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집실

작은방

by 설다람


얼마 전에 작은방이라는 이름의 상담소를 학교 한편에 차려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은근히 입소문을 타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각자의 사연들을 내려놓고 간다. 그들의 사연은 생각보다 다채롭고 흥미로워 제법 나를 즐겁게 해주는데, 그럴 때이면 마치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료로 실험하는 화학자가 된 듯한 기분에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정신분석학이 이상행동의 서사구조를 만들어 병적인 정신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비록 학위가 없더라도 나는 꽤 괜찮은 정신분석학자 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천부적인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하루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입이 근질거려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내게 일기를 쓰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이다. 사람들이 무어라 말을 하면 나는 그냥 그 무어라에 ‘그런 건 그런 게 아닐까요.’만 덧붙이면 된다. 물론 거짓말쟁이라 그 서사 구조들이 옳은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나에게 만우절은 연중에 있는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로 매년 나는 기막힌 거짓말로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이곤 했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밀려있는 원고들을 처리하느라 올 만우절에는 이렇다 할 멋진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그 이후로 만우절 날 죽여주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무슨 일을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로 만우절에 하지 못한 거짓말을 여기서 해버려야 속에 남아있는 찝찝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의 글을 기록하려 한다.

내담자와의 대화는 전적으로 비밀에 부치는 것이 당연하나 이것은 내가 쓴 글이므로 모두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작은방이 자랑하는 비밀 보장의 원칙을 결코 위배하지 않으며 이후 ‘작은방’을 찾아올 모든 잠재적인 손님들 역시 개인정보누출 문제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작은방’을 신뢰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작은방’을 연 첫 주 토요일 밤 아홉 시 나는 노트북으로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단편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일에는 매우 게으른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원고를 기다리고 있을 편집자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면 반드시 내일까지 그 단편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다행히 주말이었기에 손님도 없었고 나 또한 손님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 절실했다. 긴 숨을 내쉬고 ‘그때 그는’이라고 문장을 시작하려는 순간 누군가 노크를 하며 ‘계세요?’라고 물었다. 어딘가 우울한 음조의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영업 중 팻말을 걸어둔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이 손님이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손님이라고 말했고 연애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상담을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 있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막대기에 달린 창백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상담을 마치기 위해 나는 그런 사소한 인지적 오차에서 오는 불편함을 무시하고 손님에게 물었다.

“네 손님, 무엇이 고민이세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었는데 완성된 그는 제 말을 듣지 않고 저를 사랑하지도 않아요. 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해 버릴까 두려워 이렇게 일단 이렇게 목을 잘라왔어요.”

“그렇군요. 왜 그가 손님을 좋아하지 않는 거죠?”

“모르겠어요. 저는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어요. 가장 비싼 천을 써 피부를 만들어주었고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는 눈을 달아주었어요. 장미보다 더 붉고 진한 입술은 물론이고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었죠. 그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는 내가 자신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경멸했어요. 창조자인 제가 자신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경멸의 이유였어요. 그는 제게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네요,’라고 차갑게 말했어요. 저는 그의 말에 분노를 느꼈지만 가장 슬픈 것은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이었어요. 그에 비하면, 선생님도 보시면 알겠지만 이 남자는 정말로 아름다워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남자는 내가 봤던 그 어떤 남자보다 잘생기고 아름다웠다.- 그래요, 저따위는 시궁창 쥐새끼만도 못한 존재예요.” 이 대목에서 그녀는 이제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가 흐느낄 때마다 남자의 얼굴은 위, 아래로 흔들렸다. 이제 상담을 끝낼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준비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에게 심장을 주었나요?”

“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그에게 심장을 주었냐고 물었어요.”

“그걸 까먹다니! 그거였어. 문제는 그거였어요. 어떻게 내가 그걸 깜빡했지?”

준비된 대답은 늘 그렇듯 제구실을 충실히 다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럼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밝은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내뱉고 창문을 닫았다. 벽 너머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며 여자가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주 토요일 밤 아홉 시 나는 노트북을 켜고 아직 끝나지 않은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의 원고를 창에 띄웠다. 편집자는 이번에도 마감을 어기면 원고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윽박질렀었다. ‘그때 누군가가’라고 문장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작은방을 노크했다. 그녀였다. 그녀는 저번 주와 동일하게 고민이 있다고 말하며 문을 열었다.

“네 이번에는 무슨 고민이세요?”

나는 귀찮은 기색을 애써 감추며 밝게 물었다.

“저기 어떤 심장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는 짙은 자주색 벨벳에 다이아몬드 조각이 뿌려져 있고 다른 하나는 밝은 주홍색 비단에 작은 사파이어로 무늬를 박은 건데. 어떤 게 더 나을까요?”

그녀는 두 심장을 창문 위로 올려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지도 않고 ‘자주색 벨벳 쪽이 낫네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나는 편집자에게 이번에도 글을 다 쓰지 못할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다. 편집자에게선 답장이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 밤 아홉 시 작은방에서 나는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아직도 그는’이라고 문장을 적자마자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그녀였다. 그녀는 내가 말에 따라 자주색 벨벳 심장을 넣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녀는 손 두 개를 올려놓더니 어느 쪽이 더 낫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두 손의 차이점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어떤 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대충 ‘네, 그런 것 같네요,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맞아요,’라고 대꾸를 해주다가 ‘오른쪽 손이 더 낫네요.’라고 상담을 종료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만족스러워하며 돌아갔다. 시계를 보니 12시였다. 편집자가 새로 제시한 마감일은 이번 주 일요일이었으니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집에 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밤 아홉 시 그녀가 찾아왔다. 어떤 발가락이 좋을까요? 세 번째 거요. 다음날 밤 아홉 시 그녀가 찾아왔다. 어떤 피부색이 좋을까요? 다섯 번째가 가장 낫네요. 다음날 밤 아홉 시 그녀가 찾아왔다. 코는 어떤 게 나으세요? 첫 번째요. 다음날 밤 아홉 시 그녀가 찾아왔다. 어떤 머리색이 좋을까요? 두 번째가.

토요일 밤 아홉 시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 때문에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번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돌려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창이 열리고 그녀가 물었다.

“어떤 차를 좋아하세요?”

그 말을 듣고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에 신경을 쓰느라 상담자와 내담자가 유지해야 할 거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첫 상담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창밖의 그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엔 내가 있었다. 아직 나를 완전히 닮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곧 내가 될 얼굴이었다. 공포를 느낀 나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대면할 생각으로 상담소 밖으로 나왔다. 어떤 간격이 형성되었건 간에 돌이켜야 했다. 그녀는 내담자의 위치로 나는 상담자의 위치로, 모든 것을 바르게 돌려놓아야 했다.

그러나 내담자가 있어야 할 자리엔 막대기에 꽂혀 있는 나의 얼굴만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내 얼굴은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막대기를 주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상담소 안에 자리로 돌아와 ‘반드시 끝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마저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나는 ‘아쉽게도 그녀는’이라고 문장을 시작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 가지 헛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