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멘탈갑은 타고나는 게 아니었다.
멘탈갑은 갈고 닦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멘탈갑인 이들이 늘 부러웠다.
나도 멘탈갑 이라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갈고 닦이는 중이다.
수십 년간 스스로 혹은 주변 환경을 통해
만들어지지 못했던
멘탈갑의 세계에 들어서는 중이다.
때론 오랫동안 갈망했던 것을
갑작스럽게 얻어내기도 하는 것이
삶의 묘미가 아닐까.
브런치 앱에서 오랫동안 팔로우하던 작가가
한동안 글만 쓰면 힘들다는 말을 곳곳에 배치했다.
그의 힘듦이 너무나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바람에
결국애는 속으로 흉을 봤더랬다.
‘뭐가 또 그렇게 힘들대…’
내가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힘듦의 크고 작음은 각자가 재단하는 법이다.
각자의 가위로
각자의 삶의 밭에 비례하는 사이즈로
재단해내고 다듬어내며
결국에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거다.
그 어려움을 어찌할 바 몰라
손끝으로 절제하고 또 절제하며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을 터.
그때의 그 작가보다
지금의 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최소한 그 작가는 무엇이 자기를 힘들게 하는지를
글로 옮기기라도 했지.
어쩔 수 없이 가끔은 이렇게
꼴사나운 작가가 되는가 보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내 삶의 곳곳에서 글을 뽑아내는데,
회색빛의 일상을 걷는 중에는
다른 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꼴사나움은 곧 탈피하게 될 일이다.
달달 볶이며
들들 이를 갈며
멘탈갑도 되었으니
이제 곧 글에서도 나를 되찾아내야지.
힘들다며
꾸역거리며 써 내려간 글을
참을성 있게 읽어주신 당신께,
미안하고 감사합니다.