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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았다. 민하는 비행을 마치고, 빌딩 꼭대기에 앉아 서울 집값 변동을 복기했다. 서울의 주택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암도 예순이 되어 겨우 집 한 채를 구했고, 퇴계도 셋방살이에 시달렸다. 구한말부터 서울 집중 현상을 갈수록 심화되었고, 1920년에 이르러서는 5만 4천 가구가 경성에 살았다. 가옥은 3만 9천 호 뿐이었다. 1만 5천 가구는 여러 가구가 함께 한 가옥에 욱여넣어진 채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집세 오르는 건 당연했다.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극빈한 무주택자는 공터에 움막을 지어 살았다. 이들이 모여 사는 토막촌은 문화주택 개발 바람에 힘없이 날아갔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땅을 치며 울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 우리 집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집을 허무냐고 물었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었고,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와 경성부청이 달려들었을 뿐이었다.
세상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부를 내리지 않는다.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6.25 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주택이 파괴되었고, 주택난이 따라왔다. 판잣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정부는 '재건축주택' 오천오백 채를 건설했다. 면적은 9평, 방 두 칸과 마루, 부엌으로 나눠진 구조였다. 초가집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넘어갔고, 5년 뒤 58년에 최초의 아파트가 건설된다.
아파트는 곧 주택의 표준이 되었고, 중산층이 어떠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지금은 중산층은 씨가 말랐고, 아파트 가격은 평균의 기준을 한참이나 상회했다.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자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단 한 푼의 급여도 쓰지 않고 15년을 모아야 한다. 그마저도 15년 동안 집값이 상승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가능했다.
경제의 신은 전능(全能)하지 않다. 부동산 시장을 예측하고 조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가격은 미세한 분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진동 이상의 정보들이 결합된 변수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최종적으로 도출된 결과이다. 시장은 쉬지 않고 율동하는 파형이다. 그렇기에 가격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가격이 말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뿐이다. 신과 시장에 자비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손가락을 튕기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을 때, 점박이 고양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고양이 벼락을 맞은 민하가 짜증 냈다.
"넌 이게 재밌냐?"
"반가워서 그러지."
타아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타아와의 얼굴에 소년과 노인의 얼굴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반으로 쪼개졌다.
"BM을 잘못 설계했나, 유료 플랜으로 전환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네."
"설마, 너? 조금 봐주라는 얘기였지, 뜯어먹으라는 이야긴 아니었어."
"알고 있어, 앞으로는 입 다물고 있을 거야. 신께서 보고 계시니."
능글맞게 타아와가 웃었다.
민하와 타아와는 행정고시 동기였다. 재무부로 같이 발령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타아와는 퇴사했다. 이유는 확실한 사업 아이템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템은 외형을 바꿔주는 헤일로였다. 천국에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현실의 모습 그대로라는 사실에 좌절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 몸뚱이로, 이 얼굴로 영원히 살라고? 허튼소리. 대중들의 니즈를 포착했고, 외형 변형 서비스를 개발했다. 동그란 헤일로를 머리 위에 띄워두면 미세한 입자가 빛이 반사되는 각을 바꾸어 실제 형체와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했다.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말 그대로 수많은 엔젤 투자자들을 모았고, 타아와는 황금 성배를 손에 거머쥐는 듯했다.
그러나 경제의 신이 타아와가 시장과 하늘의 섭리를 교란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사업을 종료시켰다. 초기 R&D에 들어갔던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야심 찬 창업자는 빚쟁이가 되었다. 실패한 창업가를 실패한 채로 두면, 경제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민하가 신을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타아와는 복리로 불어나는 빚에 허덕이며 영생을 보낼 뻔했다. 경제의 신은 진짜 지옥이 아닌, 헬조선으로 타아와를 내려보냈다. 단순 시찰이 아닌 실거주 목적으로. 헬조선으로 떨어지면서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외형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된 건 덤으로 받은 벌이었다.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형태는 고양이였다. 점의 위치와 색이 미묘하게 변하긴 해도.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굴어."
민하가 주의 줬다.
