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어땠나요?

by 다니엘라



새벽 다섯 시.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시각,
따뜻한 커피를 내려 호호 불며 입가를 적신다.
주방 한 켠을 넉넉히 차지하고 있는
묵직한 마호가니 식탁 한켠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자격증 공부를 하는 남편 곁에서
오늘의 글감을 찾아 눈을 지그시 감는다.
식탁에서 올라오는 익숙한 목재의 향과
막 끓여 나온 커피의 수줍은 향이 묘하게 어울려
나의 마음을 공중으로 두둥실 띄워 올리는 듯하다.
금방 글감을 낚아챈다.
시작이 좋다.


다시 커피 한 모금.
첫 번째 문장이 떠오른다.
글쓰기의 절반은 벌써 마무리가 된 것이다.
타닥. 타다닥 탁. 탁탁. 탁.
키보드에 손을 올려 첫 문장을 조심스레 입력한다.
짧은 호흡을 내뱉고는
다음 문장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음 문장도.
혹시 휘발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숨 가쁘게 그러나 노련하게 활자를 입력해나간다.
금방 글 한편이 완성된다.
오탈자 확인도 단숨에 끝낼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한 문장들의 향연이다.
이래서 새벽 글을 쓰나 보다며 커피를 홀짝인다.


새벽 여섯 시.
첫째 아이가 일찌감치 깨워 달라던 시간이다.
족히 20분은 기상 실랑이를 벌일 작정을 하고
마음을 활짝 펼쳐 아이 곁으로 다가간다.
아이의 얼굴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큼지막한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이삭아, 일어나. 여섯 시야.”
아이는 시린 눈을 비비며
느릿하지만 정확하게 상체를 세운다.
“네 엄마. 그만 일어 날래요.”
정말이지 시작이 좋다.


아이는 화장실에 출석체크를 하는 대로
서재로 들어섰다.
아이는 여전히 눈이 부신지
옅은 조명만 살짝 켜 둔 채 책상 앞에 앉는다.
학습용 패드를 펼쳐
오늘 분량의 영어 학습을 마친다.
늘 그렇듯 엄마와 함께 영어 동화책을 두 권 읽고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새로 구입한 반짝이는 색종이를 꺼내
어제 못다 한 종이접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주방을 들락거리는 엄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아이는 이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콧노래에 흠뻑 취한다. 나도 아이의 앳된 콧소리에 같이 취해 본다.
요 며칠 부지런히 듣던 안예은의 ‘문어의 꿈’이다.
문어의 꿈 노래는 콧노래마저 귀엽게 들려온다.


하늘빛 아이의 방은
아이의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
뽀얀 아이보리 빛깔의 주방은
보글거리는 된장국만큼이나
푸근하고 여유롭게 아침을 열어가는 중이다.
오늘도 부지런히 모닝 루틴을 마친 남편이
그의 금요일 아침 분위기와 착 맞아떨어지는
감색 수트를 차려입고 출근길을 나선다.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는 것도 잊지 않는다.


탁탁 탁탁 퐈라락.
작은아이가 주방에 서 있는 나에게 와서
갑작스레 안기는 소리다.
오늘 아침도 예고 없이 프리허그를 나누는 우리 꼬마.
행복의 가루를 아낌없이 흩뿌리며 다니는
우리 집 막내다.


전원 기상이다.
아이들과 즐겨 듣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G장조 BWV 1007 -1악장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노오란 좁쌀이 송송 박힌 흰쌀밥에 구수한 된장국
그리고 계란 반찬까지 차려진다.
아이들은 각자 옷을 챙겨 입고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즐긴다.
식사 후에는 각자 좋아하는 과일을 한 가지 씩
챙겨 먹고 등교, 등원 길에 오른다.


여유롭게 집을 나서서 작은 아이의 등원 차량 탑승 장소까지 산책하는 마음으로 느릿느릿 걷는다.
물만두 같은 작은 두 손을 서로 맞잡은 두 아들과 함께 걸으며 반짝이는 해님과 푸른 나뭇잎, 지저귀는 새들, 그리고 비 온 뒤 세상 구경을 나온 지렁이에 대해서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등원 차량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온다.
작은 아이는 등원 차량에 폴짝 올라타고,
큰아이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 학교로 향한다.
두 아이를 여유롭게 모두 등교, 등원시켰다.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보다 한두 시간 전 기상을 하고
감성을 바짝 끌어올려
글을 부지런히 썼다면 이렇게 야심한 시간에
이런 허무맹랑한 글은 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꾸역꾸역 하루를 버텨 얻어낸 글감이
‘허구를 사실인 양, 사실을 허구인 양’
써 내려가는 진짜도 가짜도 아닌 글이 되고 말았다.
지난번 블로그 이웃님이 쓰신 걸 보고(독자 낚는 글)
너무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
비슷하되 내 방식을 갈아 넣어 글을 완성했다.
써 보니 재미있다.
이러다가 소설이 시작되는 건가보다 싶고…ㅎㅎ


진짜 나의 오늘 하루는 어땠냐 하면,
오늘도 겨우겨우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우리 집에 마호가니 식탁 같은 건 당연히 없다.
한샘에서 나온 아담한 사이즈의 고무나무 식탁이 전부다. 커피는 내려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무조건 황금색 맥심 모카 골드만 찾는다.
글은 노트북보다는 아이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이용하여 쓴다. 명쾌한 문장들의 향연은 엊그제 펼친 소설책의 작가 같은 사람에게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대충 이런 날을 맞았고,
이런 날을 보내느라
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엔 내내 글감을 찾아도 안 찾아지던 것이. 작은 아이를 재우고 식탁에 앉으니 가볍게 떠오른다. 역시 마감의 힘이다.


오늘도
무사히
마감했으니,
책 좀 읽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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