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착서

Toxs In the Wallet 4화

by 설다람


"어이, 잘 지냈나? 아샤."

세향은 한 손으로 아샤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류미토가 달려와 공격하려했지만, 뒤에 있던 해달의 민족 대원에게 제압당했다.

"쥐새끼처럼 도망치더니, 어쩌다 다시 돌아왔나. 덕분에 Toxs 시티로 잠입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어"

"쫀 건 아니고?"

"죽이게?"

세향이 손을 꽉 쥐었고, 아샤의 숨소리가 쇳소리처럼 변했다.

"그럴 리가, 코인을 되찾아야지."

손을 활짝 펼쳐 아샤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대원이 팔과 다리를 묶고는 호버 트렁크에 태웠다.


트렁크에는 먼저 던져진 류미토는 뒤이어 던져진 아샤의 머리가 깨지지 않게 허벅다리로 받아줬다. 아샤는 입안에 고인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이 자식들은 뭐지, 아는 사이야?"

묶인 손을 풀려고 애쓰며, 류미토가 물었다.

"해달의 민족이에요. 일원이었고요."

"뭐? 네가 해달의 민족이었다고?"

해달의 민족은 악명 높은 반체제 테러리스트 집단이었다. 맹맹한 녀석이 극악무도한 범죄집단 소속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최약체일까. 류미토가 봤던 마지막 해달의 민족 관련 뉴스는 하이소사이어티 1지구에 트럭 폭탄 테러를 가했다는 소식이었다. 해달의 민족의 목적은 Toxs 시스템을 해체하고, 부의 완전한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언더 소사이어티에서도 낮은 층인 새드타운 같은 곳에서는 해달의 민족을 은근히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놓고 옹호하지는 못했다. 어쩄든 살상을 자행하는 범죄집단이었으니까.

"네, 자금 관리였죠."

"돈을 갖고 튄 거고?"

"돈을 갖고 튀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두고 나올 저장소가 없어서, 들고 나온 것뿐."

"지갑으로 살기도 만만치 않은가 보네."

"말그대로 지갑이죠.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해요."

류미토는 아샤의 말에 공연한 분노가 일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 그게 정확히 자신이었다. 공공의 아이들은 사회가 필요해서 태어났고, 필요에 의해 길러졌고, 필요에 의해 하층민이 된다.

"하는 짓은 마찬가지구만 하이 소사이어티나. 지들이나."

"인간은 다 마찬가지겠죠. 미안해요. 유산은 쓰지도 못하겠네요."

희미하게 웃으며 아샤가 말했다.

"시끄러 아직 아무것도 안 끝났어. 뒤지지 마. 550억 다 쓸 때까지는 절대 죽으면 안 돼."

류미토가 일부러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이었다. 집중력을 흐트러지지 않게 모아줄 타깃이 필요했다.



남쪽 검문소에서부터 시작된 바이크의 바퀴 자국을 따라 도율은 나운상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여기에 방문한 목적은 지도를 구하거나, 무기를 구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국세청 직원 신분으로 안에 들어가는 건, 죽여달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호버의 전원을 끄고, 쓰레기장 뒤에 호버를 내린 뒤 도율은 화상 연락을 걸었다. 연락을 받은 것은 하얀 머리 남자 아이였다.

"신스마스, 오랜만이야."

"도율, 잘 지내고 있어?"

"잘못 지내고 있어. 오늘 혹시 나운상가에 방문한 사람 중에 여자 두 명 본 적 있어? 둘 다 동양인인데, 한 사람은 키가 크고 검은 단발에, 체격이 좋아, 다른 한 사람은 어깨까지 오는 갈색 머리에 키는 보통이고, 마른 체형이야."

"갈색 머리는 모르겠고, 키큰 검은 단발에 체격 좋은 여자는 왔다갔어. 지도를 찾고 있더군. 그래서 팔았지."

"수거용으로?"

"물론이지, 전혀 모르더군."

신스마스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수거용 지도는 소유자가 죽고 나서 수거하기 쉽도록 발신기를 달아둔 지도이다. 구매자는 황야에서 시체가 될 때까지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지금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알 수야 있지. 돈만 주면."

신스마스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면 돼?"

"천."

