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은 팬케이크 가루를 처리하느라 회사를 마치고 돌아와 팬케이크를 구웠다. 예전에는 나름 팬케이크 굽는 데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젬병이었다. 하나로 제대로 구운 것이 없었다. 반죽부터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팬케이크가 실패하고 묽다고 판단해 가루를 더 넣어 걸쭉하게 만들었지만, 두 번째도 실패했다. 분명 제품 패키지 뒷면 설명대로 한쪽 면에 기포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뒤집었는데, 하얀 반죽 그대로 덜 익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네 조각으로 나눈 뒤 볶았다. 뒤에 몇 개는 제법 그럴듯하게 나왔지만, 나머지 비슷하게 망쳤다. 10장의 팬케이크를 굽고, 설거지를 끝마치니 시간은 10시였다.
그러나 아직 내일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일이 남았기에 잠들 수 없었다.(원래 취침 시간은 10시이다) 냉장고에서 닭가슴살을 꺼내 도마에 올리고 토막토막 썰어 도시락 통에 넣었다. 사과도 잊지 않고 4분의 1로 자르고 그 조각을 다시 심등분해 다른 통에 넣었다. 식은 팬케이크 하나도 추가해 내일 점심 준비를 모두 마무리했다. 도마와 칼을 씻어 싱크대 위 타일에 마르게 둔 뒤, 식탁에 앉아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저녁을 몇 번 더 반복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게, 생일까.
심지어 오늘은 분리수거 버리기, 빨래하기, 바닥 쓸기도 하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무료했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무료한 것인지도 몰랐다. 일상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삼키는 장면을 매일 같이 목격한다. 통근 시간에 머리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난 움베르트 에코가 아니다. 에코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명확한 논리적 체계를 갖춘 논문을 적고 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얼기설기 조직된 생각이 바다에 버려진 그물처럼 떠다니고 있다. 이런 사실에 분노조차 느끼지 않는, 무감각한 미래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정말 무뎌질까. 신경증 같은 집착과 간절함이 지금 있긴 한가. 놓치고 싶지 않는 것을 놓치고 있는 순간에도, 사람의 온기는 왜 그토록 갈망하는가. 모래를 잘근잘근 씹는 기분이다. 그저 이런 푸념에 적셔지는 일에 중독된 것일 수도 있다. 편한 길로 도망치는 것이다. 이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닌데, 특별하다고 믿는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거나, 위로받는 일은 나약한 사람들이다-라는 편협한 사고가 때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
팬케이크를 굽는 데, 저녁 시간을 날렸다고 위로받고 싶지는 않다.
농담거리로 삼기 좋은, 다분히 일상적인 노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