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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Sep 05. 2020

육아. 어쩌다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엄마가 되었을까..


‘배가 고플 때’를 조심해야 한다.


남편과의 갈등도 배가 고프거나 피곤할 때 겪게 되고,
아이와의 갈등도 굶주려 있거나 녹초가 되었을 때 주로 일어난다.  


어제 낮,
아이와 함께 아동병원에 다녀왔다.
1-2년 전부터 아이는 환절기에 비염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면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요즘은 때가 때이다 보니 재채기만 해도 상대방에게 불안을 안겨줄 수가 있어, 지체하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진료를 끝내고 사무실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아이와 같이 잠시 들렀다가 오는 길이었다.
아이는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클레이로 만들고 싶은데
재료가 부족하니 문구점에 들러야겠단다.


때는 이미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고, 아침을 가볍게 먹은 탓인지 배가 많이 고팠다.
그래서 아이에게 클레이만 딱 고르고 집으로 가자고 일찌감치 일러두었다.


문구점 입장.
아이는 나와의 약속은 잊은 지 오래고 클레이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각종 카드류만 뒤적이고 있었다.
아이에게 몇 번의 경고음을 울렸다.
이제 구경 그만하고 클레이를 골라서 집으로 가자는 말과,
너 클레이 사러 왔잖아 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심지어 눈앞이 어지럽기 시작했다.


아이는 배가 고픈 것도 모른 채
다양한 것들을 구경하다가
크고 멋진 카드 컬렉션을 하나 사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어제까지 문구점을 3일째 드나들고 있었다.
첫째 날은 엄마 일도 잘 도와주고,
문구점을 한참 가지 않은 것 같아 이벤트 삼아 갔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동생과 클레이를 하겠다고 해서 사러 갔었고, 마지막으로 어제는 부족한 클레이를 채우러 한번 더 들른 것이었다.


문구점에 가면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싶고,
새로운 것들도 사고 싶어 지는
아이의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지난 이틀간 문구점에서 구경도 고르기도
실컷 했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아이는 한~~~ 참 만에 피규어를 하나 골랐다.
아이가 스스로 계산하고 나오도록 하고 먼저 차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는데,
어제, 그 시간, 그곳에서는 쉽게 화가 풀리지 않았다.


무거운 공기를 가득 채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오는 내내 아이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그저 잠잠히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물을 한잔 들이켜고 아이를 불러 세웠다.
“이삭아 엄마가 아까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는지 알아?”

“빨리 안 골라서...?”

“아니, (응. 사실 그것도 맞는 것 같아ㅠㅠ)
오늘 클레이가 부족해서 그거 사러 문구점에 간 거였잖아.
그런데 이삭이는 자꾸 다른 것들만 구경하고, 사려고 했잖아. 3일 내내 문구점에 갔는데, 필요한 것만 사서 와야지 또 다른 걸 사려고 하면 어떻게 해. 돈을 아껴야지. 사고 싶은걸 어떻게 다 사냐고..”
하- 결국 또 잔소리의 물결이 이어지는 것 같아 멈췄다.

“그러니까 다음부턴 살 것을 미리 계획해서 가고, 약속을 잘 지키자. 알았지?”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만 그저 뚝뚝 흘리고 있었다.


“세수하고 와서 밥 먹자.”

하며 아이를 꼬옥 껴안아줬다.
‘사실은 엄마가 못 참아서 그래 ㅠㅠ 엄마도 미안해...’


아이는 금새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식탁 앞에 앉았다.
“이제 밥 먹자 엄마.”


오늘도 아이가 나를 살렸다.
참을성 없는 나 자신이 싫어지려는 그 순간
아이의 미소 덕분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어릴 적,
엄마가 ‘그렇게까지’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화를 내는 엄마를 보며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초등학교 2-3학년쯤 되던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엄마는 그날도 대청소를 하고 계셨다.
다용도 실에서는 세탁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고,
엄마는 구슬땀을 흘리며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며 청소를 하셨다.


그러던 중 나에게
슈퍼에 가서 세탁세제를 사 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사려는 제품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니 슈퍼에 가서 집으로 전화를 걸라고 하셨다.
엄마가 슈퍼 사장님께 설명을 할 테니 일단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슈퍼까지 전력질주를 했고,
우리 집에서 한번쯤 본 기억이 있는 세제로 골라서 사 왔다.


집으로 들어서는 고집스러운 나를 보며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알록달록한 먼지떨이를 흔들며 야단을 쳤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쩌면 그 먼지떨이로 허벅지를 한두 대쯤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왜 전화를 하지 않았냐’는 엄마의 야단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차마 ‘슈퍼 아줌마네 전화세가 나가잖아요.....’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생각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슈퍼 아주머니의 전화요금 때문에 아주머니께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또 그걸 사실대로 엄마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엄마를 더욱 참을성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엄마가 나에게 더욱 큰소리로 야단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진 집에서 엄마가 꺼내 준 당근 케이크와 차가운 우유를 먹으며 ‘엄마가 이제 화가 좀 풀렸나 보다. 다행이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일상의 틈으로 쑤욱 빠져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엄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더운 날 홀로 온 집안을 정리하며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아이는 시키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얼마나 더 마음이 상했을까...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엄마도 배가 고팠으리라...


‘내가 어쩌다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엄마가 되었을까?’
하고 자책 담긴 질문을 품었다가,
‘나에게도 그리고 그때의 엄마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
하며 모난 마음을 살살 걷어낸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끼니를 두둑이 챙기고
아이들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운 엄마가 되기로 결심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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