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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un 10. 2021

시아버님과 나. 장 트라볼타 챙기는 사이.


오늘 이야기는
꽤나 진지하고
꽤나 지저분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아버님, 오늘 아침 요플레 안 드신 것 같은데요?"

"오늘 아침에 챙겨 먹었지.
에미야 내가 어제는 두 개나 먹었다."

"정말요? 그래서 성공하셨어요?"

"아, 그럼 물론이지.
우리는 그런 건 딱 깔끔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지."
(여기서 ‘우리’란 아버님과 나를 뜻하는 게 아닌,
1인칭 공감 대명사로써 아버님 스스로를 칭하는 말)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오전 타임에 아버님과 내가 종종 주고받는 대화다.
이 대화의 시작점은 약 6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닝 루틴으로 아침 용변을 처리하는 나는
낯설고 어려운 곳을 여행할 때면
이 고귀한 모닝 루틴을 지키지 못하곤 한다.
심리 싸움이다.
어디서든 즐겁게, 신나게 쾌변 해야 할 권리를
맘껏 누리지 못하고 긴장감에 억눌려버리곤 한다.
쾌변 앞에서도 역시나 보수적인 나를 발견한다.  

신혼집을 울산으로 옮긴 뒤,
시댁이 있는 서울을 일 년에도 몇 차례씩 드나들었다.
아이가 어렸고,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았고,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시부모님이 좋았다.
그래서 시댁의 문지방이 닳도록 왔다 갔다 하며
며칠씩 머무르곤 했다.


모든 게 완벽한 것 같은 시댁 방문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장트러블의 문제.
조금 즐겁게 표현해 장 트라볼타. ^^


시댁에만 가면 모닝 루틴을 채우지 못하곤 했다.
즐거웠지만 심리적으로는
긴장감이 촬촬촬 흘렀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조용히 남편에게
불가리스, 요플레를 공급하라는 요청을 하며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눈치게임 만년 일등인 어머님께서
일찌감치 알아차리시고
며늘을 위한 쾌변 메뉴
(찐 고구마, 양배추쌈, 바나나 등)를 만들어 주신다거나
때때로 장의 안부를 묻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뒤이어 내리사랑계의 대부 시아버님께서
나의 장 트라볼타 카테고리에까지
관심의 줄기를 쭉쭉 뻗어주셨다.


우리 가족이 서울 시댁에 올라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먹는 요구르트를 종류별로 구비해 두셨고,
보리차를 부지런히 끓이셔서 물 마시기를 독려하셨다.
그리고 끼니를 챙기는 부모처럼
나의 쾌변 성공 여부를 확인하곤 하셨다.


수년간 시댁 장 케어를 받다 보니
이제는 시댁에서도 즐겁고 해피한
모닝 루틴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전세가 역전되었다.
70년 평생을 장트러블 없이 살아오신 아버님이신데,
지난해부터 가끔 변비를 겪으신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습관적으로
매일 아침 떠먹는 요구르트를 챙겨 드시는 중이다.


아버님 역시 쑥스러우신지 먼저 말씀은 안 하시고
슈퍼에 다녀오시는 길에
떠먹는 요구르트를 가지런히 비닐봉투에 담아 오신다.
대략 눈치를 챈 며늘은 또 스리슬쩍 여쭤본다.
"아버님 화장실 다녀오셨어요? 이 유산균이 참 좋더라고요. 한번 드셔 보세요. 안 될 때는 두 포 정도 막 드세요."

“아, 그래? 아니 뭐 나는 가끔 불편한 거지.
우리는 장이고 뭐고 깨끗하다고. 오늘도 잘 해결했어.
걱정 마.”

그렇게 아버님과 나는
서로의 장을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면
서울표 떠먹는 요구르트를 챙겨주시는 아버님이 계시고,
아버님이 울산에 내려오시면,,
울산표 떠먹는 요구르트를 챙기는 며느리가 있다.


변비로 고생하고
아침나절이 개운하지 못한 날들마저도
아버님과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서로의 고충이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고
공통의 불편 함덕에 동지애마저 생겨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부끄럽고
허물 같은 일들도
서로를 챙기는 ‘사랑’의 범주에 넣고 나니
그저 가볍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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