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

by 열정아줌마

"엄마~저 할아버지 댁에 좀 다녀올게요"

"갑자기 왜?"

"쓰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할아버지 댁에서 자료 좀 찾아보려고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이제 곧 2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 우리는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지 못했다.

어머님이 계속 살고 계신다는 핑계보다 너무나 많은 물건들이 아버님의 손때가 묻어있는지라 감히 버릴 생각을 못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다.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더라면 49제라도 지냈을 테고 하다못해 옷가지들이라도 불태웠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으니 입으시던 옷이며 모든 물건들이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유독 우리 큰 아이는 할아버지와 친했다. 딸이 귀한 집에 첫 손녀이기도 했고, 워킹맘이었던 탓에 아이가 어릴 땐 시댁에 맡겨 둬서 더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난 후 동네 분들이랑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너, 12층 할아버지 손녀구나!" 할 정도로 많이 닮은 게 제일 큰 이유이려나? 하여튼, 할아버지랑 코드가 잘 맞아서 둘이서만 많은 얘기를 나눌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나중에 보니 문자를 주고받은 것도 어마어마하다.


할아버지를 바다에 뿌려드리고 온 날, 혼자 방에서 할아버지의 문자를 보면서 한참을 울었던 아이다. 시간이 지나 그리움의 색채가 옅어지긴 했으나 그래도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괜히 할아버지 물건을 보다가 슬퍼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남은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고 슬퍼만 할 수는 없지 않나. 그 또한 아이에게도 우리에겐 필요한 과정이니까 말이다.


책을 너무 좋아하셨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활자를 놓으신 적이 없을 정도로 읽고 쓰는 일을 많이 하셔서 집 안 여기저기에 흔적이 있다. 의자 밑에도 구입 날짜가 적혀 있고, 벽면 곳곳에 새겨야 할 성경 구절들이 걸려 있다. 집에 돌아온 아이의 짐보따리엔 할아버지의 메모장이며 할아버지가 생전에 쓰셨던 블루투스며 각종 전자기기들, 해외에서 폼 잡으며 찍으신 젊은 시절의 사진들, 각국의 빛바랜 엽서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록들..

다년간 선장으로 해외를 다니셨던 분이라 여기저기에 당신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런 게 있었어? 라며 들여다본 것들은 그렇게 자주 왕래하던 집이었는데도 일면식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걸 다 찾아들고 온 아이가 내심 신기하기도 했다.


"근데 엄마, 할머니가 조만간 할아버지 방에 있는 물건 다 버리신대요"

"왜 갑자기?"

"그건 모르겠어요. 그래서 조만간 다시 가서 남아 있는 거 다 들고 오려고요"

"그래, 그러자"

"근데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책 목록이 엄마가 좋아하는 거랑 비슷해요. 작가도 그렇고"

"맞제, 그래서 할아버지랑 엄마랑 잘 통했나 보다"


사진을 보고, 익숙한 아버님의 글씨체로 쓰인 명언집도 보면서 남편과 나와 아이는 한참 돌아가신 분을 떠올리고 기억했다. 이 시간조차도 우린 2년간 미뤄왔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울었어야 했는데..


"맞다, 우리 아부지 이런 분이셨지. 이 글귀는 나한테도 보내주셨는데.. "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효자가 된 아들은 결국 다 보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와 큰아이는 하나하나 보면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고 잊힌 것들이 아니 잊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망자와 산자의 경계는 분명한 것이어서 불교에서 망자의 물건은 태우거나 버린다. 보통 49제를 지내고 난 후 절 앞에 있는 소각장에서 유류품들을 태움으로써 망자와의 이별을 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아버지와 또 할아버지와 이별을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잊어가는 연습을 그와 동시에 영원히 잊지 않을 연습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할 때인 거 같다. 그게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사는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덧붙이기)


요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물론 죽음이라는 데에 집중해서 우울해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죽음의 반대인 삶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거 같아요.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들의 반복 임도 분명하고, 늘 나는 왜 이러고 살고 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었구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하찮고 별스럽지 않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축복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삶이라는 거. 이 분명한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동생 은우의 근황을 잠시 알려드릴게요~

지금은 본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과학수사과에서 다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간 주간 야간 24시간 당직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조만간 은우 얘기를 다시 해볼까 합니다~은우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이 순간도 본인의 시간을 최대한 존중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여러분들의 얘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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