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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Dec 29. 2023

어긋난, 그러나 달리 바꿀 수 없는, 하지만 제자리를

어긋난, 그러나 달리 바꿀 수 없는, 하지만 제자리를 찾아가는

 회사에서 쓰던 키보드가 고장 나 새로 구매하게 되었다. 이전에 쓰던 키보드는 가로가 조금 긴 편이었는데, 새로 산 키보드는 조금 짧고, 키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스페이스 바가 유난히 길어, 사진을 드래그로 늘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구매평에는 이 점을 두고 한영 키를 누르고 싶었는데 스페이스가 쳐졌다는 둥,  Alt 위치가 왜 이렇게 머냐는 둥,  악평을 퍼붓는 글이 몇몇 있었는데, 별점 테러를 강행하고 싶을 만큼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편의를 위해 추가한 멀티미디어 키였다. 이전 키보드에서 정확히 백스페이스키가 있었던 자리에 멀티미디어 키가 있어, 앞에 쓴 문자를 지우려 연타하는 순간 기본 앱으로 설정해 둔 영상 프로그램이 열린다. 열 번 연타했다면, 순식간에 열 개의 창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능이 그리 좋지 않은 노트북이라 창을 삭제하려면 창이 완전히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아직은 한 글자를 지울 때마다, 영상 창을 몇 번 띄웠다 닫는다. 헛타자를 반복하다 보면, 어긋난 것들이 맞춰져 가는 느낌이 든다. 차츰 실수는 줄어들 것이고, 어느 순간 손가락은 달라진 키 간격과 배열에 익숙해질 것이다. 

 현대인에게 키보드와 마우스는 확장된 신체 기관이며,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용에는 무리가 없다. 세벌식 타자기만 아니라면. 왼손이 아프지 않았을 때는 기본적인 타자법으로 양손을 동일한 자세로 타자를 쳤지만, 지금은 통증과 효율성이 적당히 타협한 어정쩡한 자세로 타자를 치고 있다, 재밌게도 원래 타자 실력도 그리 좋지 않았던 터라, 핸디캡을 얻은 뒤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느리다. 

 마우스 클릭을 많이 해서 오른손 검지가 따금거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Autohotkey로 Capslock 키를 왼쪽 마우스 버튼으로, 윈도우 키를 오른쪽 마우스 버튼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른손 통증은, 눈이 왔던 크리스마스 날 횡단보도를 건너다 미끄러져 바닥에 오른손을 찍어 붓기가 한 달 동안 빠지지 않았었는데, 그 상태로 만화를 마무리하겠다고 얼음팩을 손에 묶고 작업한 대가이기도 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미련스럽게 그렸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때 무리하지 않았더라면 '바운싱 with 버드'를 완결 짓지 못했을 것이다. 게으른 사람이니까, 해야 할 때,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을 때, 미리미리 해두어야 한다. 스케러가 멈춰 대기열에 일감이 모이는 상황을 지독히도 싫어한다는 사실이 웃긴 부분이긴 하다. 모든 원인은 내게 있다. 결국 스스로를 지독히도 싫어한다는, 평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재 키보드는 펜타그래프형만 사용하고 있다. 펜타그래프형 키보드의 특징은 키를 누르는 축이 x형으로 다른 키보드에 비해 낮은 높이로 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손가락에 무리가 덜간다.  기타도 마찬가지로 현의 높이가 낮을수록 장력이 약해지고 지판을 세게 누르지 않아도 편하게 소리낼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었자만 이걸 모르고 있었다. 기타 줄이 지판에 닿으며 버징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줄 높이를 올려야 하는 줄로 알았다. 기타리스트 중에 깔끔한 소리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게 세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한 것이었다. 다른 친구가 내 기타를 잡고, '줄 왤케 높여놨냐?' 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다. 지금은 다 지난 일이니 돌이킬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레코딩 시 기타 버징을 비롯한 여러 소음에 민감해지지 말라는 조언이 있다.

소음도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직접 연주한 음을 담는다면, 소음은 피할 수 없다.


통증도 소음이다.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나아지는 데 필사적이어야 한다.


아픔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코드를 잊지 않기 위해 종종 허공에 코드 폼을 지어본다. 들리지 않지만, 짚은 음이 내고 싶었던 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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