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 지 일 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집안의 큰 며느리인 내가
아버님의 등에 어부바를 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정말로 어부바 직전까지 갔다.
아이를 출산 한 지 약 3개월,
빼빼 마른 몸에 최소량의 근육을 보유한 나는
아이를 안아 올리다가 허리를 삐끗- 하고 만다.
삐끗-이라는 표현 말고
조금 더 고상한 표현이 없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삐끗-만큼 명쾌한 표현은 있을 리가 없다.
허리를 다친 순간 불안감이 덮쳐온다.
이러다 영영 아이를 안아주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그날은 정말 그랬다.
아이를 안아줄 수도 없었고,
멀쩡히 앉고 서는 일도 어려웠다.
소식을 들으신 시부모님은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그땐 같은 아파트 단지의 건너편 동에 시댁이 있었고,
빠른 걸음으로 2-3분이면 서로의 집을 오갈 수 있었다.
비상 태세를 갖추신 어머님은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걱정 말라시며 맡아 주셨다.
그리고 아버님과 나는
아버님이 잘 다니신다는 정형외과로 향했다.
허리를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몸을 기역자로 만들어 양손은 아버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아이가 첫걸음을 떼듯 아버님께 의지해
천천히 걸었다.
힘겹게 도착한 병원에서는
주사치료와 기묘한 물리치료를 끝낸 후
진통소염제를 처방해 주셨다.
병원을 나서는데 통증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떼는 순간마다 진땀을 뺐다.
아버님은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등을 내미셨다.
"에미야, 업히기라도 해 봐. 이걸 어째."
칠십 노인이 등을 내미는 것도 마음이 짠했고,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 어부바 조차 할 수 없는
내 몸의 상태도 서글픔을 자아냈다.
그 자리에서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아버님은 이내 자세를 고쳐 잡으시고,
"괜찮아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씩씩하고 건강한데 뭐가 문제야."
하며 처음처럼 두 손을 다시 내밀어 주셨다.
그렇게 한참을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누워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찌를 듯한 통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러다 정말로 '프리다 칼로'처럼 침대에 누워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소스라쳤다.
그날 아침,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남편과 함께 송파에서 도수치료로 유명하다는
원장님을 찾아갔다. 겨우겨우 휠체어를 타고서...
다양한 검사를 받고 도수치료 원장님을 만났다.
출산 후 아이를 삐뚤어진 자세로
반복적으로 안아주며 수유하다 보니
골반이 돌아갔단다.
곧바로 골반을 바로 잡는 치료를 받고
잠시였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통원으로 도수치료를 받았다.
시부모님은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을 찍듯
집으로 오셔서 아이를 돌봐 주셨고,
두 분의 도움을 받아
틀어졌던 골반도 기적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려운 순간마다 두 분은 늘 함께 해 주셨다.
특히 아버님은 무슨 일이 생겨도
단 한걸음에 달려오는 분이라는 이미지를
온전히 심어주셨다.
울산으로 이사 온 후에도
아버님은 마음으로 늘 곁에 머물러 주셨다.
기관지가 약한 우리 아이가 기관지염으로 입원을 하면
그날로 기차를 잡아타고 울산으로 내려오셨다.
안쓰러운 손주 얼굴 한번 바라보고
만만치 않게 안쓰러운 며느리 얼굴 한번 바라보며
며느리의 등을 떠밀어 집으로 보내셨다.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밥 좀 먹고 오라고...
"에미야. 네가 힘들어서 똥 싸는구나." 하시며
입원 기간 내내 곁을 지키곤 하셨다.
그렇게 사랑이 신뢰가 되어갔다.
신혼초 아버님을 잘 모르던 나에겐
그 모든 관심과 도움이 감사하면서도 부담이기도 했다.
아버님은 오로지 사랑을 퍼부어주시며
큰 딸에게 하듯이 그렇게 며느리를
당신의 딸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하셨다.
며느리가 느끼던 부담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옅어졌고
그 자리엔 사랑만 선명하게 남게 되었다.
아버님은 그렇게 며느리를 거두셨고,
그 며느리를 사랑 많은 엄마로 키워내셨다.
사랑은 그렇게 위로부터 아래로 흐르고 흘렀다.
여전히 아버님께 올려 드리는 존경보다
더 큰 사랑과 염려를 받고 있다.
더 이상은
그 사랑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감사하고,
그 사랑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언제든 아버님의 사랑을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되도록,
아버님과 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