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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Aug 27. 2020

육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

판박이 스티커가 안 붙는 아이.


며칠 전,
동네 슈퍼에 따라나선 첫째 아이가 판박이 풍선껌을 집어 들었다.



아이가 조금 더 어릴 적,
양 손등에 판박이를 붙여주던 기억이 떠올라 흔쾌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흔한남매 판박이껌


풍선껌 한통에는 다섯 개의 껌이 들어 있다.
아이들 각자에게 하루 최대치를 2개로 정하고
3일에 나누어 먹기를 권한다.


하지만, 결코 2개로 끝나는 날은 없다.
요즘 풍선껌은 단물이 더 잘빠지는 건지...
아이는 금방 껌을 뱉어 버린다.


반대로 둘째 아이는 껌을 하도 안 뱉어서
엄마손에 뱉으라고 했더니 이미 삼킨 지 오래.
휴-
그나마 요즘은 좀 컸다고
아이는 겨우겨우 껌을 뱉을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그렇게 금방 뱉고,
금방 삼키다 보니
하루에 껌 두 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는 결국
“엄마 제발요~~.”를 외치며
껌을 하나씩 하나씩 더 까서 입에 넣는다.
한두 시간 만에 껌은 빈 통을 드러내거나
운이 좋으면 한두 개가 남는다.


이번에도 껌을 사주며
하루에 두 개만 먹자는 의미 없는 약속을 한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이 판박이를 붙여 달라며 껌 포장지를 잔뜩 가져왔다.
‘훗, 이 바닥은 내가 전문가지~!ㅋ’
하며, 둘째 아이의 손등에 판박이를 대고 살살 문질렀다.
예상대로 퍼펙트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첫째 아이의 촉촉한 손을 마주했을 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봤기에 최선을 다해 판박이를 붙이고 손톱으로 긁었다.


원, 투, 쓰리!
판박이를 떼는데
띠로리!
손등에 하나도 붙은 게 없이 판박이가 벗겨졌다.
실패.


아이는 적잖이 당황하며
‘왜?’ 하는 표정을 짓는다.
“손에 땀이 많아서 그래. 다시 해보자.”


다시
원, 투, 쓰리 챡!
이번에도 불발.


아이는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단전에서부터 짜증을 끌어올린다.
“아 왜 나만 안되는 거야!! 조요한만 되고!! 엄마 미워!”

‘응....? 갑자기 엄마가 거기서 왜 나와...?

한 단계 참고,
다시 한번 묵묵히
아이의 손등에 판박이 붙이기를 시도한다.


다섯 번째 시도까지 실패하고
아이는 결국 눈물을 터뜨린다.
‘아니 그게 뭐라고............’


눈물 정도가 아니라,
아이는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통곡을 한다.
‘아니 뭘 그런 걸로 울어!’
하며 핀잔 모드에 돌입하기 직전,
어릴 적 내 모습이 스쳐갔다.


그때의 나는 안 되는 게 많아
뜨거운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었다.
풍선껌이 안 불어져 속상했고,
숫자 8이 잘 안 써져 속상했으며,
부루마블 게임에서 땅을 차지하지 못해 속을 태웠다.


그때 나의 엄마는
쓸데없는 눈물바람이라고
나를 탓하지 않았다.


엄마는 주로 나의 편에 서 있었다.
때론, 유치할 정도로 억지를 써서 내가 이기는 방향으로 이끌어가 주었고,
숙련도가 필요한 일에는 요령을 알려주기도 하셨다.


물론, 말도 안 되게 떼를 쓰는 상황으로 발전을 하면
그땐 또 따갑게 야단을 치셨다.


어린 적
안 되는 것이 참 많았지만,
엄마 덕분에 나를 믿고
수많은 담들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왔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를 했다.

"이삭아 손에 땀이 많이 나서 그래.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해보자. 그때도 안되면, 판박이 껌 두 개 더 사서 또 해보자. 괜찮아, 마음 풀어."

"흐억흐억.. 내일 개학이라서 친구들한테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랬는데.. 흑흑.."

"엄마가 밤새 연구해서 내일 아침에 흔한남매가 이삭이 손에 착 붙도록 멋있게 해 줄게. 엄마만 믿어!"

아이가 눈물을 거뒀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멋진 손등을 선보일 내일을 그리며 이불을 고쳐 덮었다.


그날 밤 아이들은 잠자리 독서도 없이
그렇게 잠잠히 꿈나라로 향했다.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판박이 잘 붙이는 법'을 검색했다.
별다른 정보는 찾지 못했지만,
땀이 많은 손에는 판박이 스티커가 잘 붙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혹시 또 안되면 아이를 어떻게 위로할지 미리 아이디어를 짜내고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
꿈에서 연습했던 대로..
척! 하니 판박이 붙이기에 성공했다!!

작고 귀여운 아이의 손에 드디어 판박이가 붙었다!

이로써 아이의 개학준비는
완벽하게 끝이 났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더욱 자주 보게 된다.


처음에는 투덜이 스머프 같아 보이는 우리 아이를 다그치기 바빴다.
혹여나 나약한 아이로 자라날까 봐 겁을 집어먹고,
아이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극복해 내기를 강요했다.
진짜 '사내아이'가 되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에겐 좌절의 반복 경험만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은 아이를 보듬고 위로했다.
그런 다음에야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고
원하는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문제 상황 앞에서
때론 내가 아이보다 더 작아져 있는 모습을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내가 늘 정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역시나 커다란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아이들 덕분에 부모가 되었고,
오늘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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