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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죽음이 무섭다는 건 형아가 되었다는 뜻이야.

by 다니엘라


새해를 맞으며 아홉 살이 된 첫째 아이가
부쩍 무서움을 많이 타기 시작했다.


깜깜한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우면
아이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풀어내곤 한다.


최근에는 까만 방에 누운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서 하원 할 때,
차량 도착 시간에 맞춰 꼭!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수개월 간 하원 후 혼자서 집까지 올라오는 아이였는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데리러 내려 오란다.


둘째 아이 하원 후 귀가한 지 40여분 만에 아이를 다시 챙겨서 형아를 데리러 내려간다.
혼자서도 집에 잘 들어오던 아이가
왜 갑자기 자길 데리러 오라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물어보니,
“그냥 혼자 들어오면 조금 무서운 것 같아요.”
하고 답한다.


햇님이 반짝거리는 그 시간엔 무서울 게 없어 보이는데,
그건 다 큰 어른의 생각이니 일단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말없이 아이를 데리러 나간다.


몇 번 데리러 내려 가보니 같은 차량에서 우리 아이와 유치원 생 아이 한 명이 같이 하차를 하는데, 유치원생 아이는 항상 할머님이 마중을 나오신다.


아이는 홀로 귀가하는 길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조금 무섭기도 했을 거고...
당분간은 아이의 하원길을 함께 하기로 했다.


늘 아이를 데리러 나가는데도
아이는 잠들기 전 한번 더 확인을 받으려고 한다.
“엄마 내일 꼭 데리러 올 거지요?”
아이들을 어서 재우고 싶은 나는 짤막하게 해치운다.
“당근이지!”


또 가끔은 아이가 아침에 같이 있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엄마, 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도 같이 일어나요.
새벽에 글 쓰고 나서 다시 제 옆에서 누워 있으면 안 돼요? 이제 도시락 안 싸도 되잖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해야 할 일이 넘치는 바쁜 아침에
다시 침실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스스로와 타협한 것이 아이들을 깨우기 직전,
이불속에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이것도 역시 할 만하다.


아이에게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자꾸만 엄마를 곁에 두려고 하고
혼자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걸 보니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러던 중,
지난밤 아이가 입을 열었다.
잠들기 직전 뒤척이는 아이들의 등을 차례로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죽는 거 무서워요. 흐엉엉.”

“응? 갑자기 왜 죽어?”

“죽고 나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친구랑 놀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너무 무서워요.”

아이가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놀란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아이가 커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이삭아. 죽어도 맛있는 것 먹을 수 있고, 친구들이랑 놀 수도 있어. 이삭이 천국 믿잖아. 천국에 가면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래. 그리고 걱정하지 마~ 엄마도 3학년 때 죽는 게 무서워서 울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진 거 보니까, 이삭이도 곧 괜찮아질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저는 무서워요.”

“그건, 이삭이가 죽음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어서 그런 거야. 죽는다는 걸 알게 되고 그걸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건, 이삭이가 엄청 큰 형아가 되었다는 뜻이야. 엄마는 3학년 때였는데, 이삭이는 2학년인데 벌써 알게 된 거네? 정말 대단하다.”

‘드르렁, 푸- 푸-.’

다행히도 아이는 엄마의 긴긴 설명을 듣다 말고
평온히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온 가족이 아빠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던 중이었다.
뒷좌석에서 멍하니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있었는데,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 뒤의 일이 두려웠다.
더 이상 생각도 없고, 삶도, 움직임도 없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천국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내 삶이 막을 내린다는 것이, 그리고 그 뒤엔 아무런 의미가 남지 않을 거라는 것이 한없이 두려웠다.
우리 아이가 지난밤에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눈물을 터뜨렸다.
죽음 뒤의 일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 것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 공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 버렸다.
엄마 아빠는 차분하게 천국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때의 여행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것을 보니, 엄마 아빠의 다독임이 얼마간 위로가 되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가끔씩 고개를 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나를 심각한 고민에 빠트리곤 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더 이상 죽음이나 죽음 뒤의 일에 대한 공포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지금은 ‘천국’을 진짜로 믿게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감사하게도
어릴 적의 내가 충분히 두려워해 본 것을 아이가 두려워하니, 정말로 아이의 마음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이의 마음을 진짜로 이해하며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져서 다행이다.


꼬꼬마 같던 우리 아이가 또 그새 자랐다.
아이의 마음 밭에
새로운 감정의 싹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것이 부정의 감정 일지라도,
아이의 마음에 새롭게 자리 잡고
아이의 마음 주머니가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우리 아이도 그렇게 점점 형아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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