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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Jun 06. 2020

몰입의 희열

그림 그리는 순간이 주는 황홀한 경험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화가 헤세(Hesse als Maler)>는 책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를 무척 좋아해서 출판된 헤세의 책은 거의 다 읽었던 것 같고, 지금도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 내 인생에 제일 영향을 많이 끼친 책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지와 사랑(Naziss und Goldmund)>을 꼽는다.  <화가 헤세>는 소설가였던 헤세가 그린 그림과 그림 그리기가 헤세에게 준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헤세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소설도 없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은 그의 삶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우리나라에서도 2015년에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헤세가 그린 그림에 대한 전시회가 있었다).


<화가 헤세>에서 헤세가 한 말 중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내가 유명화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림에 몰두하는 순간 나 자신을 까맣게 잊게 된다는 것과 여러 날 동안 나 자신과 세상을 잊고 고달픈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5년에 갔었던 <헤르만 헤세 전시회>




어렸을 적 내가 누구보다 잘했던 것을 꼽자면 미술, 즉 그림 그리기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멋진 사진(주로 동물 사진이었던 것 같다)을 보면서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이 좋았었고, (주로 기존 만화를 따라 그리는 것이었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도 좋아했었고(초등학교 때는 친구랑 같이 주간(週間)으로 만화 등이 포함된 사설 신문을 만들어서 학급 친구들에게 50원씩 받고 구독을 하게 했던 기억도 문득 난다), 중학교 때까지 교내 사생대회에서 금상(1등 상)을 수 차례 탔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중학교 때 예고에 진학해야 하는지를 진진하게 고민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림 그릴 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림 그리는 순간의 몰입감이다. 난 주로 학교에서 미술 과제가 있으면 제출해야 하는 전날 밤을 새워서 그림을 그렸었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이가 밤을 새워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조금은 웃기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고, 때론 새벽이 되어 있기도 했다. 정말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무아지경의 순간을 경험했었고, 그런 체험은 당시 어린 나로서는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난 사실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난 책을 볼 때도, 공부를 할 때도 한 가지에 오로지 집중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관계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는 것이 매우 곤욕스러웠다. 책 같은 경우도 한 페이지 정도 읽으면 주변을 둘러보고 환기를  한 번 해주고 나서 다음 장을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 때는 이를 보다 못한 엄마가 다음 날이 시험인데도 책상에 앉아 공부는 안 하고 소파에 누워있는 나에게 다음날 시험과목의 교과서를 가져와서 시험에 나올 만한 부분을 문제 형식으로 바꿔서 나한테 물어봐주었고, 그렇게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던 기억도 난다(그래도 엄마가 핵심 부분을 잘 알려줘서 그랬던지 중학교 때 시험을 잘 봤었다).


이런 나와는 달리 엄마는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엄마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내가 배가 고파 밥을 달라고 엄마를 부르면 몇 번을 부르고 난 후에야 내 말을 알아들으셨다. 그때는 그런 엄마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일부러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시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무엇을 할 때 정말 몰입해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집중력이 별로 좋지 못했던 까닭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는 집중력을 흩트릴 것 같은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심지어 노랫말이 있는 노래를 들으면 공부할 때 노래 가사가 머리에 맴돌아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어서  노랫말 있는 노래는 듣지 않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대학에 가고 오랜 기간 사법시험 공부를 했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다.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미술시간 때문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미술 과제를 낼 때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어도 괜찮지만 왜 그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작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반 학우들 앞에서 설명하도록 했었다. 당시 그림이란 것은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과제가 주어지면 어떤 작품을 만들지에 대해 무척 고민이 되었고, 어찌어찌 작품을 만들어도 딱히 그 작품에 대해서 설명할 말이 별로 없었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당시 인생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미술 선생님은 나한테 자네는 그림은 잘 그리는데 자신에 대한 표현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다. 반면 어떤 친구는 제출기한 당일까지 아무런 작품도 준비해 오지 않고서, 작품 발표시간이 다 되자 종이 하나를 손으로 꾸긴 후에 그걸 가지고 앞에 나가서는 이 작품은 자신의 일그러진 자아를 표현한 것이라는 그럴듯한 설명을 했고, 미술 선생님은 그 친구에 대해 무척 칭찬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미술시간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고, 그에 따라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의 수업 취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예술이라는 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지, 단순히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은 아니니깐. 다만 내가 인생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하던 대학교 시절 정도에 그런 미술 선생님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랬다면 난 지금도 그림을 계속 그리면서 몰입이 주는 희열을 맛보고 있지 않았을까.  


2016년에 갔던 루브르(Louvre)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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