과했다. 이 금액을 경비 청구하면 재무팀에서 필시 전화가 걸려올 것이다. 평소라면. 그러나 지금은 에라22의 유산을 쫓는 중이었다. 지금 도율의 재량권은 특급 이상이었다. 웬만한 경비 청구는 소명만 된다면, 무탈하게 넘어갈 것이다. 게다가 이번 수사는 Toxs 부사장인 필린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다. 그만큼 도율에게 거는 기대가 높다는 뜻이었고, 도율은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돈을 입금하자, 신스마스가 위치 추적 화면을 공유해줬다. 푸른 점은 빠르게 협곡을 넘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이크의 속도가 아니었다. 동료가 있는 건가. 그런데, 저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머리 뒤로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았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해달의 민족 구역이었다.


설마 에라22가 해달의 민족과 접촉하고 있는 거였나.

필린이 들으면 반기지 않을 소식이었다.

서둘러야 한다.


도율을 다시 호버를 띄우고, 지도에 표시된 해달의 민족 구역으로 향했다. 사망 플래그를 스스로 등에 꽂았다.



트렁크 문을 열었을 때,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손이 어깨를 잡아들어올렸고, 이동식 병원 침대에 자신을 눕히고는 팔과 다리를 밴드로 고정시켰다. 아샤의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어렸을 때, 지갑 보여주기를 거부했을 때, 처음 올라갔던 침대였다. 세향은 강제로 지갑을 열 생각이었다. 대원이 원형 유리컵을 머리에 장착시키고, 커다란 창을 투사하는 디바이스에 연결했다. 작은 기포가 머리에서 터지는 느낌이 났고, 눈이 감겼다.


류미토는 의자에 두 손이 묶인 채, 아샤의 머리와 연결된 디바이스의 창을 바라보았다. 아샤가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창에 트리맵이 떴다. 트리맵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큰 사각형 위에는 Sea Otter Tribe Coin라 쓰여 있었고, 바로 옆에 붙은 사각형에는 Era22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두 사각형의 경계 중 일부가 부서져 있었다. 마치 Era22의 데이터가 Sea Otter Tribe Coin를 갉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뭐야?"

코인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어지는 일반적인 지갑의 트리맵과는 다른 화면을 보고, 세향이 말했다.

"Era22의 유산인 것 같습니다."

시스템을 조작하던 대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Era22의 유산? 그딴 게 왜 저기 들어가 있어."

"내가 넣었어. 운좋게 상속받았거든."

"근데 왜 저게 우리 코인을 해체하고 있는 거지"

"그건.."

대원의 말문이 막혔을 때, 창에 팝업 메시지가 떴다.


[오랜만이야 일경. 난 지금쯤 아마도 냉동고 안에 있을 걸세.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필시 유산을 받은 누군가를 만났다는 이야기겠지, 그 사람이 당신에게 호의적이었길 바라네. 당신이라면 능숙히 해치웠을 거라고 믿어. 그 때문에 해달의 민족에 당신을 보낸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 동안 연락이 없어 걱정했네만, 새드 타운에서 활성화된 신호를 보고 안심했네. 해달의 민족이 개발하던 Toxs 시스템 해체 프로그램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어서 하이 소사이어티로 돌아와주게. 필린이 대통령과 결탁한 것 같아. 내가 죽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Toxs가 필린의 입맛대로 돌아가는 건 볼 수 없네. 반드시 막아주게나.]


"이 메시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 외 다른 코인을 해체시키는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일경이 Toxs 끄나풀이었다니. 그동안 우리 코인에 트로이 목마를 심고 있었던 건가. 대체 너희들은 뭘하고 있었던 거야. 이제 코인이 제대로 작동할지도 확신할 수 었잖아."

"죄송합니다."

대원은 온몸을 떨었다.

"리셋하는 방법은 없어?"

"그러기엔, 이미 코인이 해체되고 있고 있어, 지갑 소유자의 생명이 너무 위험해집니다."

"아직, 이 녀석만한 지갑을 발견 못했는데...코인을 꺼내는 것도 불가해?"

"Toxs 파괴 프로그램을 담은 코인 규모가 너무 커, 받을 저장소가 없습니다. 애초에 그 이유 때문에 아샤 안에서 작업했던 거고요."


그때 문이 열리고, 머리를 바싹 깎은 남자가 들어와 총을 겨누었다.

"국세청이다. 모두 손들고, 바닥에 엎드려."

"뭐야, 이 얼간이느"

피슉.

세향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가 세향의 왼쪽 허벅지를 총으로 쐈다. 세향은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 않는다. 모두 손들고, 바닥에 엎드려."

세향은 남자를 노려보며, 바닥에 엎드렸다. 대원도 따라 몸을 낮췄다.

옷에 몸싸움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잠입한 것일 테다. 총성을 들었으니, 경비들이 달려오겠지. 해달의 민족 본거지를 혼자 쳐들어 올 정도로 멍청해 보이진 않는데. 그만큼 에라22 건이 큰 모양이지.

