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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Apr 13. 2022

본인의 감정은 본인이 알아서!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타고나기는 '경청'이 익숙하게 태어났는데 나이가 들수록 귀보다 입이 더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가싶어 살짝 걱정이다.


가족을 향한 애정어린 프로 잔소리꾼이다보니 집 밖에서도 그 탄성 그대로 작동하려고 해서 참아내느라 여간 힘든게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 다짐에 다짐을 해보지만, 여지없이 귀보단 입을 더 작동하고 돌아온 날은 그렇게 후회가 될 수가 없다.


대화의 상대와 모임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하는 말들은 가볍게 웃고자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지 살아온 인생에 빗대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너무나 꼰대 같아서 일부러 무거운 소재나 가급적 잔소리 같은 말은 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이 사람 만나면 즐겁다?’ 딱 그 정도면 된다.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말이 끊어지는 게 세상 어색한 사람인지라 그 부담스러운 공백을 나라도 메꿔야 한다는 어이없는 책임감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들고 왔지만 정작 남는 게 없는 소모적인 시간들도 가끔은 있다. 고상하게 밥 먹고 차 마시고 읽은 책에 대해 토론하고 살아가는 일들에 대한 진지한 얘기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자리가 불편하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또한, 매번 개그감 충만한 시간들인건 아니다. 가끔은 진중하고 또 가끔은 진실하다.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얘기들로 공감하고 때로는 서로의 정보도 공유하며 꽤나 즐겁고 ‘또 갖고 싶은 시간’들을 보내려고 서로 애쓴다고 하는게 맞겠다.


나는 남의 말을 듣는게 익숙한 사람이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타고나기를 듣는게 더 체질에 맞다. 어릴 때에 비해서 듣는 비중만큼 말하는 비중이 늘었다는 거지 여전히 나는 경청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말을 줄이고 싶다는 건 내 기준이니 남들 기준에선 여전히 입보다 귀가 더 열린 사람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들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고민이 있거나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 내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즐겁고 행복한 일에 같이 기뻐해 줄 사람으로 찾아주는 이도 있다. 슬플 땐 나누고 기쁠 땐 더한다. 이런 경우는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교감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하지만, 유독 힘들때만 나를 찾는 친구가 있다. 좋은 얘기는 누구나 들어주니까 나는 나쁜 감정전담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처음부터 내가 듣기 싫은 티를 냈더라면 한두 번에 그쳤을 텐데 몇 년에 걸쳐 이어지다 보니 으레 열 받거나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만 나를 찾는다. 그 친구에게 생긴 좋은 일은 항상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게 되고 말이다.


예의 그 친구에게서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남편이 어쩌고 자식이 어쩌고. 누군들 안 그러며 누군들 안 힘든가. 그런 얘기가 통할 사람이라면 애당초 혼자 이겨냈겠지. 전화기 붙들고 세상 혼자 억울한 것처럼 울어대는데 이번엔 좀 참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작년 이맘때 어찌하면 좋겠냐기에 세상의 잣대로 조언 아닌 조언도 했거늘 하나도 달라진건 없었다. 이제와서 어쩌라고? 마치 뱀파이어에게 온몸의 피를 다 빨아 먹힌 것처럼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통화에 아주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그만 좀 해! 나 너 얘기 듣는 거 너무 힘들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렇게 늘 그 친구의 말을 들어주던 사람이었으니까. 안들어주면 될걸 고민이라고 하냐싶겠지만 울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친구는 며칠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우아하게 다른 이와 차마시며 그런 일은 없었던 사람처럼 할 테지. 나는 마치 그 친구의 감정 쓰레기통이 돼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듣고 있지만 듣는 게 아닌 내 감정이 바닥을 치는 기분이 들어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흐느끼며 울던 친구는 그나마 좀 마음이 편해졌다며 쿨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 시간의 내 시간을 통으로 잃었고 말이다. 내가 갈수록 속이 좁아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공감하고 그랬구나 했던 것들이 이젠 공감이라기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버거워지고 있으니 내가 문제인가 싶어 또 혼자 애가 쓰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본인의 감정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때로는 마음 맞는 사람에게 받는 진정한 위로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좋은 노래도 몇 번 들으면 질려 버리는데 하물며 늘 징징거리는데야 이겨낼 장사가 있을까?


세상 사는 게 안 힘든 사람이 어딨으며 그때마다 세상 안 살 거 같은 말투로 주변인들에게 하소연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나 너무 힘들어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서로 간의 공감과 위로로 이어지는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감정의 발산은 상대방에게 또 다른 감정의 골을 만드는 것임을 꼭 알아야 한다. 본인의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다 쏟아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병적인 문제라면 또 다른 얘기가 되지만 습관이라면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들어주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님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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