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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un 25. 2021

‘우리’라는 일인칭 공감 대명사


시아버님의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일이다.
부지런한 아버님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신 모양이다.
오전 9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이미 집을 나서신 지 한참이라 하시니..
우리 아버님의 부지런함은 따라갈 사람이 없다.


접종을 기다리며 문진표도 작성하시고
사람들 틈에서 순서를 기다리시느라
어수선하실 것 같아
접종이 끝난 후 전화를 드린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님의 밝은 목소리에 우선 안심을 하고,
안부를 여쭙는다.


아버님은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와
똑~같은 멘트로 대답을 하신다.
“아유~ 뭐 우리는 괜찮고 말고지.
우리는 씩씩해서 끄떡없어. 걱정할 거 없다, 에미야.”
그렇다면 며느리는, 안심.


오늘도 ‘우리’다.
아버님은 당신 한 분을 지칭하시면서
언제나 ‘우리’라는 말을 쓰신다.  


처음에는 소통의 대혼란이 들이닥쳤다.
분명 ‘우리’가 들어가서는 안될 문장인데
수시로 ‘우리’가 불쑥불쑥 들어간다.


[우리 -  we]는 2 인칭 복수 대명사라고 분명히 배웠는데,
아버님과 한 가족이 되고, 프리토킹이 활발해진 어느 날부턴가 그 확신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
[우리]
1.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2.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3.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시아버님은 아버님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우리’가 아닌 뜻으로
휘뚜루마뚜루 사용하고 계셨다.


가엾은 대명사 ‘우리’는
우리 아버님 앞에만 가면 힘을 잃고
‘우리’도 되었다가 ‘나’도 되었다가 하며
자유자재로 활용되었다.


아버님은 어느 날,
“에미야. 우리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우리는 이 김치만 꼬박꼬박 먹어도 감기 하나 안 걸려.
우리는 이 김치만 있으면 후뚜루마뚜루 밥 한 끼 해결하잖아. 그러니까 에미도 김치 좀 팍팍 먹어봐.”


‘우리 김치라고 하셨으니…
우리 시댁 김치일 거고,
우리는 감기에 안 걸린다니…
아버님과 어머님이 감기에 안 걸리신다는 말씀일까?
아버님과 어머님이 김치로 밥 한 끼를 해결하신다는 걸까?’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우리는 안주거리가 있을 때만 소주를 마시는 거야.
우리는 한 끼에 딱 반 병만 마셔. 이건 딱 정해진 거야.
우리가 언제 취하는 거 봤니?
우리는 신사적으로 마시잖니. 너도 알지 에미야?”


‘소주를 마시는 사람은 아버님뿐이신데,
우리라고 했으니…
아버님과 도련님이라는 걸까?
아버님 혼자 시라는 걸까?
아님, 나도 마시라는 말씀이신가?’
알쏭달쏭 머리를 한참을 굴린다.


도 어떤 날은
“에미야. 우리는 아무거나 잘 먹어.
싸나이 아니냐.
우리는 후뚜루 마뚜루 냉장고에 있는 것부터
먼저 먹을 거니까 반찬 따로 하지 마라.
내가 이런 걸로 너 어렵게 한적 있디?
그러니까 얼른 출근해.”


‘우리가 먹는다는데…
집에 남아계신 분은 아버님뿐인데.
우리라면 누굴까…?’


아버님과의 재미난 프리토킹을 1-2년쯤 하고 나니
이젠 ‘우리’가 누군지, ‘우리’가 지금 왜 쓰였는지
부연설명이 없어도 척척 알아듣는다.
이제는 ‘우리’라는 단어만 나와도
“아이구 그럼요 아버님!! 제가 잘 알죠~왜 모르겠어요~”
하며 앞장서서 맞장구를 쳐 드린다.
 

아버님이 ‘우리’라는 말로 당신 스스로를 표현하시는 것은,
‘너와 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진짜 싸나이 이시고
뭐든 휘뚜루 마뚜루 잘 드시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도
가장 앞장서서 해결하시는 우리 아버님은
적극적인 ‘공감’이 필요하신 분이다.
공감을 얻어 이해받고
당신 또한 상대를 이해하시길 원하시는 마음에
‘우리’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쓰시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라는
아버님의 일인칭 공감 대명사를 듣는 일이 참 좋다.
가끔은 ‘우리’라는 말의 무게가
잔소리 쓰나미처럼 마음 한가운데로
왈칵 밀려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라는 말 때문에
아버님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드리고 싶고
넉넉히 웃으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어 진다.


시아버님과 나 사이의 ‘우리’라는 말은
‘진짜 우리’를 추억하기 위해
정말로 오래오래 듣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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