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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Jan 02. 2024

인식의 문제, 때론 무료함

 무료함은 이기기 힘든 질병이다. 일상을 밋밋하게 보내야 하는 이유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무료함에 대한 면역을 기르기 위해서다. 낙엽처럼 건조한 시간들이 바스러졌고, 오후의 낯빛은 흔히 어두워졌다. 편의점에 간편식을 고르는 일도 지루했다. 제품들의 포장지는 자신을 구매해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예산은 제한적이었고 식욕도 강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식욕이 강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도 식탐이 심하신 분들이 아니니, 가족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식욕이 없다고, 맛의 우수함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체적으로 맛없다고 느끼는 것도 그런대로 먹어왔다. 그러나 해물만은 입에 대기 힘들다. 웃기는 건 해물은 못 먹으면서, 초밥은 먹을 수 있다. 인식의 문제라고 주변에서 말들했다. 문화권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결정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김이 반찬이 될 수 있지만, 외국에선 바다의 잡초라 불린다. 인식의 문제이라는 지적은 옳은 진단이다. 하지만 인식의 문제는 원인을 안다고 해도, 쉽사리 바꿀 수 없다. 그야말로 '인식'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감각기관이 수용하는 외부 자극과 그것을 해석하는 뇌, 반응하는 신체, 그리고 최종적인 판단'을 객관화하는 일을 부지런히 실천하기 위해선 보다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게 결여된 상태가 무료함을 지속시킨다. 짜파게티를 사 와 전자렌지에 끓여먹었다. 면이 조금 덜 익었지만, 분 것보다는 나았다. 조촐한 저녁을 마치고, 영어 발음 강의를 유튜브로 틀어놓고 설거지했다. 언어에 따라 무지개에서 구분할 수 있는 색이 다른 것처럼, 언어마다 인지 가능한 음가가 다르다. 사람들마다 수의적인 발음 차이가 있더라도, 음가의 경계를 구분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면 같은 음소로 인식한다.  영어가 아니더라도 소리내는 법을 배우는 건 사고의 여백을 채우는 데 효과적이다. 이게 공부가 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접시를 뒤집어 받침대에 올린다. 물방울이 접시 뒷면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소용 없는 저녁이 몸을 말고 있었다. 내일은 조금 밝게 웃어야지. '하루종일 듣는 재즈 카페 감성 플레이리스트' 같은 플레이리스트와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기분 상하는 이유로 그만한 게 없다.


 카페에서 좋은 음악을 들을 순 있지만, 카페에서 틀기 좋은 음악이 좋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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