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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Aug 31. 2020

책 이야기. 귤의 맛

진지했던 나의 우정을 떠올리며...


귤의 맛 l 조남주 장편소설
문학동네


82년생 김지영으로 전국을 휩쓸었던 작가
조남주의 여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문학동네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청소년 문학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다 읽고 보니 어, 이거 청소년 물 같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는 시간인 만큼
공감을 더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믿고 보는 조남주 작가의 작품답게
몰입도가 엄청나다.


소란, 다윤, 은지, 해인이라는 네 명의 여학생이 등장한다.
네 사람은 중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처음 서로를 만나고,
중학생활 내내 항상 어울려 다니는 무리가 된다.
그리고 중 3을 맞이하는 봄방학에 네 사람은 제주도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된다.

그리고, 네 사람이 제주도에서 한 약속.


소란, 다윤, 은지, 해인 이 넷은 각자가 짊어진 아픔이 있다.
조남주 작가의 섬세함으로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주머니를 따로 풀어 준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아픔을 각각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그리고 넷의 이야기가 다시 만난다.


소란, 가윤, 은지, 해인은 서로의 사정과 속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 사이의 약속을 ‘꾸역꾸역’ 지켜낸다.
친절하게도 작가는,
독자들에게만큼은 이 모든 그림을 하나하나 그러나 조심스레 잘 펼쳐서 보여준다.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끈끈해 보이기만 하는 우정에도
결국은 다들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그리고 언니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그해에
우리 가족은 경북 상주에서 포항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부모님은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해서
조금 더 큰 도시로 옮겨갈 꿈을 가지셨을 테고,
할머니가 계시는 아빠의 고향 포항에서
우리 가족의 다음 스텝을 밟아가기를 원했던
아빠의 마음도 투영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사춘기를 맞기 이전인 나는
새로운 집과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감 만으로도 이사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반대로 언니는
사춘기의 초입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막 반항을 시작하려 했는데,
이사를 가서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해야 한다니-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언니는 엄마 아빠의 넘치는 사랑에도 쉬이 정착이라는 것을 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진 것은,
아빠가 포항으로 발령을 받기 이전이라
얼마간 기러기 가족이 되어야 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아빠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는 아빠는
늘 지역 특산품 간식거리며
우리들의 학용품 등 사랑을 담은 무언가를 늘 양손에 품고 오셨다.


그럼에도 사춘기의 언니에게는
아빠의 ‘주중’ 부재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핍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늘 즐거웠던 나에게도
결핍 또는 불안감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넘실대는 생활을 했었다.
이제 막 전학을 왔지만 반장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실제로 반장이 되었으며,
친구들, 선생님들에게도 착하고 예쁜 아이로 확실하게 인정받고 싶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전학을 간지 얼마 되지 않아
5학년 2반 주요 멤버들의 무리에 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어울려 지내는 친구들은 7명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적당한 정도의 아이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지만, 문제아라고 불릴만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방과 후에는 자연스럽게 학교 놀이터로 몰려들었고,
가끔은 집이 비는 맞벌이 가정의 친구 집에 모여
‘쥬만지’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때 우리 우정은 많이 진지했다.
심지어 우리의 그룹명을 정하기도 했었다.
‘스마일& 스카이’라고...(다들 잘 지내려나?ㅎㅎ)


학교 수련회를 앞두고는 한집에 모여 춤 연습도 했고,
따분한 어느 오후에는
친구 엄마가 운영하시는 식당 구석방과
브렌따노 옷가게의 2층 창고방에 모여 떠들고 놀았다.


그런 우리들 사이에도
늘 아름다운 추억만 깃들어 있지는 않았다.


이 친구들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아주 고약한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 말로는 ‘왕따’
그때 말로는 ‘따돌림’ 이 그것이었다.

 
우리 무리에서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늘 속 시원한 이유도 모른 채
한 명씩 돌아가며 따돌림을 했다.
그러다 그 아이도 결국,
그 고약한 따돌림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우리 일곱 명 모두가 돌아가며
그 못된 놀이의 낚시꾼이 되었고,
먹잇감이 되었다.


멤버들 중에 몸이 약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주간은 그 친구의 차례였다.


다른 아이들 때는 그저 밍숭맹숭거리며
왕따에 동참을 했지만,
그 아이의 왕따만큼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권력에 반항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키만 삐쭉이 컸지
물러 터진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 몰래
왕따를 당하는 아이와 눈빛과 쪽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늘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해.’ 하는 눈빛을 보냈고,
친구는 늘
‘나라도 그랬을 거야. 괜찮아.’
하는 눈빛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와의 비밀 소통이 드러나고 말았다.
(누군가  몰래 보고 꼰질렀겠지...)


그날 오후,
예상대로 ‘왕따’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용서하기 힘든 ‘배반자’였을 테니까.


왕따를 당하는 며칠간
눈물에서 짠 기운이 빠질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체육수업에도 나갈 수가 없었고,
모둠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나의 사회성이 떨어짐을 알릴 수도,
혼내달라고 언니에게 일러바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친구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는
나에게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미소로
‘다시 돌아와도 된다’는 허락을 했다.


그렇게 그 아이들 틈으로 다시 스며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그 일곱 명의 친구들과
평생을 갈 것을 수도 없이 약속했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학년 3월 이후로는 우리는 더 이상
‘스마일&스카이’ 멤버들이 아니었다.


함께 놀이터에 모이는 일들도 없어졌고,
친구 부모님의 가게에 가는 일은 더더욱 없어졌다.
급식소에서 마주치면,
각자의 새로운 친구들 틈에서
작은 미소를 주고받으며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진지하고 찐했던 우리의 우정도 흐릿해져 갔다.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우리들에게도
각자의 상처와,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그 길로
우리는 새로운 우정을 찾아 흩어졌다.



소란, 다윤, 은지, 해인도
각자의 사정을 마음 깊이 품은 채
조심스레 엮어간 우정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귤의 맛’은
그래서 더더욱 내 이야기 같고,
내 옆의 당신의 이야기 같다.


어렴풋이 기억을 스치는
당신의 진지했던 그때의 우정이 그립다면,
조남주 작가의 ‘귤의 맛’에 가볍게 손을 얹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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