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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Apr 30. 2023

2023.04.30.

꿈기록



꿈에서 나는


 율주라는 고을의 양 씨 가문 장녀인 세란이었다. 


 양 씨 가문의 장녀들은 열여덟이 되는 해, 몸이 자연발화하여 죽어왔다.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조상은, 딸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발화일에 맞추어 화화(花火)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화화제 날이면, 고을 사람들은 집안에 탈만한 것들을 모아, 제단 위에 앉은 장녀 주위로 하나씩 쌓는다. 그렇게 나뭇가지, 오래된 가구, 해진 옷, 터진 솜이불 따위로 지은 둥지가 완성되고, 장녀는 화기를 검지 끝에 모았다가, 다른 팔을 그어 불을 피운다. 깃발처럼 펄럭이는 불길이, 주변을 하나씩 잡아 먹어가며, 몸집을 키우고, 마침내 거대한 붉은 바람이 되어 춤을 춘다.

 밤하늘을 밝히는 뜨거운 율동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올 한 해도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기도한다.

 축제 다음날, 아직 불을 머금고 있는 잿더미를 갈퀴로 끌어내 완전히 식힌다. 제를 지낸 터에 검은 원이 남는다. 이 원은 다음 장녀가 제단에 오르기 전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란은, 당연하게도, 불타 죽을 생각이 없었다. 세란에겐 계획이 있었다. 화마로부터 궁을 지키는 불가사리 석상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입궐이 가능해야 했다. 세란은 오래 전부터 부모 몰래 과거를 준비해왔고, 마침내 급제해내었다. 생일이 되기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첫 출근 궐내 각사를 견학하던 중 세란은 영회루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돌난간에 놓인 불가사리를 발견했다. 그때 세란은 돌로 된 불가사리의 눈알이 자신을 향해 구르는 것을 보았다. 시선을 피하고, 세란은 동료 무리를 따라 다리를 건넜다.

 교육이 끝나자 날이 어두워졌고, 세란은 출입패를 두고 왔다는 핑계로 영회루 앞 다리로 갔다. 

 그러나 불가사리 석상은 그 자리에 없었다. 빈 돌난간 위를 세란이 쓸어보려 했을 때 푸른 털로 잔뜩 덮인 짐승의 손이 세란의 팔목을 붙잡았다.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강한 악력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사자 머리에 코끼리 코가 달린, 불가사리가 서있었다. 불가사리는 그대로 세란을 바닥에 내치고는 잡아 삼키려 들었다.

 조금 전 충격으로, 어깨가 나간 세란은 한 팔을 들어 불가사리의 아가리를 밀어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칼날처럼 예리한 이빨이 세란의 손바닥을 반으로 갈랐다. 잘린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때 화기가 올라왔고 세란이 흘린 피가 불길이 되어 불가사리에게로 옮겨 붙었다. 세란의 손이 화염으로 아물기 시작했고, 어깨도 제자리를 찾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세란 스스로도 당황했다.

 불을 떼어내주려 불가사리에게 팔을 뻗자 꽃봉오리처럼 불꽃이 둥글게 부풀어 올라 불가사리를 삼켰다.

 주변이 환하게 비쳐졌고, 세란은 자신 주위를 궁을 지키는 모든 신수들이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수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해태가 바람처럼 날아와 혀로 불가사리를 핥아주었다. 그러자 불이 꺼졌고, 다시 어둠이 쳐졌다. 세란의 손에서 피어올랐던 불도 모두 속으로 사그라져있었다.

 해태가 세란에게 다가왔고, 세란은 물러서지 않았다.


약속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 번도 불타 본 적 없지만 꿈에서 경험한 온몸이 불타는 느낌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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