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의 아이가 있으면
백명의 아이가 모두 다르듯,
백명의 엄마가 있으면
백 가지의 각기 다른 엄마의 모습이 존재한다.
다른 엄마들의 육아를 살피며 알게 된 일이다.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려 할 때
그것을 제지하는 엄마들의 표정이 어떤 지
그리고 목소리가 어떤지를 살필 기회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엄마가
아이의 행동을 금지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ㅇㅇ아 ㅇㅇ 하지 마.”
라는 금지의 메시지는 표현되었지만,
아이의 엄마는 평소와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아이에게 금지 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인상을 구기거나 화를 내며
아이의 행동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온함에 가까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아이는 엄마의 지시를 따랐다.
(물론 아이는 한두 번 더 주의를 받긴 했다.)
아이는 엄마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했다.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는
엄마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에겐 가벼운 충격이 일었다.
‘하지 말라는 말을 할 때는
인상을 구겨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럴 때는 강력하게 부정의 표정을 보여줘서
절대로 다시 못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바삐 움직였다.
그 후로 다른 부모들을 통해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더 마주하게 되었고
아이를 막아서는 상황에서 부모의 반응은
각기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리는 데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말하는 부모들의 비율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부모들 덕에
큰 갈등 없이 상황은 종료되곤 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얼굴에 묻은 검댕을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들의 양육 방식을 관찰하고
나의 그것을 비추어 보지 않는다면
늘 제자리만 맴맴도는
양육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이다.
양육 기간은 늘어나지만
성장하는 엄마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엄마가 될 것이다.
자녀 양육을 시작한 지 만 7년 만에
타인의 양육방식을 제대로 관찰했고
나의 양육방식을 점검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타인의 양육 방식을 관찰함을 통해
나와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찾아냈다.
화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화내지 않을 수 있는 부모의 성숙함이었다.
금지하는 것에 ‘화’가 포함될 필요는 없었다.
금지하는 것에 공포감을 심어줄 필요도 없었다.
긴급하고 치명적인 상황에는 예외도 있겠지만,
자녀를 멈추게 하는 데에는
부정의 감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것은 아님을
다른 부모들을 통해 깨달았다.
되는 것은 활짝 웃어 보이고,
안 되는 것은 화가 섞인 부정의 표정과
목소리를 동반하여 아이들을 제지했다.
감정은 감정대로 소모되었고,
아이들은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느껴왔다.
잘 몰랐던 지난날이 미안했고,
잘 몰라서 고생했던 지난 시간이 참 아깝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통제할 때
늘 화를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오랜 양육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다.
아이들도 나도
수차례 눈물을 찔끔거리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조금씩이라도 다듬어질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삶 가운데 배울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보고 배울 수 있는 육아 선배들이 있어 감사하고,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육아 동기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들을 마주할 시간이 다가온다.
내 곁의 수많은
온화한 육아맘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은 엄마 얼굴도 달라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