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착서

Toxs In the Wallet 2화

by 설다람


류미토의 호버는 전속력으로 새드타운을 벗어나 도시의 끝을 향해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요?"

운전석 어디에도 내비게이션이 없는 것을 보고, 아샤가 물었다.

"남쪽으로 가면 되는 거 아냐? 거기에 검문소 있잖아."

"검문소로 간다고요?"

"그래, 거기 문이 있으니까."

"출도 심사는 어떻게 통과하게요. 위조 계좌라도 있어요?"

"당연히 없지."

"무슨 생각이에요?"

"생각은 무슨. 그냥 들이받는 거지. 다신 안 돌아올 거니까."

진짜 밑바닥 인생인가. 이 여자.

아샤는 진짜 광기를 보여주고 있는 류미토를 자극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550억을 인질 삼아 협상을 해보려던 계획은 접어두었다.

한적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질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문소가 나타났다.


검문소에서 확성기로 속도를 줄이라고 외쳤지만, 류미토는 더 가속했다. 경비병들이 태세를 갖췄지만, 이미 호버는 검문소 철창을 박살내고 통과하고 있었다. 사격이 시작되었고, 총알세례를 받은 호버의 뒤꽁무니는 벌집이 되고 있었다.

"이러다 죽어요!"

"걱정 마."

류미토가 핸들 우측에 있는 네모난 버튼을 눌렀고, 호버의 앞부분이 분리되어 떨어졌다.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차체 안은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안전벨트가 아니었다면 천장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 하지만 머리를 박든 박지 않든 상관없이 이대로 바닥에 추락하면, 머리가 박살나는 건 자명했다. 아샤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을 때, 엄청난 충격이 온몸에 전달되었고, 호버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대신 이젠 호버가 아니라 바이크였다.

거칠게 흙먼지를 날리며 반쯤 지워진 비포장도로 위를 달렸고, 점차 총성이 잦아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미쳤어요? 샐러드 시티를 데려달라고 했지. 천국에 보내달라고 한 적 없어요."

"미쳤지. 우리 천국에 가고 있는 거 아니었어? 샐러드 시티!"

"거기도 결국 또 다른 도시죠."

"어쨌든 거기선 550억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거 아냐. 어디든 돈만 많으면 천국이야."

류미토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계좌부터 제거해요. 추적당하기 전에"

아샤는 주머니에서 스펀지 메스를 꺼내 손목에 박힌 칩을 도려낸 뒤 밖으로 던졌다.

"피가 안 나네."

"시술용이니까요. 그쪽도 해요."

"류미토야."

류미토도 아샤를 따라 칩을 꺼내며 말했다.

"아샤예요."

"아샤라고? 일경 아니었어? 에라22 코인에는 예금주 정일경이라 되어 있었는데?"

"빌려 쓰고 있었어요."

죽은 해달의 민족 동료 계좌라고는 밝히지 않았다.

"뭐, 괜찮아. 어쨌든 내가 필요한 건 지갑이었고, 다행히 너도 지갑이네. 오히려 더 잘 되었을지도. 국세청 녀석들은 엄한 '정일경'을 조사하고 있겠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시간 오래 벌진 못할 것이다. 한 번 드러나면, 머리카락 한 올까지 잡힌다.

"지도를 구해야 해요."

"어디서?"

"저기서요."


아샤는 멀리서 빛나고 있는 조명탑을 가리켰다. 새드타운에 오기 전 들렀던 복합전문 상가 '나운 빌딩'이었다. 말이 빌딩이었지, 실제로는 작은 타운과 가까운 크기였고, 그 안에서 모든 경제활동과 주거 생활이 이루어졌다. 워낙 복잡한 구조 때문에 처음 들어간 사람은 길을 잃고 죽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곳엔 없는 게 없었다. 외곽 지대에 무기를 공급하는 곳도 이곳이었고, 의료 키트를 제공하는 곳도 이곳이었다. 빌딩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한참 떨어져 있었고, 바이크의 전력량이 거의 바닥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편 입구 충전기에 끼워두고 나가려 했을 때, 아샤가 류미토를 잡았다.

"후드 빌려줘요."

"왜?"

"얼굴 가리게"

"그럼 내 얼굴은?"

"여기에 CCTV 없어요."

"그럼 넌 왜 가리는데?"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으니까요."

"너 외곽 출신이야?"

류미토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고생 좀 했겠다."

후드를 벗어주며, 류미토가 말했다.

"고마워요."

류미토로부터 후드를 받은 아샤는 지퍼를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다. 얼굴도 보이지 않게 완전히 잠긴 후드 안에선 밖이 바늘구멍을 여러개 뚫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화학전 대비용 후드야."

아샤가 묻기 전에 류미토가 설명해줬다.


두 사람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낮은 조도의 조명이 간간이 켜져 있어,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이 맞다면, 이쯤 보일 텐데. 아샤는 새드타운 진입 전 지하굴로 향하는 지도를 구매했던 집을 찾고 있었다. 물고기 뼈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에 네온 강아지가 매달린 전파사가 나왔고, 새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폭죽 상점도 지나갔다. 해골 모형이 박힌 호신용품점을 돌자, '메르카토르' 잡화점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는 눈의 백발 노인이 해달 조각상을 진열하고 있었다.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풍경소리가 났고, 노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서 오시게."

안에는 각종 동물 조각과 지도가 가득했다.

