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파는 마른 잎 같은 두 입술을 구기듯 열어젖히며 기침을 뱉어냈다. 서걱거리는 노파의 기침은 누런 가래와 함께 무언가 구호의 메시지를 휘갈기려는 듯 창문에 거칠게 부딪혔다. 노파는 가로로 맨 자신만큼 낡은 가방을 뒤적이며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창문을 닦아냈다. 노파가 꺼낸 손수건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구겨져 있어서 마치 주름진 자신의 피부로 창문을 닦아내는 듯해 보였다. 노파는 꽤나 필사적이었다.
창밖으로는 빠르게 어깨를 드러낸 여자, 헐렁한 웃옷에 가려져 아래옷이 보이지 않는 여자, 결론적으로는 짧게 재단된 젊음을 전시하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런 남자들이 바쁜 걸음으로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버스 안에서 추위를 떨고 있는 노파 또한 조금 전만 해도 그들과 같은 더위를 느꼈었다. 그러나 노파가 140 버스에 올라타고 십 여분이 지나자 실내를 가득 채운 에어컨 바람은 노파가 덮어쓰고 온 땀을 금세 마르게 했고, 곧 얼마 안 가 바람은 먼저 지급된 휴식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으려는 듯이 노파를 집요하게 쏘아대었다. 노파는 자신이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느꼈던 더위가 마치 지난날의 젊음처럼 그것이 과연 존재했었는가를 되물어보고 싶을 만큼 아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차근차근 바람은 노파의 몸 구석구석을 들쑤셨고, 낡아버릴 대로 낡은 빈껍데기 같은 노파의 몸은 조만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마침내 노파는
저기, 너무 춥다야, 아 기사 양반 에어컨 좀 꺼주시면 안 되겠소?
라는 절규를 버스의 천장으로 내던졌다.
순간 정거장에 도착한 버스의 문이 열리고 승객들은 더위와 함께 풀어진 시끄러움을 저마다 들고 쏟아져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노파의 신경질적인 외침은 승객들이 들고 온 소음에 뒤덮여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노련한 버스 기사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노파는 몸을 버스의 복도 쪽으로 기울이고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버스 기사의 등과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을 번갈아 보며 기회를 다시 한번 노렸다. 노파가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노파는 장전된 탄알처럼 의자 속으로 박혀 들어갔고 결국엔 오로지 노파의 목만이 남아 참호 위에 총구처럼 등받이 밖으로 삐져나오게 되었다.
2.
그날 사건 현장을 처음 발견한 소설가 ㅋ씨에 설명에 따르자면, 그는 그러니까 으레 할 일 버스 기사 소설가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작품의 소재를 끌어모은다고 기묘한 짓거리를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지친 발걸음 두어 번 툭툭 털고 그가 막차에 올라탔을 때 그는 손잡이처럼 생긴 기묘한 기구가 버스 정중앙 좌석에 설치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허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쭈그려질 대로 쭈그려진 노파였다고 한다. 노파의 목이 워낙 가늘었던 탓에 등받이를 튀어나온 노파의 목은 커다란 레버처럼 보였고, 그것을 당기면 노파가 원하는 대로 바람이 멈추어질 것 같은 하나의 기구처럼 보였던 것이다. 소설가 ㅋ씨는 놀란 나머지 그 노파에게로 다가갔지만, 노파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노파는 얼어 죽어 있었다.
ㅋ씨는 서둘러 그 상황을 옮겨 적었다.
3.
노파가 두 번째 신경질을 부렸다.
저기 너무 춥다아. 어이 기사 양반 에어컨 좀 끄면 안 되겠소?
노파의 목소리는 한층 더 크고 날카로워졌지만, 그것은 말소리라 하기엔 바투 뱉어대던 성마른 기침의 연장선처럼 들렸다. 그 소음을 유일하게 요청으로 알아들은 것은 노파가 간절히 찾는 기사 양반이 아니라 앞자리의 중년 여성이었다.
