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대하여...
어제 오후.
태권도 학원에 간 첫째 아이를 기다리며
둘째 아이와 집 앞 슈퍼에 다녀왔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어 볼 요량으로 카레가루를 하나 사러 갔는데,
슈퍼 좋아하는 둘째 아이의 손에 이끌려
가게 안을 한참을 빙빙 돌다가 빠져나왔다.
아이는
딸기맛 껌 두 개를 얻어내고서야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서는데,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네 개씩 사 오던
잉어빵 파는 카트가 보인다!
달콤한 잉어빵 냄새가 찬 공기와 뒤섞여
코끝을 기분 좋게 콕콕 찌른다.
잘됐다!
항상 애써주시는
첫째 아이의 태권도 관장님 부부가 떠올랐다.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이
아이들을 온종일 돌보시고 가르치신다.
사랑이 많은 두 분 덕분에
태권도 알레르기가 있던 우리 첫째 아이는
지금은 격주로 토요일까지 태권도 학원에 나가
시범단 연습을 할 정도가 되었다.
꿈은 축구선수라고 하는데,
축구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고,
밤낮으로 다리를 찢고 태권도 연습에만 열을 올린다.
사랑 많고 열정 넘치는 두 분 관장님 덕분이다.
게다가 부관장님은 나의 중학교 선배인 덕에
더 믿고 맡길 수 있어 또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감사한 마음에
가끔씩 들러 과일도 나누고
커피도 사다 드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바쁨을 핑계로 인사를 드릴 기회가 없었다.
잘됐다!
하는 마음이 든 순간 잉어빵 열 마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 꼬마들꺼 두 개도 추가로 주문을 하고
손을 호호 불며 기다렸다.
우리 잉어빵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이어 중년의 여자분이 오셔서
잉어빵 네 마리를 주문하신다.
잉어빵 파는 총각이
“한참 기다리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했고,
아주머니는
“얼마나요?”
“10-15분 정도요.”
“그래요 기다려 볼게요.”
하시며 내 뒤에 자리를 잡고 서 계셨다.
한 명은 열심히 구웠고,
한 명은 열심히 봉투에 담았지만,
잉어빵 열두 마리를 받는데도 이미 7-8분이 흘렀다.
주문한 잉어빵과
서비스 잉어 세 마리까지 받고
뒤돌아 서는데,
뒤에서 발을 총총거리며 기다리시는 아주머니께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열 번쯤, 아니 스무 번쯤 고민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열 마리나 사는 바람에) 한참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하네요...”
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아주머니는
주문한 잉어빵 네 마리 생각에 몰두해 있느라
내 목소리를 못 들으신 모양이다.
잉어빵 틀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신다.
나는 갑작스레,
그러나 습관적으로,
사과를 잘한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내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
결국은 “미안해요”를 입밖에 내놓고 만다.
마트 계산대에서 계산을 할 때도
잔돈까지 현금으로 꺼내 놓느라 한참이 걸릴 때는
계산원에게 미안하고,
뒷사람에게 미안하다.
복잡한 문구점에서 우리 아이들이 물건을 고르느라
한참을 우왕좌왕 돌아다녀도
그게 또 영업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얼마 전에도
스페인어 전화 통역 봉사를 하고 있는 BBB코리아에서
우편물이 반송되어 왔다며 연락을 주셨다.
1년 반 전에 바뀐 주소를 곧바로 알리지 않아
그들에게는 다시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안겨줬다.
그래서 또
“죄송해요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하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미안한 일들이 맞긴 맞다.
하지만, 이 상황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굳이 미안함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유연하게 잘 흘러가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내 입을 통해 미안함을 쏟아내는 건,
아마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함일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나의 본심을 인정받고 싶고,
내가 가진 다정함을 함께 나누고 싶으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미안함’을 앞세운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비교적 낮은 자존감’의 문제 일 것이다.
상황과 사물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떠올리는
고질적인 작은 자존감이 작용을 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작은 자존감.
이것도 나를 이루는 세포 중 하나다.
조금 덜 착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품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작은 자존감은
베란다에 키우는 무순처럼
쑥쑥 자라나지 않으며
나는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모습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어왔고,
앞으로의 나도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향한 작은 바람은...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은 잘 간직하되,
새해에는 ‘미안해요’를 남발하지 않는
조금은 무거운 입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