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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May 11. 2022

이사 후유증

새로운 노트북으로 날려보자

정신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이사가 뭐 별건가 싶었는데 내년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하다 보니 그때까지 내다보며 짐들을 정리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로지 내 일이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남편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사실상 방관에 가까울 정도로 나에게 모든 걸 위임했다. 조금씩 비워져 가는 짐들에 눈치 없는 양반도 달라짐을 느끼긴 느꼈나 보다.


"뭐가 비워져 가는 거 같긴 하다"


한 마디 말로 내 수고를 퉁치는 거 같아서 살짝 마음 상하기도 하지만 큰 기대를 말자. 버릴 물건들을 못 버리게 하는 거 보단 낫지 않나. 18년 끌어안고 한 몸이 되었던 침대도 이번 기회에 과감히 처분했다. 작은 집으로 가다 보니 도저히 들어가지 않는 가구들과 물건들은 아깝지만 다 처분할 수밖에. 당근이 하루에도 몇 번이 울렸고 그렇게 많은 것들이 나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옮겨갔다. 그 와중에 큰아이 픽업 배송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또 주말대로 쉼 없이 이어지는 일상들이 나에겐 꽤나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게다가 전셋집을 처음 살아봐서 보증금 돌려받는 것도 어마어마한 중압감이었다. 큰 금액인 데다 하도 보증금 못 돌려받은 사연들이 여기저기 들리다 보니 이삿날이 다가오는데도 아무 말도 없는 주인아저씨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 영감탱이 돈 없다 그러진 않겠지? 만약 이것저것 트집 잡고 보증금 다 못준다 하면 확 그냥 경매 걸어버릴까 보다?'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지나친 걱정에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는데 막상 당일날 아침 쿨하게 다 돌려받고 나니 오히려 '에이 뭐야' 싶을 정도로 김이 새 버렸다. 하지만 그제야 체기처럼 가슴 한편을 누르던 덩어리가 쑤욱하고 빠져나간 기분이 든 건 두말하면 잔소리. 비용이 더 들었지만 전날 짐을 빼고 그동안 편하게 산 집에 고마워하며 밤새도록 청소를 했던 보람이 있었다. 당일 짐을 빼면 가구 뒤 숨은 먼지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먼지 가득한 집을 돌려주고 싶진 않았기에 화장실마저도 각종 세제들을 동원해 반짝반짝하게 닦아두었다.  


짐 다 빠진 집을 둘러보던 주인은 이렇게 깨끗하게 썼냐며 되려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셨으니 이만하면 바람직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모습이지 암만~~~ 지난밤 혹여나 못 돌려받을 걱정에 잠 설쳤던 내 모습은 잊은 채 우습기만 하다.


비워낸 만큼 또 채워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인다. 18년 쓰고 버린 침대 대신 킹사이즈 침대를 샀다. 잘 쓰던 침대를 버린다며 못 버리게 몇 날 며칠 애먹이던 남편도 막상 바뀐 침대에 굉장히 만족한 듯했다. 내년에 살 품목과 올해 살 품목을 정해서 미리 조금 분산해서 구입했다. 필요 없어서 버렸는데 다시 필요한 게 눈에 보이니 이거야 원. 소비 요정은 남편이 아니라 나였나? 매일같이 쏟아져 오는 택배에 다 내가 산 게 맞나 싶어 몇 번을 확인했나 모른다. 


하나의 과제가 마무리되고 나서 살짝 번아웃이 왔을까?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나만 느끼는 번아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번아웃이라기 보단 이사 후유증이 더 맞는 표현일 거다. 뭔가 하고는 있는데 뒤 덜 닦은 사람처럼 할 일을 다 못한 느낌?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가는 일들에 대한 찝찝함? 그나마 뭔가 마음의 안정을 얻어 왔던 소소한 나만의 루틴이 모두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고, 그동안 나름 조금씩 만들었던 나만의 시간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해져 버렸다. 


그렇게 이주 정도가 지났다.

하루가 한 시간 같은 날들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 맞나 보다.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침 홈트 시간이 아이들 학교까지 데려다주느라 30분 정도 딜레이가 되었지만 차차 익숙해지고 있고, 오후 하교에 맞춰 데리러 가는 것도 이제 자동반사처럼 시간 맞춰 몸이 반응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사하고 다음날,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야, 노트북이 하나 생겼는데 새 거다. 언니 쓸래?"

"그게 그냥 생길 수 있는 거가?"

"으이그, 그냥 쓰라면 써라. 나는 맥북 아니면 못써서 글타. 니 갖다 써라"

"오~~~~ 주고 뺏기 없다!"


당장 가지러 간 건 당연지사!  

이제 나 혼자 쓰는 나만의 노트북이다. 아이들도 하나씩 다 갖고 있는 노트북이 나는 없어서 그동안 늘 아들내미 노트북을 빌려 썼었는데 최근 마술에 빠진 아들 녀석이 유튜브 시청하느라 나에게까지 차례가 오질 않는다. 집에 갖고 와서야 내 생일선물로 직접 사놓고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라도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을 동생의 마음이 전해져서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아마도 며칠간 나를 괴롭혔던 찝찝함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혼자만의 집중의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임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항상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내가 그 쉼을 글쓰기를 통해 배워가고 있다. 동생 덕분에 시작하게 된 글쓰기가 나에게 오히려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감히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글로 쓰면서 스트레스도 풀렸다. 나에게 이미 중요한 일 중에 하나로 자리잡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밖에.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노트북! 

한동안 글 쓰는 게 부담이 될 정도로 하루하루 찌들어 있었는데 서서히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또다시 시작해봐야겠다. 그녀 덕분에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으니 내 1호 독자인 은우를 취해서라도 소소한 나만의 일상을 더 열심히 써보기로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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