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엄마’라는 이름은
늘 짠하고 미안하며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부담스러운
감성적으로 먼저 다가오는 어떤 것이었다.
그저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눈물을 뚝뚝 떨구게 만드는
그런 특별한 단어이자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가 되어보기 전까진
엄마라는 존재의 ‘당연한 위대함’에 대하여
깊이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된 지금,
그리고
작은 아이의 이마가 따끈따끈해오며
힘없이 늘어져 앓고 있는 모습을 보는
지금에 와서야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금 저울질해본다.
엄마라는 존재가 퍼 올리는
말도 안 되게 깊은 사랑과
산술적으로는 도저히 셈이 불가능한
동시 다발적인 업무 수행 능력.
그리고 아이에 관해서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곧장 대처할 수 있는
본능적인 마력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설명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엄마라면 누구나
그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이다.
물론 아빠들도 그들만의 마력을 갖고 있다.
단지 지금은,
엄마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
그들의 위대함에 대해 논하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엄마라는 사람이 가진
여러 특장점 중에서도
오늘은
(나를 포함한)
그녀들의 멀티플레이어적인 성향에 대해
조금 나누어 보고 싶다.
오후였다.
하원 차량에서 내린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간식을 먹이고 혼자 놀게 두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에 먹을 반찬을 만들며
거실에는 로봇청소기가 작동할 수 있도록
거실과 주방의 물건들을 치워냈다.
그러는 중에
아이 선교원 선생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오늘 오후에 많이 피곤해했었고,
하원 할 때는 훌쩍 거리며 울길래
무슨 일이냐 물어봤지만 말을 하지 않더란다.
그래서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차 전화를 주셨단다.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고 아이를 살폈다.
침대에 누워 놀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만져본 이마가 뜨거웠다.
체온계의 작은 화면에 나타난 숫자는 38.1도.
고열은 아니지만,
병원으로 향해야 하는 숫자였다.
5분 후면
첫째 아이가 하교 차량에서 내릴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짐을 챙기고
작은 아이 옷을 챙겨 입혀
번쩍 들다시피 해 밖으로 나갔다.
하교하는 첫째를 맞이하는 동시에
남편에게 상황을 알리고,
저녁에 잠시 티타임을 갖기로 했던 친구에게도
급하게 연락을 넣는다.
시간은 이미 다섯 시 근처.
큰아이가 차에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을 건네고,
수시로 작은 아이의 이마를 짚으며 상태를 살핀다.
더 늦어지기 전에 서둘러 병원으로 향한다.
인후염 의심.
어제의 시간들을 복기하며 쓰는 지금은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들을 모두 쳐내며
아이들을 챙겼다.
나라는 사람이 대단했다는 게 아니라
엄마라면 누구나 당연히 하는 일들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많은 엄마들의 일상이다.
이름하여 멀티 플레이어.
그녀들이 가진 팔다리의 개수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일들을
동시에 척척 해내는
미세스 멀티플레이어가
그녀들의 다른 이름이다.
타고난 모성과
아이들 앞에서만 발휘되는
융통성과 순발력 덕분에
무사히 자녀들을 키워냈고,
그 자녀였던 우리가
다시 엄마가 되었다.
다들 그렇게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며
아이들을 키운다.
오래간만에 아픈
내 아이를 돌보다 말고
내 어린날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 전의
엄마와의 고마웠던 시간들이 기억을 스친다.
아이와 집안을 돌보며 살아내는 일을,
지금 여기서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엄마라면 누구나 해내는 일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도 새벽부터 미세스 멀티플레이어로
하루를 시작하는
많은 엄마들을 뜨겁게 응원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