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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집실

무표정한 사내의 출처

by 설다람


행복의 모퉁이에는 불안과 우울의 신사들이 잠복해있다. 그들은 사무적인 태도로 행복의 임기가 끝날 때 즘 정산을 위해서 찾아온다. 그간 느꼈던 즐거움을 곱씹으면서 앞으로 부과될 우울과 불안의 종류의 강도를 매겨서 붙여준다.

그들은 계산기를 틱틱거리면서 굉장히 아니꼬운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번 주에 평소에 좋아하던과 선배와 두 번이나 관계를 맺었군.’

‘네.’

‘좋았나?’

‘나쁠 건 없었죠. 아니, 나쁠 리가 없죠.’

‘안타깝군, 3주 동안 제대로 과제 못 할 정도의 우울 추가해.’

우울의 신사가 중절모를 쓴 동료에게 말했다.

‘아니 왜요?’

‘원래 그런 거야 행복에는 우울과 불안이 세금처럼 달라붙기 마련이지. 그러나 그것을 개개인에게 맡겨둘 수 없었네, 자네도 알겠지만 국가에서 아무리 촘촘히 세법을 조직해 펼쳐놓아도 약삭빠른 놈들은 제 몸과 맘을 잘라서라도 빠져나간다네, 그렇다면 행복과 같은 중요한 일을 스스로에게 맡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행복만을 챙기려는 족속들이 늘어나버리겠지.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라네, 자네는 정직하게 행복을 느끼기 위한 정당한 수속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네.’

‘3주 동안 우울해지는 것으로요?’

‘그렇지 마냥 우울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네 우리가 자세한 사항들을 권고해 줄 테니 그저 잘 따라서 심각해지고 무기력해지면 된다네.

어디 보자. 세상에, 자네 이번 주에 조형동 칼국수를 세 번이나 먹다니, 제길 그건 너무 맛있잖아? 그저 과제를 못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군 역병이라도 걸리거나. 팔이라도 부러뜨려야 하나. 좀 심한가. 음 적당히 세미한 것이 좋을 텐데.’

‘가정불화 어떤가?’

중절모를 쓴 사내가 제안했다.

‘그거 좋지. 삼 주 동안 과제를 못할 정도의 우울과 가정불화라. 딱이군.’

‘좀 심한 거 아니에요. 겨우 하루치의 행복이었는데?’

‘우리도 그 점을 부정하진 않아, 다만 정당한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지. 자네는 성실한 인간이지 않나. 군말 없이 협조하길 부탁하네,

우리는 자네를 더 큰 불행과 우울의 골목으로 밀어붙이고 싶지 않아 누군들 좋아서 이러는 줄 아나. 행복이라는 것은 규모의 절제가 필요하다네. 지구의 모두가 행복하다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동시에 멈출 것일세. 에너지가 한 쪽으로 치우쳐져야지만 비로소 술래잡기는 시작된다는 것이지.

원운동이란 그렇게 구심점과 동체 사이의 절묘한 균형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네. 자세한 사항은 스스로 겪게 될 것이니 우울할 때마다 메모하는 것을 추천하네. 그러면 조금 낫다더군. 그럼 2만’


그들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황량하고 막막한 행복의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진다. 포근하고 따뜻한 행복의 모퉁이는 왜 그렇게 닳아있고 해진 것일까. 곧 삼주 동안 과제를 못할 정도의 우울과 가정불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제 지독한 하루들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올 것이다. 너무 행복했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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