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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신은 오리엔탈펠리체드래곤힐8단지의 부실 공사를 적발하기 위해, 현장 인부 한 명을 희생시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HS 건설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영혼을 끌어올린 자들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경제의 신은 영혼을 팔면서까지 부를 얻으려 애쓰는 자들만 챙길 수밖에 없었다. 재정경제부 소속 신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되어 있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간, 불우한 인부를 제물로 바친 거나 다름없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경제의 신은 민하를 내려보냈다. 헬조선 경제 상황을 시찰한다는 명목 아래, 민하는 현장 인부의 유일한 핏줄인 딸의 안녕을 살피러 왔다. 헬조선은 여전히 헬이었고, 빈부 격차는 자본의 순리에 따라 커져가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헬조선의 불길을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다. 오랜만에 한강을 가로질러 날으며, 상쾌한 밤공기를 즐겼다. 지옥이 여기 있다면, 천국도 이곳에 있었다. 죽으면 조금 나은 세상이 있을 거라 믿는 순진한 사람들을 조롱하듯 한강 뷰의 아파트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민하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는 여자를 찾았다. 어리석은 여자는 무책임하게 몸을 강물에 던졌다. 날개를 세게 쳐서 공기를 밀어낸 민하는 사냥매처럼 여자를 정확히 낚아챘다.
한강 둔치에 라선을 내려둔 민하는 날개를 털었다. 날개가 흔들리면서 깃털 하나하나가 찬란하게 오로라 빛을 냈다.
라선은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왜 천사 처음 봐?"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민하가 말했다. 천사. 세상에 천사를 본 적 있는 사람이 있을까.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라선에게 민하가 쏘아붙였다.
"고작 9,000만 원 날렸다고 몸을 던져? 거기엔 네 아버지 사망보험금도 있어! 죄송하지도 않냐?"
모욕적인 말이었다. 라선은 몸을 떨며 화냈다.
"9,000만 원이 고작이라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가난이 뼛속 깊숙이 배인 삶에서 이제 벗어나나 싶었어. 죄송하냐고? 죽고 싶을 정도로 미안해. 그래서 몸 던졌어. 가난이란 배수구로 휘말려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가난한 사람은 주체적으로 죽는 것도 못 해?"
짝, 민하가 라선의 뺨을 때렸다.
"나약한 년. 주체적으로 죽는 건 할 수 있으면서, 주체적으로 사는 건 어려워서 못하냐?"
라선이 민하를 밀쳤다. 민하가 라선의 팔을 잡고 반대로 뒤집어 바닥에 눕혔다.
"네 삶엔 목표가 없어! 왠 줄 알아? 한 번도 네 삶을 고민해 본 적 없으니까. 네가 왜 가난한지 알아? 한 번도 돈을 좋아해 본 적 없으니까. 가난, 가난거리면 문제가 해결 돼? 극단적으로 절약만 하면 돈이 모일 거라고 생각해? 천만에 진심으로 돈에 목숨 걸지 않으면, 넌 천국 가서도 거지로 살 거야. 난 그런 놈들을 수두룩하게 봤어!"
민하가 맑은 눈으로 라선을 맹렬히 노려 보았다.
"부자는 천국 가기 어렵다고? 웃기고 있네. 부자 아니면 천국 가기도 힘들어. 너처럼 속 좁은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려면,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돈이 많아야 돼. 가난하면 각박해져. 날카로워져.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돈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없어도, 돈으로 사람을 구할 수는 있어. 너 자신도."
몸에서 힘이 빠졌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배알이 꼬이고 화나?"
라선의 양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당장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누구든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중에 가장 때려눕히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정신 좀 차렸냐, 얼간아."
대답 대신 라선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럼 일어나."
민하가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라선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옷의 묻은 흙을 털어주고 나서, 민하는 라선의 눈 위에 손을 덮었다가 뗐다.
"돈 벌러 가야지."
한강 공원 바람 산들거렸다. 라선은 강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를 응시했다. 삶의 목표가 눈동자 한가운데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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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을 듣고 깨어났을 때 라선은 뭉툭하게 썰린 기억을 뒤적였다. 꿈이었을까.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오로라 색으로 빛나는 깃털이 천사와의 조우가 환상이 아니었음을 말해줬다. 깃털 옆에는 하얀 쪽지가 있었다.
[오후 7시 타아와를 찾아갈 것,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331-133]
타아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주소를 찍어보니, 나오지 않았다. 근처에는 대기업 본사와 아트센터, 지식재산연구원이 있었다. 오타인가. 의문을 품었을 때, 아래에 문구가 써졌다.
[고양이를 따라갈 것]
라선은 쪽지를 폰으로 찍고, 주머니에 넣었다. 거울을 보고 집게핀으로 뒷머리를 꽉 고정시켰다. 뒷목이 시원했다. 아침으로 두부 한 모를 먹고 지하철로 달려갔다. 6시 40분 도시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아침 공기에서 상쾌한 맛이 났다. 달라진 것 없는 풍경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지난밤 사건이 어제와 오늘의 경계선을 그은 듯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라선은 노트북을 켰다. Slack으로 개발자가 보내온 초안을 열어 읽었다. 같은 문서 내에서도 용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 수정해 나간다. 보다 명확하고,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집중력의 불을 켰다.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작업에 몰입했다. 사무실의 그 누구도 라선의 업무 흐름을 깨뜨릴 수 없었다. 계획한 대로 6시에 맞춰 업무를 끝내고 정시 퇴근했다.
2호선을 타고 선릉역에 내려 '테헤란로 331-133'을 찾았다. 330과 332 사이 어디쯤 있지 않을까. 라선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가 앞에 나타났다. 고양이는 푸른 눈으로 라선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라선이 가까이 가자 고양이가 뒤를 돌아 뛰어갔다. 라선은 고양이를 따라 달렸다. 고양이는 빌딩 사이 비좁은 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몸을 틀어 라선은 틈을 지나갔다. 틈에서 나오니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었다. 고양이는 담장 위에서 손등을 핥고 있었다.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 정말? 주변을 둘러보니 담벼락 오른쪽 끝에 파이프 하나가 붙어있었다. 발로 몇 번 쳐서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60킬로는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라선은 가방을 담벼락 너머로 던지고는 파이프를 잡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았다. 중간쯤 갔을 때, 팔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새까매진 손바닥을 털고 다시 파이프를 잡았다. 더 이를 꽉 물었다. 조금 전 떨어진 지점을 올라갈 때, 팔과 다리에 온 힘을 실었다. 마침내 담장 윗부분을 잡았고, 벽을 넘었다. 이 모든 장면을 고양이는 시험감독관처럼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주워 들었다. 고양이가 담장에서 뛰어내려 라선 앞에 착지했다. 고양이 뒷편에 허름한 3층 짜리 녹색 빌딩이 있었다. 빌딩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사이에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빌딩 입구에는 '테헤란로 331-133'라는 주소판이 붙어 있었다. 문 앞으로 가자. 철컥하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라선은 살며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과 달리 안은 굵은 검은 목재로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잘못 배송된 상자처럼 라선은 어정쩡하게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에 딱 맞춰 오셨네요."
왼쪽은 소년, 오른쪽은 노인의 얼굴을 한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꽉 차 있으면서도 약간 쉰 목소리는 주파수가 맞지 않은 라디오 음처럼 들렸다.
"타아와 씨?"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