류미토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세향을 견제해야 하는 이상, 저 남자는 결코 뒤를 돌아볼 수 없다.

"어이 형씨, 선량한 시민은 풀어줘야지."

"탈세자는 입 다물고 있어."

남자는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뒤를 보지 못한다.

손목 관절을 조금씩 흔들어 끈에 틈을 만들었다. 흔들릴 때마다, 미세한 유격이 느껴졌다. 접이식 의자다. 그렇다면 해볼 만했다. 훈련소에서, 몇 번이나 해봤던 기술이었다. 이걸 전역 후 쓰게 될 줄이야.

좋아, 실패하면 끝이다. 침착하게,

하나,

둘,

셋,

류미토는 발바닥으로 땅을 차고, 몸을 비틀어 의자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깡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부서졌고, 끈이 풀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류미토가 남자의 머리를 잡고 세향을 향해 던졌다. 남자는 한 바퀴 돌아 세향의 위로 떨어졌다. 총은 남자의 손에서 떨어져나가 벽 끝으로 날아갔다.

세향이 남자의 목을 졸랐고,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 틈을 타, 류미토는 아샤가 올라간 침대를 잡고 복도를 향해 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갑자기 복도 옆 해치가 열리더니, 턱수염 난 남자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류미토는 그대로 침대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곧바로 핸들을 돌려 문을 닫았다.

침대에서 아샤를 들어 어깨에 메고, 남자는 뛰기 시작했다. 류미토는 남자를 따라 달렸다. 복도는 격납고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엔 류미토와 아샤가 타고 온 중형 호버가 있었다. 남자는 아샤를 류미토에게 주고, 뒷좌석에 타라고 지시하고는, 운전석으로 갔다.

"당신, 누구야."

"아샤의 친구다. 지구 끝까지 도망치라고 했는데..다시 잡혀서 오면 어쩌자는 거야."

말을 하며 남자는 시동을 걸려고 했지만, 접근 권한이 없다는 경고창만 유리창에 떴다.

"뭐야, 우리 구해주는 거 아니었어? 이러면 그냥 잡히겠는데."

"그런 것 같군.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다."

"아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지!"

류미토는 좌석을 넘어 조수석으로 넘어간 뒤, 중앙에 있는 대시보드 하단부를 발로 차서 뜯어냈다. 보급형 군용 호버라면 운전자 사망 시, 강제 부팅할 수 있는 바이패스가 있을 것이다. 패널을 완전히 드러내자, 전선 뭉치가 보였다.

기억해내라 류미토, 검은선과 초록선, 아니 빨간선과 야광선? 야광선과 빨간선? 미치겠네.


타타다.

벌써 따라왔다.


그래, 검정과 야광이다...

류미토는 선을 끊어내고, 피복을 벗긴 뒤 구리선을 비볐다. 그러자 불꽃이 튀며, 시동이 걸렸다. 남자가 액셀을 밟았고, 호버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아래서 총을 쏴대었지만, 용케 맞지 않고 달아났다.

"대단한데, 어떻게 안 거야."

"찍었어."

류미토의 대답에 남자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샐러드 시티로 가자. 이 녀석 죽기 전에, 해달의 민족 코인을 갖다버릴 저장소를 찾아야 해."

"샐러드 시티에 그 정도 크기의 용량을 가진 저장소는 없어."

"뭐, 그럼 내 550억은?"

"딱 한 곳 있어."

"어디?"

"Toxs 중앙 데이터 센터."

"뭐? 그게 어디에 있는데?"

"하이 소사이어티 최상층."

"자살하러 가자는 소리야?"

"아샤한테는 어딜 가나 자살하는 것과 다름없어."

"그럼, 데이터 센터로 가야지. 묘찬."

뒷좌석에서 정신을 차린 아샤가 말했다.

"깨어났구나, 아샤!"

"아직 딩하긴 해. 류미토 부탁할 수 있을까요. 돈은 꼭 드릴게요. 살고 싶어요."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아샤의 눈동자는 누구보다 간절해 보였다. 평생을 부품 취급을 받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당한다. 느끼고 싶지 않은, 동질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좋아. 그 말 지켜라. 나도 목숨거는 거니까."

묘찬은 류미토의 대답에 히죽였다.

"세향이 항로를 저장해뒀을 거야. 다음 주에 폭격할 예정이었거든."

묘찬은 네비게이션 목록 스크롤을 내렸다.

"오, 여깄네. 더 퍼스트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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