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사라졌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역에 내렸고, 골목길을 걸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도시의 썩은 부위 같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해로수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도 새로 재즈 바가 개업했다.
재즈 바는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장자리인, 서란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재즈 바 간판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듯 튀어나와 있었다.
가까이 가자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튼’ 게 아니라, 누군가 ‘치고’ 있었다. 서란의 청세포가 좋아하는 터치였다.
요즘 많이 힘들긴 힘든가 보다, 음악도 들리고 말이지. 그냥 지나치려던 서란은 간판을 보았다. ‘Bebop in Pastel’
가게 이름 한 번 깔끔하게 지었다.
이 정도 감각만 있었어도, 제안서 갈아엎는 일이 반으로 줄었을 테다.
가만히 서서 음들이 귀를 두드리게 두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오늘 하루는.,,옆길로 좀 새겠습니다.
낡은 배 갑판을 떼다 만든 것 같은 문을 열고, 서란은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 지대보다 낮아, 짧은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홀에는 한 두 명의 사람들이 따로 떨어져 앉아 각자의 시간을 마시고 있었다.
바깥으로 흘러나오던 피아노 소리의 주인공은 스케이트 보더처럼 집업 후드티에 슬랙스 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연주는 정갈하면서도, 타격감이 있었다. 리듬이, 좋았다. 피아노 한 대뿐이지만, 흔들리는 공기가 짝을 맞춰주는 듯했다.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는 순간까지 생을 태워도 건너갈 수 없는 강을, 태어났을 때부터 건너간 사람들이 있다. 그 강 너머에 있던 존재들을, 서란은 많이 보아왔다.
재능이 다르게 주어진다는 건 불공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불공평한 사실은, 뛰어난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4위를 했다. 그때 차라리 입상조차 하지 못했더라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계속 피아노를 쳤을 수도 있겠다. 그때의 속력이라면.
그러나, 1위부터 3위까지만 단기 유학을 보내주는 콩쿠르에서 서란은 4위를 했다. 무대복으로 산 물방울무늬 검은 원피스는 다시 입지 않았다.
컨디션도 완벽했고, 실수도 없었다.
1위로 호명된 남자아이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맥없어 보이는 몽롱한 눈빛의 녀석은, 첨 봤을 때부터 재수 없었다. 우승자가 되고 나서는, 더 재수 없게 보였다.
연주가 끝나고, 피아니스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