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A Romance On Three Legs
■ 첫 문장
It arrived in a LARGE moving van: 226 cartons filled with objects that, had they belonged to anyone else, could just as easily have been destined for a landfill. Each box contained thousands of loose sheets of yellow-lined paper covered with a nearly indecipherable scrawl in black felt-tip pen. And scores of the pens themselves.
■ AI 번역
그것은 대형 이삿짐 트럭을 타고 도착했다. 226개의 상자에는, 만약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졌을지도 모를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각 상자에는 노란 줄이 그어진 종이에 검은색 펠트펜으로 거의 알아볼 수 없게 휘갈겨 쓴 느슨한 종이 수천 장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수십 자루의 펠트펜들도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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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아내이자 문학 비평가인 테스 갤러거가 장편을 쓰지 못해 괴로워하는 레이머드 카버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단편을 연속해서 쓰면 장편이야.'
그러나 결국 레이머든 카버는 장편을 쓰지 못하고 죽었다.
아무리 출처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이 일화는, 그래도 나름 의미 있다. 장편 쓰기는 쉽지 않다는 걸 잘 보여주니까. 희극적이게도 장편을 쓰지 못하고 죽었기에, 레이먼드 카버는 현대 영문학 단편 작가의 신이 될 수 있었다.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성향, 십 대에 결혼, 외도와 이혼 등, 자기파멸적 서사는 신화가 되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그도 한 명의 인간이었고, 그의 인생 역시 신화가 아니었다. 첫 번째 아내 메리엄에게는 더더욱.
메리엄이 카버를 만난 건 15살이었다. 당시 카버는 17살이었고, 작가가 되겠다는 소명이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카버는 갑자기 2년 동안 아마존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했고, 메리엄은 카버가 돌아올 때쯤이면 법대 예비 과정을 듣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많은 젊은 날의 계획이 그러하듯, 카버와 메리엄이 말했던 미래는 오지 않았다. 대신 메리엄은 18세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카버는 트럭 운전사가 되었다. 지난한 날의 연속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웨이트리스, 전화교환원, 백과사전 외판원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고, 번 돈 중 상당 부분을 레이를 치코 주립대에 보내기 위해 바쳤다.
레이는 그 보답으로 '만약 글쓰기와 당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글쓰기를 택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메리엄은 체리를 포장하며 번 돈으로 레이에게 생애 첫 타자기를 선물했다.
그런 메리엄에게 글쓰기와 메리엄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글쓰기를 선택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양심이 있으면, 말이라도 '당신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놀랍게도 메리엄을 레이에게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야망을 포기하는 것이 여자의 삶이다.'라고 체념하면서.
이후 카버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집안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메리엄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한 번은 메리엄이 파티에서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줬다는 이유로, 와인병으로 머리를 내리쳐, 거의 죽일 뻔했다. 본인은 외도를 일삼으면서, 아내의 외도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카버는 자신이 만든 불행한 가정생활과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부부 관계, 파멸하는 인간을 소재로 글을 썼다. 글을 쓰기 위해 안정적인 가정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메리엄은 자신을 잃어갔다.
카버가 테스 걸러거라는 운명의 짝을 만난 뒤, 메리엄은 이혼을 결심했고 지독했던 결혼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메리엄은 레이먼드 카버가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한 모든 것을 주고 떠났다.
금주 이후의 카버와, 유명세를 타고 불어난 재정적인 이득은 메리엄이 아닌 테스 갤러거가 누렸다.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한 카버는 21만 5천 달러를 남겼지만, 메리엄의 몫은 고작 만 달러였다.
사후 카버의 삶을 조명하는 글 속에서 메리엄은 별 볼 일 없는 전처로 묘사되었고, 카버의 정신 상태를 위태롭게 만드는 불안한 요소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도, 카버에 대한 인간적인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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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레이먼드 카버 작품의 매력을 간결한 문체와 서사로 꼽는다.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단편집이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지는 대표작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카버의 멘토이자 편집자인 고든 리시의 편집이 가장 강력하게 이루어진 작품 중 하나이다. 리시는 카버의 원고를 50% 이상 삭제하고 수정하여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을 구현한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문장은 사실 카버의 특징이 아닌 것이다.
마지막 아내인 테스 갤러거를 비롯한 몇몇 평론가들은 리시가 카버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을 거세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과연 고든 리시의 손을 거치지 않는 작품이 지금 읽는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레이먼드 카버는 평범한 작품으로 서점 뒤편 창고에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결국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읽는데,
레이먼드 카버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 레이먼드 카버 작품을 읽었을 때, 이거 굉장하잖아 감탄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인성을 알았을 때, 이거 최악이잖아 비난했다.
레이먼드 카버 뒤의 고든 리시를 보았을 때, 이거 속았잖아 실망했다.
그러나 여전히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는 좋은 작품이다.
안타까운 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메리엄의 존재와 리시의 목소리가 삽입되는 걸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음악이든 책이든, 창작자의 생은 궁금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가 신화 만들기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꼰대 의식이다. 내가 느끼기엔 창작자 대부분의 삶은 작품 감상과 비협조적이다. '레이먼드 카버를 인간적으로는 싫어하나, 작품은 훌륭하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도 비겁하게 보인다. 작품 뒤에는 누구도 없다.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사실이 진실에 조금 더 가깝다는 게 내 추측이다. 가급적이면, 책을 낼 때 작가 이름은 모두 지워서 내줬으면 좋겠다.
어느 작가나, 출판사도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 아쉬운 사람이 집중력을 기르는 수밖에.
■ 끝 문장
By the end of the concert, Kenedi, the bench, and the piano had traveled at least a foot from their original spot on the stage. The applause was loud, appreciative, and sustained. As Kenedi rose from her seat she bowed, then smiled and shot CD 318 a sidelong glance. “Where?” she asked the piano silently. “Where were you trying to go?”
■ AI 번역
콘서트가 끝날 무렵, 케네디와 벤치, 그리고 피아노는 무대에서 처음 있던 자리에서 최소 30센티미터는 이동해 있었다. 박수 소리는 크고, 감사와 감탄이 가득하며 오래 지속되었다. 케네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미소를 지으며 CD 318 피아노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피아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