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잘하죠?”
“엄마 저 너무 잘했죠?”
첫째 아이가 요즘 들어 부쩍 자주 하는 말이다.
숙제를 끝내고 나서,
그림을 그리고 나서,
동생을 돕고 나서,
그리고
학교에서 만들어 온 과제물을 보여주며
아이는 어김없이 엄마 얼굴을 바라본다.
“엄마 저 잘했죠?”
“꼼꼼하게 만들었네. 사람도 있네.
그래 그래 잘했어.”
아이는 최근
인정의 말에 갈증을 느끼는 모양이다.
잘했다는 말을 자꾸만 확인받고 싶어 한다.
아이가 한참 더 어렸을 때
어느 육아서에선가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잘했다’는 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해 주는 칭찬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그림을 그렸으면,
“파란색으로 그렸구나!”
“그림에 고래도 있네!”
“꼼꼼하게 색칠을 했구나!”
등의 사실을 인정해 주는 말이
더욱 건강한 칭찬이라고 했다.
건강한 칭찬을 확실히 기억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자꾸만 묻는다.
“엄마 저 잘했지요?”
“우와, 그래 진짜 수박같이 그렸구나.”
“그러니까 저 잘했죠?”
“그래 잘했네.”
이렇게까지 묻는데,
‘잘했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을 수가 없지.
역시 책 육아는 어렵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공감되고
그렇게만 키울 수 있다면
나도 따라 해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따라 해 보지만
조각난 기억을 더듬어 어색하게 끼워 붙인
육아 상식은 늘 적용이 아쉽다.
A는 했는데,
그럼 그다음에 B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육아의 한계다.
‘잘했다’는 말을 빼놓고
아이의 저 인정을 갈구하는 눈빛을
어떻게 감당해 낸단 말인가!!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이 가는 대로 아이에게 반응한다.
“엄마 제가 요한이 손 씻겨줬는데, 잘했지요?”
“형아 최고네 요한아. 이삭아 정말 잘했어!!”
속 시원하게 ‘잘했다!’는 말을 내뱉어 본다.
그리고 아이에게 한마디 더 덧붙인다.
“이삭아 잘하긴 했는데,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삭이가 엄마 아들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잘한 일이고 축복이거든.
그냥 이삭이 자체가 선물이야 엄마에게는.
그러니까 너무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엄마한테 자꾸자꾸 잘했지요?라고
안 물어봐도 엄마는 이삭이가 잘한 거 다 알고 있어.”
자꾸만 잘했냐며 물어오는 아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요즘 동생이 아프다고 신경을 덜 써줘서 그러는 건지
이 녀석이 인정을 받고 싶어서 영혼을 그러모은다.
아이를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할 때가 다시 온 것 같다.
뛰어다니지 마라!
둘이서 장난 좀 그만 쳐라!
제발 한자리에 앉아서 먹어라!
하며 잔소리는 수시로 쏟았지만,
따뜻하고 느긋하게 바라봐 주는 일은
한참을 손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오래된 연인이 속마음과는 달리
마음에 없는 모진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아이가 말귀를 더 잘 알아들을수록,
아이가 더 익숙해질수록 따뜻함보다는
의무를 강조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가 따뜻한 관심을 바라며
보내오는 신호로 천천히 마음을 데워본다.
내가 우리 꼬마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본다.
현장학습을 떠나는
깨알 같은 아이들 무리 속에서
우리 아이의 모습을 찾아내 한참을 설레고
예뻐했던 그 마음을 다시금 떠올린다.
존재가 축복이고
숨 쉬고 있음이 선물인
내 아이들을
오늘은 한 뼘 더 따뜻하게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