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첫째,
아홉 살 어린이.
첫째 어린이를 생각하면 늘 안쓰럽다.
첫 육아라 실수도 많았고
지금도 첫째 아이의 양육에 있어서
잦은 실수가 일어난다.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였던 꼬마는
벌써 아홉 살이 되었고
이제는
‘잘 먹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라는 말로는 첫째 어린이의 양육이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더 많은 기대사항과 요구사항이
어린이의 어깨에 얹어진다.
학생이 되었으니
학생답게 배움을 실천해야 한다며
엄마는 아이를 책상 앞으로 끌고 간다.
아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더 좋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한 발짝이라도 더 떼보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들썩거리며 신나게 놀고 싶다.
엄마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하지 않냐며
아이를 몰아세운다.
책에서 본 아이들은 즐겁게 공부를 한다.
놀이하듯 공부를 하고,
그리고 놀이하듯 놀이를 한다.
왜 도대체 책에서는
‘아이들은 원래 공부를 즐거워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살살 달래고 구슬려서 좋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자 이제부턴 어린이 구슬리는 법을 알려줄게요.’
라던가,
‘우리 아이도 공부를 되게 싫어합니다.
저랑 책상머리에서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서로 조금씩 양보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진 거예요.’
그게 아니면,
‘우리 아이는 많이 특별해요.
공부를 너무 좋아하는 거 있죠?
타고난 아이인 것 같으니까
당신 자녀에게 이 특별함을 강요하진 마세요!’
와 같은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느냔 말이다.
어찌 되었건
책 속에서 만난 상상의 인물이
우리 어린이가 되길 바라며
잘 놀되 배우는 것도 즐거워하는
그런 (완벽한) 아이가 되기만을 바랐다.
거기서부터 엄마의 욕심은 불어나고
아이의 마음은 답답 라인을 타기 시작한다.
편하게 생각해야지 마음을 먹고서도
아주 얇은 틈만 생기면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다.
어린이가 다니는 학교의 석면 제거 공사로
겨울방학은 이미 시작되었다.
77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고
아이는 엄마의 근무 시간 동안
돌봄 교실과 태권도 학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오후 세시가 되면
우리는 찐하게 끌어안으며 모자 상봉을 한다.
돌봄 교실에서는 어린이가 오전에 학습할 수 있는
학습지를 보내라고 하신다.
우리 어린이는 주로 주산 문제집이나
수학 문제집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날의 분량을 끝내고
오후엔 엄마와 점검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제,
그날은 주신 숙제가 없는 날이라
수학 문제집을 들려 보냈다.
문제집에 별책으로 딸린 실전책이라
난이도가 조금 높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가 문제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늘은 두장 풀어보자~”
하며 아이를 보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했다.
아이가 풀어온 문제집의 삼분의 일 분량에
별표를 그려 넣었다.(틀린 문제에 별 표시를 한다.)
그러는 사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빨리 끝내고 싶어 대충 한 것만 같은 느낌이 역력했다.
아이를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제집에 풀이 과정도 없이 어찌 문제를 푼 건지
왜 이렇게 대충 풀어놓은 건지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는 그게 아니라고만 했다.
이야기 끝에
내일은 숙제로 얼만큼을 해 볼 것인지 정하고 있었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마음에 있는 아야기를 꺼내 주었다.
“엄마 수요일이랑 금요일에는
숙제를 많이 할 수가 없어요.
열 시 반에 트램펄린 특강을 다녀오고
한 시 반엔 태권도를 하러 가야 하는데
숙제가 너무 많으면 친구들이 숙제를 다 끝내고
보드게임을 하면서 노는 시간에
혼자서 숙제를 해야 해요.
그리고 밥을 먹고 나서도 숙제를 해야 하고요.
그래서 조금도 놀 수가 없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정말로 몰랐었다.
아이가 조금씩 더 많은 양을 소화해내기만을 바랐지
아이가 얼마만큼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혹은 아이가 문제를 풀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혼자 문제를 푸느라,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끙끙 앓았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속의 모래성이
수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에게 곧바로 진심으로 사과했다.
“엄마가 정말로 미안해. 몰랐어 이삭아.
엄마가 트램펄린 가는 날엔 시간이 더 없다는 걸
기억했어야 하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엄마가 너무 많은 과제를 내줘서 미안해.
오늘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혼자만 숙제하느라 많이 속상했겠다.
엄마가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다음번에는 이런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엄마랑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줘서 고마워.”
하며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품에 안겼다.
오랫동안 그렇게 아이들 토닥여 주었다.
아이에게 모두 설명할 순 없었지만,
나의 마음속에서는 큰 동요가 일어났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갈 것.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을 키워 주는데
마음을 더 쏟을 것.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욕심내지 말 것.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
아이와의 대화가 참 감사했다.
아이가 조목조목 자신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해 준 것도 고마웠고,
아이에게 곧바로 엄마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했다.
아이를 독립시키기까지 아직도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아이가 몸과 마음까지 건강한 사람으로
잘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매 순간에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한
마음에 힘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원한다.
그러나 그 소망과는 달리
실제로는 아이가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잘 풀어서
능숙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고 있었다.
사교육을 선호하지 않고
아이를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말을 하면서
집에서라도 학원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려고 애를 썼다.
나의 교육관이, 그리고 행동이
전부 틀린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부 맞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의 양육에 더 중요한 것을 바라보며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키워내기로
또 한 번 다짐을 한다.
내 곁의 아이는
엄마가 옆에 앉아 코를 훌쩍일 때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휴지 세장을 뽑아오며
“엄마, 코풀으세요.”
하고 챙길 줄 아는 따뜻한 아들이다.
그런 아들의 장점을 지지하고 키워주지는 못하고
아이를 자꾸만 코너로 몰아세우는 엄마가 되곤 했다.
이번 일로 마음은 아팠지만
아이에 대한 눈길을 다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았다.
이제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엄마 욕심을 앞세우지 말고,
아이를 살피며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