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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Jan 03. 2024

비실용적 라이프 스타일

 책읽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글로만 된 책은 읽기 힘들다. 삽화나 사진이 있는 책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디자인 회사는 아니지만 디자인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자세가 필요한 곳이었다. 혼자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남은 시간에 휴게 공간에 있는 서적들을 뒤적거리다. '헤비 듀티'라는 제목의 작은 크기지만 두꺼운 책을 발견했다. 패션에 관한 책이었다. 책은 소개팅에 입고 나가면 문 여는 순간 아웃된다는, 등산복 스타일을 스케치와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패션 관련 책인 '샤토리얼리스트'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책이었다. 물건의 실제 목적에 부합하는 '진짜'가 헤비 듀티의 본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꾸미기 위해 메는 장식품으로서 가방이 아닌, 도구를 넣는 '가방'으로서의 '가방'이 진짜 '가방'인 것이다. 꽤 볼만한 책이었다. 책 내용 떄문이 아니라, 그림 때문에 읽을 만했다. 어린 아이가 연필을 단단히 쥐고 그린 듯한 느낌이 매력이었다. '헤비 듀티'에 대한 책답게 '헤비 듀티'스러운 그림체였다. 실용성을 갖추면서도 유쾌한 감각이 돋보이는 책들은. 한 번 읽고 나서는,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아 뭐 이런 느낌이었지'하는 식으로 머릿속에 대충 정리하게 둔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라고 만든 책이 실용 서적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항상 '실용적인 글을 써야지'라고 의지의 농도가 약한 다짐을 한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설이나 철학도 직간접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으나, 나같은 게으른 독자에게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방법이다. 비트겐슈타인 책을 읽고 건진 건 '인간의 언어를 좌표 평면의 눈금으로 보았을 때, 기존의 철학은 눈금으로 표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였다. 고전적인 철학 서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정확한 지점을 짚어내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고를 딱딱한 개체로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현재 잠정적으로 결론내렸다. 그에 반해 세기말의 빈이라는 지역성과 시대적 상황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그의 철학 사상이 태어나고, 발전되는 서사를 다룬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건 '진짜'이였기 때문이었다.

  본디 실용 서적은 실용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쓸 수 있다. 실용적인 지식의 영역도 '등기부등본 출력하기'보다는 넓고,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법'보다는 좁아야 한다. 그 사이에 해당되는 지식이 무엇이 있을까, 매일 고민한다. 한 3분 정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해, 지금 매우 비실용적인 글을 쓰고 말았다. 실패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난 재밌는 사실은 헤비 듀티를 발견한 회사에서 주최한 로고 공모전에 입상해 도서상품권 10만 원을 받았는데(대학생 때), 잃어버렸다가 퇴사할 때 찾았고, 다시 잃어버렸다. 


이러니, 실용적인 글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멍청한 짓 모음집이라면 모를까.  


뭐라도 하려는 중이고, 뭐라도 나오게 하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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