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Is This Working
■ 첫 문장
I don’t want my kids to be where I am. I’ll be dead at fifty because of what I inhale. You see the dust when the sun shines in. You can have all the extractor fans you want, but you’re breathing that in. Even when I go on holiday, I sit there wheezing. I’m thirty-five years old. The sooner I get out of it the better. But people are put on this planet for a reason and I think mine is panel beating. I don’t think anything else would have given me the opportunities that I’ve got doing this job . . .
■ AI 번역
나는 내 아이들이 내가 있는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들이마시는 것들 때문에 쉰 살도 되기 전에 죽을 것 같다. 햇빛이 비칠 때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인다. 아무리 많은 배기팬을 설치해도, 결국 그걸 들이마시게 된다. 휴가를 가도 숨을 헐떡이며 앉아있을 뿐이다. 나는 겨우 서른다섯 살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에 이유가 있어서 태어났다고 믿고, 내 이유는 판금공(pannel beating)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면서 얻은 기회들은 다른 어떤 일로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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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론가 키틀러는 시력 저하로 니체가 타자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문체가 조금 더 간결하고, 격언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니체 스스로도 '우리의 글쓰기 도구는 사고 과정에 동참한다.(Unser Schreibzeug arbeitet mit an unseren Gedanken)'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에서는 기록 도구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기록행위에 관여한다.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기록하는 방식(제텔카스텐, PARA 메서드, 디지털 가든 등)
두 번째 기록하는 도구(Notion, Obsidian, logseq 등)
세 번째 기록하는 기기(태블릿, 폰, PC 등)
이 세 가지 요소가 다층적으로 결합하면서, 현대의 기록행위는 조금 더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단순한 사람인 내가 살아남기엔 버거운 생태계다.
내 메인 메모장은 구글 Keep이다. 구글의 Keep은 정보를 빠르게 저장(Keep)하기 서비스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수집한 정보를 휘갈기듯 기록할 수 있다. 갤러리뷰로 보면 마치 포스트잇을 붙여둔 것처럼 보인다. 편의성 하나는 끝내주지만, 긴 글을 쓰기엔 적합하지 않다. Keep을 이용할수록 사고가 파편화되고,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싫은 느낌은 아니다. 원래 깊게 생각하던 사람도 아니고, 깊은 글을 쓸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목적 없이 쌓아둔 디지털 토막글은 장작으로도 쓸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요즘 이렇게 원자화된 생각을 어떻게 조합해야, 괜찮은 분자가 되고, 이 분자를 활용해 어떠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실험 장소는 Obsidian이다. 노션을 대체할 새로운 차원의 메모앱이라 불리는 Obsidian을, 매우 단순한 구조의 메모 저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능력 좋은 사람은 Obsidian으로 제2의 뇌를 구현한다고 하지만, 내게는 제2의 뇌를 구현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적 수고가 아까웠다. Obisian의 백링크와 그래픽뷰를 활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Obsidian이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보기엔 구구단 외우기 귀찮아서, 286×17을 일일이 세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배우는 게 효율적일 것 같다.
실제로 심하게 불편하게 보여도, 사용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라면 굳이 변화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웹툰 작가 마사토끼는 저서 '만화 스토리 매뉴얼'에서 윈도우 기본 메모장과 폴더로 작품 데이터를 관리하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보는 내내 '저 건 Keep으로 관리하면 훨씬 효율적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메일로 '이봐요. 작가님. 여기 신문물을 쓰세요.' 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이미 그러한 도구 없이도 훌륭한 결과물을 내는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메모장과 폴더로 관리하는 행위하는 자체가 작가 특유의 서사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사용법을 배우기 귀찮아 Obsidian을 조금 편리한 문서 탐색기 정도로 쓰는 사람이 조언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어쨌든 나름의 고전적인 방법으로 신문물을 사용해 글을 정리하고 있다. 이전에 썼던 글과 지금 쓴 글에서 사상적 차이가 있을까 살펴보았지만, 처음부터 근본 없는 글들이라, 거기서 거기였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다 적어두었지, 어디다 쓰려고 이 자료를 긁어왔지 하는 자기반성밖에 들지 않았다.
문득 인류가 생산하고 있는 전자적 유산은 향후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궁금해졌다. 이전 세기의 인류는 석판과 대나무, 양피지와 종이 위에 물리적인 결과물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데이터는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서버가 파괴되는 동시에 모두 증발할 것이다. 로컬 저장소에 옮겨두는 방식으로 보존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 저장 장치의 수명은 돌과 종이에 비교했을 때 한없이 짧다. SSD가 최대 10년이고, CD는 최대 30년이다. 그에 반해 조선왕조실록은 500년을 버텼고, 함무라비 법전은 3,000년을 버텼다. 최근 10년 간 축적한 데이터 양이 지난 30만 년 동안 인류가 쌓은 데이터 많으니, 전자적 유산을 잃고 나면 인류는 10년이 아니라, 30만 년 이상을 잃는 것이다.
인류의 빛나는 지적 성취가 그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현실감 없는 허무함을 느꼈다.
문명이 사라진 이후에 인류의 유산을 찾으려는 존재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들이 보기엔 인류의 마지막 10년은 80% 이상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상태로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140kb도 되지 않는 메모를 정리하며
상당수가 전자적 유산에 편입된 인류를 상상하는 일은 휴일을 날리는 창의적인 방법인 듯하다.
방청소부터 했어야 했는데...
■ 끝 문장
It’s a dilemma with no ready answer. A problem of the Earl Wiener type. What would he have said if he were still alive? He would, I imagine, have referred us to another of his laws. This time to the 25th law. It is as good an answer as any: Law 25: Some problems have no solution. If you encounter one of these, you can always convene a committee . . .
■ AI 번역
이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다. 얼 위너(Earl Wiener)식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그는 자신의 또 다른 법칙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25번째 법칙이다. 이는 어떤 답변보다도 적절하다: 25번째 법칙: 어떤 문제들은 해결책이 없다. 그런 문제를 만나면, 언제든 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