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쓴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힘들다. 특정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쓴 글은, 그 사람의 존재가 근거가 되어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자수성가를 이뤄낸 수억대의 자산가가 얘기하는 '인생 잘 사는 법'과 무일푼의 평범한 사람이 얘기하는 '인생 잘 사는 법'은 확실히 다르다. 사람들이 듣고, 따라 하고 싶은 것은 전자일 테다. 그다음으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해당 분야에서 어느 정도 해낸 사람이 쓴 글이 즐겨 소비된다. 도전할 만하고, 성취할 만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제시한 계단을 밟으면 저 위치까지는 가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책을 쓴 사람들이 왕왕 듣는 모멸적인 말 중에 하나는 '이정도는 나도 쓰겠다'라고 한다. 비록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실제로 글을 써 책을 내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더 심한 표현은 '내가 써도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이다. 이번에도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실제로 글을 써 결과물을 낸 경우는 보지 못했다. 주된 변명은 '쓸 수는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쓸 수는 있는데, 주제가 없어서'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글을 쓰는 것은 모두가 가능하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없는 주제를 발굴해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제아무리 직업적 백수로서 시간이 충분하다고 해도, 그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있는 시간'을 '없는 시간'으로 바꾸는 일에만 열심인 것이다.
대단하든, 대단하지 않든, 사람이라면 주어진 생을 살고, 생을 사는 법은 각기 다르면서도 엇비슷하다. 엇비슷하다는 점에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고,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고유함을 발견해낼 수 있다. 매력은 그 두 가지가 맹렬하게 부딪칠 때 생긴다고 믿는다. 심심한 채로 서로를 지나치기만 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라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게 있다면 글쓰기는 제법 할 만한 취미이며, 가끔은 재밌기도 하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자의식이 비대해진 사람들이 감정을 배설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믿음을 굳게 지닌 사람이지만 취미로서의 글쓰기가 지닌 유용성에 대해서 부정한 적은 없다.
진짜로 쓰고 싶은 주제는 '편집 독서'와 '애완행위반대주의'이지만 '애완행위반대주의'는 동물 보호 단체와 협회들로부터도 외면받았고, '편집 독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상당히 소모되는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제1목표는 파이프라인을 증설하는 것이고, 두 가지 주제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사실 지금도 조금 더 명확한 주제와 컨셉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글 쓰는 일은 2주나 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진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글을 억지로 끝내고 나서도 꽤 긴 시간을 밍기적거린 셈이다.(밍기적거리다가 방언이고, 뭉그적거리다가 표준어이지만, 밍기적거리다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적어도 내 귀에)
사소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 재즈 감상 독려 뉴스레터도 시작했고, 브랜드 전문가 과정도 끝냈다. 무엇보다 학위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직 온라인 제출과 실물 제출이 남았지만, 심사는 통과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수차례 경험해 온 터라, 긴장의 끈 놓지 않고 있다.
어제는 서울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바이어로 다녀왔다.
왜 작가로 가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작가로 가지 않는 이유는 확실했다.
1. 근무를 해야 하고
2. 곧 버려질 굿즈를 제작해 환경을 해치고 싶지 않았고
3. 무엇보다도 부스 임대 비용을 충당할 만큼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글은 쓴다고 지구를 해치지도 않고 투자 비용도 들지 않는다.
물론 시간을 좀 버리긴 했다.
이걸 이른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