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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동심에 꽃가루 뿌리는 엄마가 될게.

by 다니엘라



어제는 하얀 눈송이가 전국을 뒤덮었다.
새벽에 눈을 뜨고 거실로 나가보니 낯선 한기가 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 차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쑥스러울 정도로 작은 눈발이 열심히 허공을 떠다닌다.
이렇게 많은 눈,
울산으로 이사 오고 처음 맞는 일이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서 남편이랑
‘나 잡아봐라~’ 퍼포먼스를 한판 때리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곧 일어나는 아침을 위해
에너지는 고이고이 챙겨 넣어 두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글쓰기를 마무리했다.
그다음으로
큰아이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하는데
두 꼬마가 손을 잡고 침실에서 나온다.
언제 봐도 귀여운,
형제 동반 기상이다.


“얘들아 눈이 왔어!! 우리 밖에 나갈까?”
이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황소 눈깔이 되어 창밖을 내다본다.
훈련소에 갓 입소한 신병들마냥
알아서 척척척 옷을 주워 입는다.
그리고 우리가 보유한 장갑을 쭈욱 늘어놓고는
이것저것 따지며 심혈을 기울여 각자 장비를 챙긴다.
첫째 아이는 눈의 결정이 정말로 예쁜 모양인지
확인을 하겠다고 ‘루페’(어린이 관찰용 돋보기)를
챙겨 나온다.
잘 안보일 테지만,
난 그저 ‘“암요, 암요~”를 외치며
아이에게 꿍짜라작작 장단을 맞춰준다.


오전 일곱 시 사십 분,
아이들과 첫눈을 밟았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재미있는 일에는
왜 항상 아빠가 빠지게 되는 건가요?ㅎㅎ


큰아이는 상체를 최대한 낮추어
뽀드득 소리를 들으려고 애를 쓴다.
아이들이 일어난 시각에는
이미 많은 눈이 녹아서 자취를 감추었고,
주차된 차량 근처나
보도블록 아래에 얌전한 눈들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은 눈 만난 똥강아지들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이들은
책에서 본 눈싸움,
그리고 티브이에서 본 눈사람 만들기까지
하나하나 정복해 나간다.
집 앞에서 놀이터까지 단숨에 뛰어가며
쌓인 눈들을 뽀직 뽀직 밟아낸다.
아이들을 뒤따르는 장갑 없는 엄마손이
자꾸만 귀가를 재촉했지만,
아닌 척 따뜻한 척 꾸역꾸역 참아낸다.


눈 굴리기를 알려주고,
그 눈덩이 둘이 만나 눈사람이 된다는 것까지
‘즌문가’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선보인다.
아이들은 연신 “우와! 우와!”를 쏟아낸다.
엄마가 예전에 눈밭에서 좀 굴렀단 말입니다.....ㅎㅎ


눈송이를 각 1개씩 쥐어주고 귀가를 재촉하는데,
뒤따라오던 첫째 아이는 그 사이 요령을 터득하고
눈송이를 하나 더 들고 따라온다.
지난여름 물고기를 잡았을 때처럼,
2주 전 바닷가에서 뿔고동을 주웠을 때처럼,
눈송이도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럼, 당연히 가져가야지!


어릴 적 내가 했던 것들을 그대로 착착착 경험시켜준다.
동심은 30년이 지나도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군요.
아이들의 눈송이를 작은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아
냉동실 안착을 허락한다.
아이들은 틈이 날 때마다
신생아를 돌보듯 냉동실을 열어 눈송이의 안위를 지킨다.


엄마도 그때 그 시절 다 해봤던 거라...
(우리 냉동고 식품들의 세균 침투가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결국 먹으면 똥이 되고 흙이 되는 것들이니...)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동심은 전부 누리도록 허락을 한다.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눈송이들은 냉동고에 한자리를 차지하며 고이 잠들어 있다.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한 달 전에도
수시로 흰 눈동자를 보이며
역정을 내는 마음이 미천한 엄마지만,
아이들의 소중한 동심만큼은 지켜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어릴 적 말도 안 되는 쓰레기 조각,
나뭇가지, 반짝이는 단추까지 주워다 모으는 나에게
엄마는 단 한 번도 핀잔을 주신 적이 없다.
엉뚱한 생각을 늘 똥 한 무더기만큼씩 머리에 이고 지고 다녔고, 길가에 떨어진 소중한 것들을 주워서 보물이라며 엄마에게 선물하곤 했다.
아마 나 몰래 하나하나 버리셨겠지만,
어릴 적 나는, 엄마가 보물상자에 내 선물을 고이 보관하시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늘 최고의 리액션으로 내 선물들을 받아주셨으니까.


그때의 엄마 덕분에
지금의 내가
나의 아이들과 노는 법을 조금은 알겠고,
나의 아이들의 눈빛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알겠으며,
나의 아이들의 동심을 부추기는 법마저 배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제 그런 건 재미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동심을 지켜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동심에 꽃가루를 뿌려
아이들의 즐거움과 생각주머니가
더 크고 멋지게 자라도록
언제나 장단 맞추는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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