이봐요, 거 다른 사람은 다 덥습니다. 혼자 더운 것을 어쩌란 것인지, 좀만 참아봐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곧 내리셔요. 어디 가시는데요?
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서서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할머니도 참.
노파의 말과 다르게 또박또박하게 쌓여져 가는 중년 여성의 말에는 승객의 대다수가 주목 했다. 그녀의 말은 노파의 신경질적인 외침을 차분한 어조로 비틀어대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말은 에어컨 바람처럼 냉랭하게 한 번 더 노파를 추위에 떨게 만들었고, 다른 승객과 노파 사이를 갈라놓아 승객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연대를 만들어냈다. 중년 여성의 논리에 결박된 노파는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이 추위를 어떻게 감내해야 하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파는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다. 아무리 중년 여성의 말이 참이라고 해서 그녀의 추위가 사라지는 거나 덜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도의적인 논리와 자신의 이기 속에서 노파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했다.
노파는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큰소리로 불평을 외치고 있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바로 옆에 서 있던 파티 룩 차림을 한 젊은 여자의 찡그린 표정, 뒤에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를 기댄 남녀의 불쾌하다는 듯한 입 모양, 그 뒤 2인용 좌석에 앉은 두 중년 남성의 험상궂은 눈초리가 눈에 들어왔다. 노파의 시선 너머, 중년 여성으로 인해 단결한 추위의 여집합들은 일정하게 공유된 언짢음을 계속해서 노파를 향해 내비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프로파간다는 노파로 하여금 자신이 춥다는 사실을 숨기게 했다.
곰곰이 노파는 이 추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을 했다. 생각해보니 자신만이 이 추위를 느끼고 있는 것이 맞고 그렇다면 자신이 창밖과 같은 더위, 혹은 그보다 더한 더위를 다른 승객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노파는 중년 여성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노파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노파는 곧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기를 위해서 모두에게 피해를 주기를 꺼리지 않는 몰상식한 노인네로 보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노파의 입을 다물게 했다. 노파는 제게만 내리는 추위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노파는 깡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무례한 늙은이였지만 영 난폭하고 괘씸한 늙은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4,
손을 모으고 자세를 기울인다. 목은 옆으로 최대한 뺀 채,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바라본다. 노파의 눈은 바람들이 건너오는 길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길의 사이에 자신의 몸을 두려 한다. 제발이지 피해가라, 피해가라, 모아 쥔 두 손은 바람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노파는 이 바람을 멈추게 하려고 소리치지 않는다. 다만 기도할 뿐, 입은 벌렸으나 말을 하지 않았기에 노파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질 않는다. 버스가 멈추질 않는다. 중년 여성이 얼마 안 가 도착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도대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의 이름이 불리는 일이 없다.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5.
그러니까 글쎄 별 미친 노인을 다 보겠다니까요. 네, 그래요 다 더워 죽겠는데, 아니 자기가 추워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꺼 달라 에어컨을 꺼달라 하는데 왜, 요즘 더위가 그냥 더위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 짓도 안 하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기만 해도 주룩주룩 땀이 막 비 오듯 쏟아지는데, 여 뭐 이거 겨우 시원한 곳 이제 찾아서 다들 버스 안으로 들어온 거 아니에요. 그럼 자 보세요, 누가 대체 누가 더운 버스를 탈라 그럽니까. 저도 마 여름날 에어컨 고장 나면 그 다른 버스 타라 그럽니다. 원 사람들이 막 욕지거리하고 막 그러는데, 제가 멀쩡한 에어컨을 왜 끕니까 왜 꺼요. 그리고 보십쇼. 이게 이 바람이 사람이 얼어 디지는 그런 바람입니까? 자 손 한번 갔다 대 보세요. 시원하죠? 추운 게 아니라 시원한 겁니다. 근데 무슨 버스가 추워서 얼어 죽어? 내 세상 살다 그런 이야기는 첨 들어본다니까. 아. 이제 그만 말 좀 하소.
