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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서 본다. 빈 도시가 보인다. 무엇을 하러 이곳에 있는 것인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답은 없다. 다시 주변을 훑어본다. 확실히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생각도 없다. 조금 걸어보기로 한다. 한 블록을 걷자 조그만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고른다. 화이트 초콜릿과 설탕이 발려지지 않은 닥터 도넛이 있다. 편의점에 웬 닥터 도넛이라고 생각하지만 별생각 없이 혼데링을 고르고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오니 콘크리트 빌딩들이 탁한 누런빛을 띠며 오래된 유적처럼 늘어서 있다. 편의점 밖 계단에 걸터앉아 혼데링를 먹기 시작한다. 편의점은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도시의 빈 자리를 바라본다.
도넛처럼 겉만 존재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공간이 겉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찰나에 생겼다 사라진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래도 초기값 설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옆에 있는 화이트 초콜릿을 집어 들고 초콜릿이 아니라 마실 것을 사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한다. 초콜릿을 먹으려다 도로 왼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거리는 탁한 먼지가 사방에 깔려 있다. 마치 어디서 철거 작업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하지만 어디서도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불현듯 누구라도 만나야겠다는 충동이 일어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하지만 골목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뛰기 시작한다. 골목 모퉁이를 돈다. 반대쪽으로 뛰어가 다른 모퉁이를 돈다.
다시 돌아와 다른 모퉁이를 돈다. 없다. 역시 괜한 짓을 하고 말았다는 기분이 온몸에 감돌며 갑자기 존재의 한 귀퉁이가 툭 떨어져 버린 듯한 감정이 든다. 그 부서진 모서리 때문에 좀 전의 허탈한 감정은 나를 떠나서 굴러가기 시작한다. 탁한 먼지들이 자욱한 거리들로 그 감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 따라가지 않는다. 미련하다고 작게 웅얼거려 본다.
이제 그만할 때가 온 것이다.
종이를 구기듯 앞에 보이던 화면을 접어버린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요의를 느끼지만 참아보려 한다. 하지만 참을 수 없어 짜증을 내며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은 비어있었다.
물이 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