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집실

눈 하나, 얼음 둘

by 설다람

1.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숨을 뱉자 담배 연기가 얼굴을 감쌌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골초였던 엄마가 폐암으로 죽는 꼴을 보고서도 끊지 못했다. 고3은 담배 끊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엄마를 닮아 유약한 폐를 타고 태어난 가희도 이대로 매일같이 피워나간다면, 폐암으로 사망할 것이다. 꽤 이른 나이에. 그러나 무엇을 하기에 이른 나이란 없었다. 다만 나쁜 때가 있을 뿐이었다. 화장대 위에 있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머리를 뒤로 젖혀 왼쪽 의안에 안약을 넣었다. ‘폐보다는 눈 쪽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라고 가희는 생각했다. 그 하나가 없어서, 이렇게 꼬인 성격이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임을 묻는다면 오히려 윌로우 스미스 노래에 잘못이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 방이었고, 가희 방이기도 한, 거실 하나만의 방으로 된 반지하 집에서, 가희는 한낮에도 한밤에 있을 수 있었다. 스노우퀸엔 여섯시 전까지만 가면 된다. 조금 더 늘어진 채로, 머물러도 좋다는 뜻이었다.


2.


입장 시간 이십 분 전부터 스노우퀸 앞에는 사람들은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다들 얇은 차림이었다. 얼어 죽어도, 몸은 불태울 작정인 모양이었다. 예전 것들의 부주의함과 요즘 것들의 부주의함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늘 밤 여럿은 뺑소니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질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고 가희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엾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들어갈 사람은 들어왔고, 못 들어갈 사람은 돌아갔다. 클럽 죽순이들이 밝게 가희에게 아는 척했고, 클럽 죽돌이들도 밝게 아는 척했다. 그들 중 누구도 가희가 고3인 줄은 몰랐다. 안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새벽 한 시가 넘자 안은 흥분이 피 튀기듯 사방에 튀겼다. 그 와중에 가슴에 GERDA라고 크게 로고가 쓰인 후드티를 입은 한 남자는 벽에 붙어서 메인에서 난리 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갓 스무 살에, 애 티를 벗지 못한 얼굴이었다. 한눈에 봐도 클럽에 처음 온, 그리고 혼자 온, 진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탕 테이블에 여자 떼를 붙여주고 온 가희는 GERDA 옆에 갔다.

“가서 춤이라도 춰,”

가희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GERDA는 여전히 멍하게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이번엔 코가 귀에 닿을 듯이 가까이 가서 말했다.

“가서 춤이라도 춰,”

고막을 터질 듯이 때리는 비트 사이로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GERDA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려고 온 거 아냐? 돈 버리지 말고, 놀라고.”

“그러려고 온 거 아니에요. 사람 찾으러 왔어요.”

GERDA도 코가 귀에 닿을 듯 얼굴을 대고 가희에게 말했다.

“누구?”

“그냥 있어요.”

멍청한 대답을 들은 가희는 바로 돌아가 서빙을 도왔다. 이곳의 일은 체력전이었다.

3.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도, GERDA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언제 나가야 하는지는 몰라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희는 진따가 물을 흐리기 전에, 스스로의 시간을 더 버리기 전에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손바닥을 얼굴 앞에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가희는 손을 잡고 GERDA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재를 터는 듯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희는 들어가기 전에 한 대 피우려 했지만, 담배가 없었다.

“야, 담배 한 가치만.”

“안 피워요.”

끝까지 답답한 새끼였다. 니코틴이 더 땡겨왔다.

“혹시 담배 사 드리면, 부탁 하나드려도 돼요?”

무슨 부탁을 할진 몰랐지만, 그건 일단 한 대 피우고 나서 생각하면 된다. 가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GERDA는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하나를 사 왔다. 하츠 그린을 사 와라는 걸 깜빡한 가희는 진따가 말보로 레드를 들고 왔을 때, 자기 머리를 때렸다.

“혹시 얘 닮은 애 보면 알려주실 수 있어요?”

담배에 불을 붙인 가희에게 GERDA가 폰을 내밀었다. 폰에는 초등학생 여자아이 사진이 떠있었다.

“동생 친군데, 여기서 일한다고 들었거든요. 2학년 땐가? 그때 이사 가서 헤어져서 이 사진밖에 없다는데. 꼭 찾아달라고.”

가희가 미친놈 보듯이 자신을 쳐다보자 GERDA가 덧붙였다.

“이거 완전 돌아이네.”

“동생이 죽기 전에 베프 다시 보고 싶대요.”

씹다만 종이를 뱉듯이 GERDA가 말했다.

필터까지 태울 정도로 길게 한 대를 피운 가희는 담뱃갑을 GERDA에게 돌려줬다. 다른 브랜드는 없을 때만 피우는 것이다.


4.

GERDA가 첫차를 타러 지하철로 가는 것을 보고 나서, 가희는 클럽 안으로 돌아왔다. 바에 가 잔을 정리했고, 조명에 비친 유리잔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를 닮은 얼굴이었다. 춤을 추는 사람, 눈빛 없는 표정, 흔들리는 조명, 모두가 웃고. 음악도 얄짤없었다.


남은 잔을 마저 닦고, 다시 홀로 나갔다. 바뀌는 것들이 바뀌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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