아. 시비야 처음에 있었지. 그래. 솔직히 말해서 들었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안 들을 수가 있나. 못 들은 척한 거지 다른 사람도 있으니까. 근데 그러다가 잠잠해지더라고 난 괜찮아진 줄 알았지. 잠잠하길래. 승객들도 아무 말 안 하고. 그게 참 딱한 일인데... 무어 어쩌겠소. 그래도 그 유별난 노인 하나 얼어 죽은 게 무슨 대수라고.. 이제 그만 가보세요, 이제 더 할 말 없수다.
아,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6.
딱딱하게 굳은 노파의 시체를 부검하는 수사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분명히 동상이었다. 하지만 버스 내 온도는 21도를 내려가지 않는 적절하게 시원한 상태였다. 결코, 사람이 얼어 죽을 만한 온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험대 위에 있는 노파는 그런 물리적인 법칙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사람이 그 온도에는 동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노파는 딱딱하게 죽어있다. 이것은 분명히 예외적인 결과였다. 사람들은 각종 법들과 같은 인간이 만든 규칙에선 실수를 허용하면서도, 신이 만든 규칙에 관해서는 예외를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 예외가 노파였다.
그런 탓인지 어딘가 모르게 노파의 시체는 일반적인 시체와 다르게 조금 어색해 보였다. 부검 팀장은 어떻게든 이 노파를 합리적인 이유를 동원하여 얼려 죽여야 했다. 신에게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은 생존과 더불어 신이 인간에게 맡긴 또 다른 의무였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 노파의 어깨를 만지고 돌아선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전원이 꺼진 냉동차에서 갇힌 한 남자가 여기는 너무 춥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동사한 사례를 들먹이며, 믿음만으로 죽어간 사람의 한 예에 노파의 시체를 추가하려 했다. 그의 의견을 들은 사람들은 재빨리 노파의 시체를 처분하고 새로운 사례로 기록하고 등록하는 일을 마치고 시체의 곁을 떠났다. 물론 그 시체 곁에는 이견이 있던 한 남자가 남아있었다.
이견이 있던 한 남자는 홀로 남아 두어 번 노파의 몸을 다시 가르고 뒤집어 보기는 했지만. 그도 역시 동사 이외에 별다른 사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그는 자루를 꺼내 노파의 몸을 덮고는 시체를 보관하는 냉동실에 넣었다. 동사자를 냉동실의 넣는 무자비한 자신에 행동이 조금 계면쩍었던 모양인지 그는 노파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하지만 그가 느낀 씁쓸함은 냉동실의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고 그는 늦은 저녁 약속을 함께할 파티룩의 젊은 여자를 생각했다. 문득 그녀를 생각하고 아랫도리가 두둑해진 그는 조금 머쓱해져 주위를 둘러보고 혼자임을 재확인했다. 그는 그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그녀를 만나고 싶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부검실을 나섰다.
그날 밤 파티룩의 젊은 여자와 그는 그의 오피스텔에서 오랜만에 전에 없던 격렬한 섹스를 마쳤다. 오랜만에 열정적인 섹스는 지나치게 그들을 달구었기에, 에어컨을 틀고 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을 준비하는 그에게 파티룩의 젊은 여자는 어제의 신경질적인 노파에 대해 불평을 했다, 그는 젊은 여자를 달래려는 듯 애무를 시작했고 아침에 또 한 번의 격렬한 섹스를 마쳤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에어컨을 쳐다보고 리모컨으로 온도를 더 낮게 설정했다. 그는 에어컨을 발명한 천재 새끼가 너무 고맙다면서 여자의 가슴을 만졌다. 다시 키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격렬한 섹스. 그렇게 총 세 번의 섹스 후 그는 땀을 씻고 출근을 했다. 혼자 그의 오피스텔의 남겨진 파티 룩의 젊은 여자는 화장을 고치면서 더운 날에는 화장이 잘 먹지 않는다고 불평을 덕지덕지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젊은 더운 날에는 언제나 에어컨이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