 죽어가는 얼굴로 온 거야?"

"엄마 놀라게 해 주려고요 히히"

아, 이 녀석이..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올핸 첫 등교하는 날부터 선거에 나가보려고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사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작년엔 아이들이 자기를 잘 몰라서 표를 못 받은 거 같다며 올핸 한 표는 안 받겠다 다짐하면서 말이다. 11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5표를 받았다니 나름 선방한 건가?


"반장은 어떤 친구가 됐어?"

"그게요, 반장 된 친구 진짜 멋졌어요. 보드에다가 자기 공약을 만들어 왔더라고요. 공약이 너무 좋았어요. 심지어 보드판도 만들었더라고요. 풍선도 붙이고 정말 대단하다 싶어요. 그래서 저도 그 친구를 뽑았어요. 그런 친구가 반장이 되어야죠"


하하하 그래. 쿨해서 좋다 내 아들. 지 혼자 만들었겠냐 요 녀석아. 그래도 자기가 뽑은 친구가 반장이 되고 본인도 부반장이 되어서인지 우쭐우쭐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가 차다가도 작년 선거의 설욕은 한셈이니 다행이다 싶어서 못 본척 해주기로 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되든 안되든 도전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

이 두 가지는 제대로 배운 거 같아서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뜻깊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엄마, 저 내일 일찍 학교 가야 해요. 부반장이니까요"


그래 알았다. 이 녀석아, 며칠이나 가나 보자. 그나저나 지나친 어깨뽕은 좀 빼주실래요~~ 아들?




P.S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아들은 어깨뽕은 살짝 빼고 모범적으로 아침 일찍 등교하고 있다.


청와대가 되었든 용산이 되었든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계신 그분도

우리 아이, 아니 모든 초등학교의 어린 리더들처럼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주시길.

그분에게도 첫 도전이었을 그날의 기억과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시길.

어깨뽕은 빼시고 겸손을 장착하시길.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주시길.

더 이상의 잡음은 빼고 칭찬이 가득한 뉴스를 접하게 해 주시길.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대한민국의 소시민으로서

새로운 리더에게 아이가 바라는 세상을 조용히 전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 정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