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저한테 무섭게만 하고... 훌쩍훌쩍.”
큰 아이의 훌쩍거림에 마음이 와르르 내려앉는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 말이 틀리지도 않은 것 같아
그냥 말없이 아이를 품에 안는다.
저녁나절 아이의 숙제를 돌보아 주며 일어난 일이다.
정해준 분량을 끝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만화영화를 보는 날이니,
밥을 먹고 티브이도 보기로 약속을 했다.
사실 이렇게 약속을 한 날은 아이보다 내 마음이 급해진다.
아이가 숙제를 끝내야 맘 편히 밥을 먹이고,
하고 싶은 일들도 하게 할 텐데...
꾸물거리며 숙제를 미루다가 저녁나절 내내 숙제를 하게 할 수는 없는데...
숙제를 미루고 미루다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면 아이들은 실망이 클 텐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워 괜히 내 마음만 급해지는 것이다.
어제도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친구와 같이 일주일에 세 번,
줌으로 만나서 국어와 수학 문제집 숙제를 내주고
(하루 두쪽 정도)
지난 숙제 검사를 한다.
양쪽 엄마가 번갈아 가며 선생님이 되어 숙제 검사를 하고, 잘 모르는 문제는 같이 풀어보는 시간도 가진다.
코로나로 인해 정부의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도 있고
주기적으로 만나서 공부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두 엄마가 의기투합해서 줌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장난꾸러기 두 남자아이지만,
함께 한다면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서
한 발짝 두 발짝 떼기 시작한 것이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어제도 친구와의 수업을 마치고
아이에게 숙제부터 하자는 제안을 했다.
마음은 안절부절못했지만,
이번엔 아이를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숙제를 시켜두고
저녁 준비를 했다.
할 일은 하게 하되 닦달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뒀는데,
결국 저녁상이 차려지도록 한 문제도 풀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그 시간에 동생과 색칠공부를 신나게 했고,
거실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색칠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약속한 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이 상해왔다. 그럼에도 일단 화를 누르고 밥을 먹였다.
식사 후 아이에게 다시 숙제를 할 것을 권했다.
시간은 이미 저녁 여덟 시.
아이는 책상에 올라앉으며,
“그럼 텔레비전은 언제 봐요?”
“지금은 시간이 이미 너무 늦었어. 오늘은 숙제 끝내고 책 보다 자고, 내일 텔레비전을 보자.”
“오늘 보기로 했잖아요. 엄마는 약속도 안 지키고...”
“그래서 엄마가 밥 먹기 전에 숙제하라고 했잖아. 밤 여덟 시 넘어서 텔레비전 보는 어린이가 어딨어!! 빨리 숙제부터 해!!”
“흑흑... 엄마는 저한테 무섭게만 하고... 훌쩍훌쩍...”
이렇게 해서 결국 눈물바람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 다정하고 여유로운 엄마가 되고 싶은데,
‘해야 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다 보니
아이의 마음까지 토닥여줄 여유가 없다.
그리고 사실은,
여덟 시쯤 되면 엄마도 지칠 대로 지친 시간이다.
일터에서 꽉 찬 하루를 보내고,
몇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며 금방 혼이 쏙 빠진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렇다는 건 잘 알지만,
둘째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부른다.
첫째 아이와는 과제를 두고 실랑이를 하고,
저녁상은 차려야겠고...
직장에서 매일 아침 같은 결심을 반복한다.
아이들의 방글거리는 미소를 떠올리며,
지나간 밤 아이들의 곤히 자던 천사 같은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만큼은 이해심 많고 친절한 엄마가 되어 주어야지.’
그럼에도 현실이라는 링 위에 올라서면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사랑 넘치는 인생 안내자보다는
무서운 훈련 조교로 변해 있을 때가 많다.
그래야 더 빨리 일을 해치우고,
아이들이 제시간에 잠을 자고,
나도 좀 시간을 가질 테니까...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때만 좋은 줄 알지,
여전히 내 시간이 더 소중한 약아빠진 엄마다.
아쉽지만, 그것이 현재 내가 선 위치이고
나의 모습이다.
크고 작은 아이들과의 에피소드 덕분에
‘엄마’로서 나의 진짜 모습을 점검할 기회를 얻는다.
지난날도 친절한 엄마 되기는 실패했지만,
그것이 엄마 라이프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들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딱 한 뼘 더 나은 엄마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웃음과 눈물, 그리고 넘어짐과 다시 일어남의 반복이
진짜 엄마 라이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