점박이 고양이가 공손하게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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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 다짐하고, 부동산 앱 다섯 개를 받아 사용했다. 그러나 곧 라선은 지쳤다. 좁은 화면에 쏟아지는 정보량이 과다했다. 어느 앱이 좋은지 몰라서, 모두 설치해 써보았지만, 혼란만 더 커졌다. 지도를 가득 채운 아파트 아이콘, 그 위에 집값, 그 옆에 재개발 진척 사항, 그 옆에 경매 물건, 등등. 디바이스를 PC로 바꿔 이용했지만, 혼란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잔뜩 구름이 낀 머리를 정리해야 했다. 기능 많고, 유용해 보이는 것 같은데, 정작 그 기능을 제대로 쓸 수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먼저 5개 앱 중 '부자고고'를 분석 대상으로 정하고, 역기획(Reverse planning)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발견한 문제점은 투자자에게 필요한 데이터와 실거주자에게 필요한 데이터가 위계나 분류 체계 없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용자의 니즈가 겹치는 부분은 부동산 분석에서 가장 기초적인 정보일 것이다. 현재 앱의 정보구조도를 정리한 후, 개선점을 메모로 달았다. 앱이 설계된 방식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조금 눈에 보였다. 데이터 간의 연결이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았다.
1차로 정리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방문자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사적인, 그러나 공개된 일종의 기술 블로그였다. 예전에 적었던 공부 기록들이 유적처럼 남아있었다. 성실하게 써서 유명 블로그로 만든 뒤, 애드센스를 달고 자동 소득을 얻겠다는 계획에서 시작했던 프로젝트였지만, 얼마 안 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열심히 게시글을 작성해 올려도, 조회수는 늘지 않았기에,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블로그를 버렸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건, 집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어릴 적 일기장을 다시 펼친 것 같았다. 테크니컬 라이팅 원칙에 대한 글도 있었다. '명확'하고, '간결'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일관성' 있게 쓸 것. 가장 중요해서, 항상 쉽게 놓친다. 폐허가 된 블로그의 문을 손질하고, 새로운 선반을 달아 새집처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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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홀 미팅을 끝내고 점심 회식을 하는 중에 기획팀 사람이 얼마 전 글로벌 테크 밋업에서 초율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라선은 퇴사 이후 초율로부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회사에서 만난 관계에서 근무 시간 외 사적 연락은 사생활 침해였다. 초율은 임팩트 투자사의 심사역으로 행사에 방문했고, 대표는 얼굴을 구기며 초율과 1대 1 미팅을 해야 했다고 했다. IR 피칭까지 모두 끝난 뒤, 초율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초율이 스스로 구직을 한 것이 아니라, 전문 투자 자문가로 영입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다며 기획팀 사람이 너스레를 떨었다. 왜 초율이 걔 투자로 대박 친 거 있지.
대박이라니? 흘려듣고 있던 라선의 귀가 낱말을 잡았다. 초율도 분명히 코니랩스 폭락으로 자산의 상당량을 잃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몰랐는데, 비상장 주식으로 그린로보틱스를 샀었나봐, 제트클라우드도, 그것 말고도 죄다 스타트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대."
그린로보틱스와 제트클라우드 둘 모두 이번에 상장한 유니콘이었다. 초율에겐 코니랩스가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초율은 경영지원부 소속이면서도 테크 산업 동향을 꿰고 있었다.
"썩은 달걀이 있었지만, 다 만회하고도 남았다지 뭐야. 고졸이 운빨 하나는 좋아가지고."
기획팀 사람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도박하다가 대박 났다며, 초율의 성공을 횡재처럼 이야기했다. 말에는 질투와 조롱, 열등감 따위가 뒤섞여 있었다. 라선도 허탈했다. 같은 자리에 있었기에, 같은 선상에 있을 거라 믿었는데, 기울기가 달랐다. 그 기울기 값을 높이기 위해 초율은 무엇을 했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같은 시간이 있었고, 다른 결과를 얻었다. 그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운빨 없어서, 우린 다 여기 있네요."
라선이 건조하게 말했다.
"여기조차 못 있을 수도 있어."
기획팀 사람이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쾌한 농담 사이에 서린 기운이 느껴졌다.
회식을 끝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라선은 앉아서 모니터에 띄운 검은색 프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압착기에 짓눌리는 듯한 회의감 들고, 죽기보다 다니기 싫다는 생각이 가시처럼 튀어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녀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땅을 아무리 파도, 천 원 한 장 나오지 않는다. 꾸역꾸역이라도, 키보드 한 자를 치고, 또 쳐서 업무를 해야 한다. 현금흐름은 끊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제의 천사들이 말할 테니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옵시디언(obsidian)을 켰을 때, 신 차장이 뒤로 지나가면서 말했다.
"라선 씨, 소회의실로."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