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속상한 일이 생겼는데,
그 속상한 일에 너무 몰입된 나머지
내 상황과 심지어는 내 존재의 뿌리까지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분명 내 잘못은 아닌데,
그럼에도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영향을
급소에 정통으로 맞아 사정없이 흔들리는 일이
생기곤 한다.
속상한 일이 생기는 것까지는
내쪽에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지만,
거기에 영향을 받고 내적 갈등의 끝을 보는 것은
역시나 나의 내면의 문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날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늘 그런 역할을 해주는 나의 남편이 있지만,
때론 남편보다는 조금 덜 이성적이고
현상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내 편을 들어주는
그런 역할을 해주는,
한마디로 나를 마취시켜버리는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
고맙게도 늘 내편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마음이 속상하고 힘이 들면
휴대폰의 노란 창으로 만나
마음껏 손가락으로 말달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무조건 내편이다.
무조건 내가 잘했다고,
상대가 너무했다고
나보다 더 속상해해주는
그런 친구들이다.
친구들을 통해 응급처치를 하고
마음을 푸근히 데우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있다.
친정이다.
힘이 들 때, 그리고 진짜 내편을 찾고 싶을 때면
엄마는 늘 그곳에 있었다.
속상했던 일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먹고 싶은 거 있니?”
이 한마디로 몸과 마음을 달래주신다.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을 만날 때마다
항상 엄마는 그곳에 있었다.
대학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는데
한창 잘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스스 녹아내리는 미소를 사방에 떨구며
그의 전화를 받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기대에 찬 목소리로 수화기를 든 나와는 달리
상대방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그는 서론도 없이 곧장,
미안하지만 헤어져야겠다는 말을 했다.
헤어지기엔 너무 눈부신 낮이었다.
작은방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원망스럽고
바스스 웃으며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온
내 발걸음이 아까웠다.
그는 내가 싫어서 헤어지는 건 아니라는
소여물로도 쓸 수 없는 말을 했다.
속으로는
‘그런 말은 개나 줘라!’
했지만 입으로는
“그래 그럼 잘 지내.”
라며 세상 쿨한 이별의 그림을 완성해냈다.
물론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하나뿐인 사탕을 빼앗긴 유치원생처럼 울었다.
놀라 달려온 엄마는 내 등을 토닥이며
“나쁜 놈 자식이네 그거.”
하며 내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시원하게 해 주셨다.
며칠간의 따스한 엄마 밥과
가족들의 이별 축하(?) 외식으로
이별의 큰 충격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장 작고 초라해질 수 있었던 그때
내편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 시간,
나의 곁에는 엄마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을 몇 차례 겪으며
엄마는 언제나 내편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 잡게 되었다.
내편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면 엄마를 찾았고,
엄마는 수십 년 간 그 자리를 지켜 주셨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깊고 무거운 근심 걱정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었다.
“조서방 퇴근하고 넘어와. 두부전골 끓여줄게.”
내편이 필요했던 날
엄마는 여전히 그곳에서
철없는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