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월 아이말 정산) 말도 예쁜 아이들

by 다니엘라


아이들의 예쁘고 귀여운 말들을 차곡차곡 담는 아이말 정산.

아이말 정산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눈에 띄는 특징이 보인다. 아이가 자라면서 새로 알게 된 어른스러운 어휘를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큰아이 작은아이 할 것 없이 새로 배운 말이라면 이때다 싶을 때 끼워 넣어 그 말을 꼭 쓰고야 만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가 사용한 어휘는 해당 상황과 맞지 않음에도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 어른이라면 절대 안 썼을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쓴 그 말을 곱씹어보면 좀 어울리는 표현 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번에도 역시 수시로 담아 놓지 못해 시간이 흘러 잊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중에서 건질 수 있었던 표현을 몇 가지 나누어 보려고 한다.


[10, 11월 아이말 정산]

출연 9세, 5세 어린이


1) 어느 날 오후, 아이들과 집에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홉 살 어린이가 태권도에서 배워온 몸풀기 운동인데 주로 앉아서 운동을 할 수 있고 뛰거나 쿵쿵거리는 동작이 없어서 아이들과 집에서도 하기 좋은 운동이다. 특히나 아홉 살 어린이는 태권도와 관련된 것이라면 갑자기 눈동자가 진지한 빛깔로 바뀌고 자신감이 쑥쑥 올라가기 때문에 종종 아이에게 태권도와 관련한 것으로 분위기를 주도할 기회를 준다.

다시 돌아와, 아이들과 집에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홉 살 어린이가 구령을 붙이며 운동을 리드하고 있었고, 태권도 학원에서 사범님이 하셨던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한 번씩 구령을 붙일 기회를 주며 운동을 이어 나갔다.

아이는 엄마와 동생에게 균등하게 구령을 붙일 기회를 주었다. 아주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엄마, 이번에는 엄마가 구력을 붙이세요."

"응?"

"엄마가 구력, 구력을 붙여 주시면 된다고요."

(아... 구력..ㅎㅎㅎ)


아이는 구령을 구력으로 듣고 이해하고 있었나 보다. 웃음이 잔뜩 나왔지만 웃지 않고 진지하게 아이가 시킨 대로 구력(구령)을 붙였다. 올바른 말이 '구령'이라는 것을 알려줄까 말까 하다가 아이 얼굴이 너무 진지한 바람에 고쳐줄 기회를 놓쳤다. 대신 아이와 이야기할 때 계속해서 '구령'이라고 발음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마 조만간 눈치를 챌 것 같다. 구력이 아닌 구령이라는 것을.



2) 어느 날 밤, 아이들과 잠들기 전 동화를 읽고 있었다. 물난리와 관련된 동화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을 다 읽자 다섯 살 꼬마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실감 나게 무서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엄마 사막에서 제일 무서운 거가 뭔지 알아요?"

"아, 뭘까... 잘 모르겠는데.."

"(진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화 산 폭 탄!"

ㅎ ㅎ ㅎ ㅎ ㅎ

"아~ 화산 폭발이구나. 그래 그게 진짜 무서울 텐데 사막에서는 잘 안 일어나는 일 같은데, 산이 많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든. 우리가 이 책에서 한번 찾아보자.^^"


화산 폭탄이라니 그래도 꽤 비슷하게 갔다. 웃음은 꾹 참았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공유했다. ㅎㅎ


3) 다섯 살 어린이가 자신의 과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말들이 있다.

"엄마 형아가 여기에 갔을 때, 나는 엄마 뱃속에 있었지요?."

"엄마 내가 뱃속에 있었을 때~"


그리고,

"엄마 내가 천사였을 때 형아가 헬로카봇 좋아했어요?"

(천사였을 때 = 엄마가 임신하기 전)


아이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한두 번 해주었던 표현인데 아이가 그대로 그 표현을 빌려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다섯 살 어린이가 "엄마 내가 천사였을 때..."라고 말할 때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조금 더 자라서 더 똑똑한 표현을 배우기 전에 '아이의 천사였을 때 이야기'를 실컷 들어야겠다.



4)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외출을 한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볕이 좋은 날이었다.

"와-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날이었다.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다섯 살 어린이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한마디 했다.


"와- 오늘 햇볕이 넘치네에~~!"


어쩜 그렇게 반짝이는 말을 할 수가! 어린이들의 눈은 맑고, 마음은 더 맑다.

이런 맑은 아이들과 살아가기에 육아가 힘들다고 생각되다가도 금방 미소 지을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난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다 예쁘서 모조리 주워 담고 싶을 정도다.

아쉽게도 순간포착을 하기엔 엄마는 손과 발과 마음이 너무 바쁘다. 운이 좋게 건진 말들만 이렇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된다. 이만큼이라도 기록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도 예쁘고, 몸짓도 살아 숨 쉬고, 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물론 이렇게 감사하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이 녀석!" 하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를 일이 생기고야 말 거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살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랑을 공급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오늘은 목소리 데시벨을 조금 낮춰야겠다.

아이가 시키는 대로 '구력'도 잘 붙이고,

화산 폭탄 책도 참을성 있게 읽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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