"혹시 지도를 구할 수 있을까요."

노인이 씨익 웃었다.

"죄라도 저질렀나보군."

"가난이요."

아샤가 차분하게 답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그런데 다 나갔어. 최근에 대탈주가 있었거든. 차례로 몰려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챙겨갔지. 조만간 나뒹구는 지도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시체랑 같이. 물론 수거꾼들이 먼저 챙겨올 것 같지만."

재밌는 농담이라도 했다는 듯 노인은 낄낄거렸다.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였다.

대탈주라면, 새드타운보다 훨씬 더 상태가 나쁜 빈민가에서 '청소'가 일어났을 게 분명했다. 하이 소사이어티는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빈민가 거주민들을 단속해왔다. 주기적인 군사적 정화는 하층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공포를 학습시켰다. 하층민은 하층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벌레 같은 존재들이다.

청소가 시작되었을 때 거주민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가지다. 받아들이거나, 반기를 들거나, 도망치거나. 아쉽게도 세 가지 선택의 결말은 모두 같다. 운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그저 시스템이 계산한 '적정 개체 수'의 들어가서였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허겁지겁 외곽으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이곳에 와 지도와 필수품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샐러드 시티든, 아보카도 시티든.

"여기 다른 지도 가게는 없어요?"

류미토가 순진하게 물었다.

"없어. 내가 닫게 했거든."

노인이 카운터 아래에서 단도를 꺼내 카운터 위에 꽂았다.

"보아하니 곱게 자란 모양인데, 너무 오래 여기 머무르지 말게. 화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걱정 마쇼. 사장님. 완력으로 져본 적 없으니까."

류미토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샤는 감사하다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때 왼쪽 복도 끝에서 검은 형체가 급하게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아샤가 류미토를 보았고, 류미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히 좀 굴어요. 깡패예요? 힘자랑하게?"

"얕보는 것 같으니까 그러지. 손님 앞에서 칼이나 꺼내고. 그게 말이 돼."

한 걸음

"목 안 날아간 것만해도 감사히 생각해요. 저래 봬도, 한 때 잘 나가는 청부업자라고 들었어요."

"그래도 업을 바꾸었으면 태도도 바뀌어야지."

한 걸음

"안 그래?"

류미토가 홱 뒤를 돌아, 미행하고 있던 자를 덮쳤다. 쿵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뭐야 어린 애잖아?"

때려눕힌 상대는 13살쯤 돼 보이는 하얀 머리 남자애였다.

류미토는 양 어깨를 꽉 잡은 채 아이를 일으켰다. 아이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나서, 마치 책을 보듯 손바닥을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고 나서, 손바닥 위에 검지를 팽이처럼 빙글 돌렸다.

"말을 못하나보군. 무슨 뜻인지 알겠어?"

"책?"

아샤가 자신 없이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읽는 것인지, 약하게나마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궁중에 사각형을 그리고는 여러 곳을 검지로 콕 찌렀다.

"지도!"

머리를 싸매던 류미토가 외쳤고, 아이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천천히 복도로 걸어나갔다. 두 사람은 아이를 천천히 뒤따라갔다. 아이가 안내한 곳은 두루마리 양지에 커다란 도마뱀 문양이 그려진 가게였다. 가게 안은 고급스러운 나전칠기로 장식되어 있었고, 아이는 벽에 달린 서랍 중 하나를 열어 안에 있던 종이 지도를 꺼내어 주었다.

봉투 안에는 아이들이 낙서처럼 그린 지도가 있었다.

"장난쳐?"

지도를 본 류미토가 화냈다.

"그래도 지도를 따라 그린 거니, 없는 것보단 나은 거예요."

아샤는 류미토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아이의 지도가 유용할 지는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는 태연했고, 다이얼을 돌려 가게 불 밝기를 낮추었다.

류미토가 또 핀잔을 주기 전에, 아이가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냈다. 딸깍하고 노크를 누르자 심 대신 보라색 빛이 나왔다. 아이는 류미토의 손에 들린 지도 위에 빛을 비추었다. 빛을 받은 낙서 위에, 선명한 선으로 그려진 진짜 지도가 드러났다.

"대단한데, 직접 그린 거야?"

지도를 확인 한 류미토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예요?"

아샤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가 계산기를 들고 와 가격을 두드려 보여줬다. 5백만이었다.

"이거 완전 날강도 아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류미토가 항의하려고 하자, 아샤가 말렸다.

"이거라도 감사해야죠. 어차피 부자잖아요."

"잠깐 너 내 돈으로 계산하려는 거야?"

"아무렴요. 새드타운 원룸에서 살던 가난뱅이예요. 돈이 어디 있겠어요."

뻔뻔하게 아샤가 대답하자 류미토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차고,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사요 마요?"

아샤가 발로 바닥을 딱딱거리며, 보챘다.

"그래, 사. 손전등도 같이."

아샤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아이에게 이체했다.

아이는 싱긋 웃으며 종이 지도와 손전등을 건네주었다.


상가를 나오고 나서, 둘은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너, 언제까지 지퍼 끝까지 올리고 있을래? 테러리스트 같잖아."

"아, 깜빡했어요."

지퍼를 내리자 상쾌한 공기가 다시 콧속으로 들어왔다. 개운한 자유였다.


낮게 공명음이 울렸고, 바이크가 밤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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