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살던 한 소녀가 갑자기 사라지고 정확히 그 시간에 이집트의 한 마을에서 그 소녀가 발견되는 일이나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이가 만 1세에 자신의 전생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자신을 과거 화성에 살았던 존재라 주장하는 일 따위 말이다. 이런 현상을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부르는 까닭은 이 현상들이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법칙을 무시해버리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들이 바로 초자연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견해의 바닥에는 하나의 단단한 전제가 깔려있다. 바로 자연엔 법칙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이 사실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고 있다. 각기 다른 규칙에 지배받는 거시계와 미시계, 그리고 현실계 잇는 완전한 이론을 갈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이 말과 동일하다. 이 세상은 신이 만든 문제 또는 신이 만들지 않았어도 답이 있어야만 하는 아주 잘 만들어진 문제라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틀렸다. 세상은 사실 신이 낸 문제라기보다 신이 벌이고 있는 즉흥 연주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신의 입장에서는 전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이 만든 법칙을 무시했을 뿐이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법칙이다.
이제 이 전능한 신이 인간의 세계에서 벌인 잔인한 장난 중 하나를 살펴보자.
이 사건은 1972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비영리 의료 센터인 세다스 시나이 병원 앞에서 피투성이의 흰 가운을 입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소녀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표정이 삭제된 듯한 얼굴을 했기 때문이다. 간호사와 의사는 거북함을 뒤로 하고 의무감으로 소녀를 진찰했다. 소녀의 치아는 송곳니가 비정상적으로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고 매끈하고 하얀 피부는 보기와는 다르게 코뿔소 가죽처럼 두껍고 단단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 의사는 간호사에게 혹시 모를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구속복을 입히고 치료를 시작하자고 한다. 간호사들은 곧 소녀에게 구속복을 입혔고 의사는 진정제를 투여하려고 주사 바늘의 소녀의 피부에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소녀는 자신을 억제하던 힘이 해방된 듯 구속복을 믿을 수 없는 힘을 찢어냈고 자신에게 진정제를 투여하려던 의사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놀란 그는 ‘당신 정체가 뭐야’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소녀가 대답했다.
“나는 신이다.”
소녀는 그 말 한마디와 찢긴 구속복, 강한 충격에 일그러진 침대의 팔걸이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신의 이 잔인하며 유쾌한 장난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희열을 안겨주었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고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이 귀신 혹은 초현실적인 현상의 실재를 증명한다며 공포에 떨었고 또 다른 사람은 상처의 딱지를 뗄 때 느끼는 흥분처럼 그 무서운 사건의 전모를 더 파고들며 들뜨기도 했다. 그 밖에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분명한 것은 한동안 그 지역 사람 모두가 이 사건이 미친 파장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번엔 그때 소녀에게 진정제를 놓으려 했던 렘퍼드 박사가 적었던 그 날의 일기를 한번 보자.
1972년 6월 12일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나는 오늘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내 눈으로 보았다. 공포에 휩싸여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소녀의 기이한 신체적 특징과 괴력은 그 순간 두려움을 주었지만 온종일 나를 공포에 떨게 한 것은 그 말이었다. 나는 신이다. 그 말은 사람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소녀가 병원을 빠져나간 후에 나는 그 말을 되뇌었다.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만약에 신이 그런 존재라면 우린 대체 누구에게 기도할 수 있을까. 그저 그 소녀가 특이한 광인이었다고 믿고 싶다. 이 간절한 바람이 헛된 바람이라면, 유익한 행동이라곤 양동이에 머리를 파묻는 것뿐일 것이다. 우리는, 인류는 실패했다. 그것은 신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이다.
이쯤 되면 신이라는 작자가 대관절 어떠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이렇게까지 무력해져야만 하나 의구심과 반항심이 들게 된다. 하지만 렘퍼드 박사의 말처럼 그런 존재가 실제로 우리의 신이라면, 우리가 그의 피조물이라면 우린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여기에 참고할 만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다음은 한국의 박수무당의 솔직한 고백이다.
사실 전 접신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한 무당 분을 만났고 그분이 제게 신기가 있다며 신을 내려주셨지요. 신 내림의 의식은 진지하고 거창했지만 전 사실 영혼이 찾아온다거나 하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거기까지 가다 보니 이제 와 난 아무래도 무당이 아닌 것 같다 말하기도 부끄럽고 심지어는 아무런 느낌조차 들지 않는 것이 민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까짓것 연기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무당들이 신을 받을 때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며 신이 온 것마냥 춤을 추며 방언을 했지요. 그 분위기에서 흐름을 맡기니 희한하게도 저도 모르게 속 깊은 곳에서 감정이 고양되어 넘쳐흐르며 진짜 신을 모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점집을 차리고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해주었습니다. 물론 숫제 거짓부렁이었죠. 그건 일종의 환전 같은 것입니다. 점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고민을 가져오고 저는 그 고민을 예언을 통해 돈으로 바꿉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고민을 돈으로 바꾸어 제게 떠넘기고 가는 것이지요. 그것으로 자신의 고민이 자신에게서 떠나가 버렸다는 듯이 홀가분하게 점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허나 그분은 달랐습니다.
무당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이 이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마음속으로 심각하게 헤아려 보는 것 같았다.
네 그분은 달랐습니다. 늦저녁 점집을 닫을 시간쯤에 그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방문을 닫자 전 이상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분이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제가 앉아있던 방이 현세로부터 분리되어 흔히 말하는 이계로 떨어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아무렇지 않게 제 앞에 앉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점을 치러 왔습니다.
저는 범상치 않은 기운에 이제 신이 돌아가 점을 칠 수 없다며 대충 둘러대고 그분을 돌려보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존재가 심히 이상하고 두려워 제가 헛으로 점을 친다고 이실직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그분은 또 한 번 나는 점을 치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늘상하던 대로 거짓부렁으로 신 내림 흉내를 내고 점을 내리려 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파르르 떨고 있는 제 두 손목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네게 이것을 허락하였느냐
저는 아무도 그러지 아니하였고,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미천하여 제 주제를 모르고 허튼짓을 하였나이다. 부디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이 불쌍한 영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빌었습니다.
한참을 미친 듯이 빌며 용서를 구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분은 온데간데없고 제 손바닥은 모두 까져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어 밖을 보니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점집을 그만두고 나와 가게를 차려 슈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한 말이 만약에 그분 뜻에 맞지 아니하면 그분이여 저를 용서하소서. 저를 부디 용서하소서.
신비한 체험을 증언한 이 평범한 인간들은 정말로 신을 만난 것일까. 여러분 중 대개는 아직도 그 사실에 무한한 의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적어도 이것이 무슨 해괴한 장난질인가 하는 정도의 반응은 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리고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 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나는 우리가 부정하는 이런 일이 만약 우리의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진다면 어떻게 그 일을 받아들일 것인가가 궁금하다.
그때도 당신은 자신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현실적이고 설명 불가능한 현상을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경험과 지식을 버리고 인정할 것인가.
내 말을 이해했다면.
이제 동전을 던져보자.
참고자료
‘The Expressionless', Ivysaur, Creepypasta 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