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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Jan 04. 2024

화분, 엘리베이터, 잠깐만요


 화분을 양손으로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음으로 끌차에 짐을 한가득 실은 사람이 들어왔고, 한 사람이 똑같이 짐을 한가득 실린 끌차를 들고 들어왔다. 맨 뒷자리로 간 사람이 2층을 눌러달라고 했다.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을 두고 말한 것이라 생각해, 가만히 있었다. 두 손엔 화분이 있었다. 팔꿈치로 버튼을 누를 수도 있었겠지만, 팔이 자유로운 사람이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다. 2층은 금방 지나갔고, 뒤의 남자가 2층을 눌러달라고 한 번 더 외쳤다. 그제야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2층을 눌렀다. 이미 2층을 지난 뒤다. 8층에서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나갔고, 16층에서 내가 내렸다. 복도로 걸어가는 내 등에 대고, 2층이 목적지인 사람이 욕을 했다. 꽤 심한 욕이었다. 화분을 들고 복도를 지나가며 생각했다. 2층을 누르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 사람이 내게 화를 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이 상황에 화를 내고 싶었던 것일까. 불쾌했다. 분을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욕하는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등 바로 뒤에서 욕을 내뱉으니, 꼭 팔꿈치를 움직이지 않은, 도와주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은, 싸가지 없는 태도의 나를 두고 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환경에서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고, 묻는 말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단답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새로 산 물건을 자랑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잘 사셨네요.' 정도이다. 어쩌다 아는 사람과 만나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걸을 때면, 일부러 볼 일이 있다고 헤어진 뒤, 시간을 두고 다시 가던 길을 간 적도 있다. 확실히 사회성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든 그다지 궁금하지 않고, 내가 그 사람에게 무신경하듯이 같은 거리감으로 대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무례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이 부족하다. 

  사람을 가려서 웃곤 한다. 사람을 가려서 큰소리로 떠들곤 한다. 사람을 가려서 농담을 하곤 한다. 재미없는 농담이지만, 꾸준히 하고 있고, 나름 스스로는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내 유머 감각의 뿌리는 '물리가 물렁물렁'인데, 그 책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주위에는 없는 듯하다. 내 말장난에 웃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게 꼭 내가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겠지만,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싸가지 없고, 자기만 알고, 이해타산적이고, 잇속만 챙기는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으로 보일 테다. 모두 맞는 말이니 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오해로 그렇게 보이는 경우는 피하고 싶다. 내가 진짜로 '싸가지 없고, 자기만 알고, 이해타산적이고, 잇속만 챙기는 비열한 짓'을 의도적으로 할 때만 그렇게 판단되고 싶다. 무엇이든 누명은 억울하다.

    엘리베이터에서 그 남자가 나를 싸가지 없게 보았다면, 그건 틀렸다고 정정해주고 싶다. 그런 사람은 맞지만, 그럴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음엔 팔꿈치로라도 버튼을 눌러드리겠다고 사과하는 건, 조금 더 고민해 볼 일이다. 뒤끝하고는. 졸렬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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